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반포 방향으로 한강을 따라가다 동작역이 보이는 아래쪽으로 현충원이 자리잡고 있다.

처음엔 한국전쟁 전사자를 위한 '국군묘지'로 조성되었으나 1965년 '국립묘지령'이 시행되면서 경찰관 및 향토예비군까지 대상이 넓어졌다.

대통령령으로 시행된 국립묘지령에 따르면, 이 현저한 예비역, 퇴역, 면역 군인중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지정한 자'나 국장을 치른자 등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됐다.

2005년 국회 입법으로 제정 공포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묘지의 명칭은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도 안장대상자로 추가됐다.

2006년부터는 국립서울현충원(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분리되었고 그 운영주체도 각각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로 나뉘어졌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비춰 독립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순국선열을 모시는 일이 가장 먼저 됐어야 했지만 그 일은 백범 김구의 몫이었다.

백범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수습해 효창공원에 3의사 묘를 조성하고 같은 곳에 안중근 의사의 허묘를 만들어 두었다. 임시정부 요인인 이동녕과 차리석의 유해를 효창공원에 봉안하고 1948년에 별세한 임정요인 조성한을 모신 것도 백범이었다.

현충원은 국립묘지이되 제 기능을 다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초기 국군묘지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피한 인사들이 함께 안장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곳으로 발길을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현충원은 생전의 활동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사후에는 역사와 민족의 엄격한 잣대로 바로 잡한다는 교훈을 주는 곳이 아니라 굴곡진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곳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본래 국군묘지로 출발해서일까? 현충원 정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충성분수대'에는 1976년에 조성되었다곤 하지만 '애국선열'과 '조국의 어머니', '평화를 기원하는 소녀'보다 육해공군과 경찰관, 예비군들이 총을 들고 작전에 임하는 모습이 크게 보인다.

이름도 현충(顯忠), 충렬을 높이 드러낸다는 뜻으로 지었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김학규,『현충원 역사산책』, 344쪽, 2022. 섬앤섬출판사. [사진제공-섬앤섬]
김학규,『현충원 역사산책』, 344쪽, 2022. 섬앤섬출판사. [사진제공-섬앤섬]

최근 『현충원 역사산책』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책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나는 한국 근현대사'라는 부제를 달아 △독립운동가의 길 △친일파의 길 △여성의 길 △4.3길 △5월 길△대통령 길 △평화통일 길 등 일곱개의 탐방코스를 나눠 안장된 이들과 당대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일종의 탐방 답사에 필요한 참고도서로 보면 될 것 같다.

본래 현충원에서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국가원수묘역 △임시정부요인묘소 △독립유공자묘역 △무후선열제단 △국가유공자묘역 △장군묘역 △장병묘역 △경찰묘역 △외국인묘역 등을 저자가 탐방 코스로 재구성한 것이다.

한 코스만 돌아보자. '독립운동가의 길'은 독립유공자묘역과 무후선열제단, 임정요인 묘역과 대한독립군 무영용사 위령탑까지를 둘러보는 코스이다.

독립유공자 묘역에는 평민의병장 신돌석과 13도 창의 총대장 이인영,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권동진, 이종일, 박동완, 이필주, 백용성 등 15위를 비롯해 219위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안장되어 있다.

독립유공자 묘역 위에 있는 무후선열제단에는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과 정의부 총사령관을 지낸 오동진, 봉오동전투의 영웅 홍범도, 3.1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유관순 등 104위의 위패와 김규식, 조소앙 등 '월(납)북인사' 16위 위패 등 총 135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여기서 저자는 묻는다. 왜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등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묘는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볼 수 없는가?. 

1894년 갑오년에 거병한 의병들은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데, 같은 해에 일어선 동학농민군은 검토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것을 따지는 응당한 질문이다.

또 진짜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가로채 보훈처로부터 부당한 보훈급여를 타낸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와 그의 가족 3명의 서훈이 취소된 사연도 들려준다.

22년이 넘는 세월을 일제의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다 해방 이후 석방되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의사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온 아나키스트 박열은 전쟁 중 북으로 행적을 옯겨 유해는 재북인사묘에 있으나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로 모셔져 있다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왜 하필 현충원일까? 책을 펼치기도 전에 드는 의문이었다.

몇장을 넘기지도 않아 현충원으로 가서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충동이 인다.

이리 저리 굽어 있는 우리 근현대사의 인물과 사건들을 되돌아 보게 하는 좋은 참고서이다.

저자인 김학규는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오랫동안 박종철기념사업회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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