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는 단절된 채 시간은 흐르고 북한은 지난해부터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에 따라 매해 평양에 살림집 1만 세대를 건설하고 있다. 우리 건설사들의 능력으로 치면 주택 1만 세대 건설 쯤이야 큰 문제도 아니겠지만 제재와 봉쇄로 겹겹이 둘러싸인 북한이 과연 어떻게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변상욱,  『북한의 건축 사람을 잇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통일뉴스]
변상욱,  『북한의 건축 사람을 잇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제 남북이 오가던 시대도 기억에서 가물거릴 즈음에 반가운 책을 만나게 됐다. 북녘 건축물들 건설에 직접 관여했던 변상욱 개공공업지구지원재단 사무국장이 『북한의 건축 사람을 잇다』(경향신문)을 ‘다시 보는 남북 교류‧협력’ 부제를 달아 출간한 것.

실제로 건축 전문가인 저자는 현대아산에 재직하며 금강산 온천장, 금강산 호텔 리모델링,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 원산 연어부화장 등의 건축을 기획했고,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근무하며 개성공업지구 기술교육센터, 종합지원센터, 누리미아파트형공장 건설에 참여한 베테랑이다.

북녘 땅에 다양한 건축물을 짓는데 직접 참여한 쉽지 않은 경험에다 저자가 책 말미에 남긴 ‘감사의 글’에서 보듯 많은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수집한 노고의 결실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책은 1부 ‘다시 보는 남북 건설 협력사업’, 2부 ‘북한의 외자유치 정책’, 3부 ‘싱가포르의 해외 개발과 북한 개발’, 세 부분으로 구성됐고, 직접적인 북한의 건축물 건설 관련 내용은 1부에 담겼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온정리인민병원과 금강산영농장, 개성 령통사와 금강산 신계사,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 금호지구 경수로, 평양라이온스안과병원, 평양어린이어깨동무소아병원, 남북 철도‧도로, 봉수교회,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천덕리 농촌 시범마을 등이다. 저자가 직접 참여한 개성공업지구 개발 사업은 “규모가 크고, 한정된 지면으로 다루기 어려워” 후일을 기약했다.

저자는 단순히 건축물의 건설 과정을 전하는 것을 넘어서서 역사적 맥락이나 저간의 사정, 북측의 실제 상황, 남북 담당자들 간의 협의 과정 등을 최대한 폭넓게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개성 령통사의 경우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이 11세인 1065년 령통사에서 출가했고... 국내 불교계는 의천이 개성 국청사에서 천태종을 개창했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령통사를 천태종 발원지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1998년 5월 령통사 복원에 한국 천태종의 지원을 요청했다. 지원 요청은 재일동포 최준 씨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부의장 김수식 씨를 통해 천태종 총무원장인 전운덕 스님에게 전달됐다”고 적고 있다.

특히 함경남도 금호지구에서 착공한 경수로 건설의 경우 ‘북핵 위기’라는 복잡한 국제정치의 흐름부터 구체적인 숙소용 컨테이너 설치까지를 다루면서 여러 장의 사진과 도면으로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경수로 건설 과정에서 “남북한 인력을 약 3대 7로 투입하는 것으로 계획해 북측과도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이 인건비 인상을 요구해 본 공사 시작 후 북측 인력을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처음 합의 당시 ‘보통 근로자는 월 110달러’에 ‘일 8시간 근무(중식 시간 제외), 주 6일 근무(주 48시간), 필요시 일요일과 공휴일 근무가 가능하며, 12개월 이상 근무자는 유급휴가를 주는 조건’이었다.

책 속에는 건설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는 사진과 도면 등이 빼곡히 담겼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책 속에는 건설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는 사진과 도면 등이 빼곡히 담겼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상대적으로 건설 과정이 덜 알려진 평양라이온스안과병원이나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설립 과정도 소상하게 다루고 있고, 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어린이 보건의료 사업을 펼쳐온 어린이어깨동무의 ‘평양어린이어깨동무병원’, ‘평양의과대학 어린이어깨동무소아병동’ 건립, 남북나눔운동의 ‘천덕리 농촌시범마을 조성사업’ 사례는 이후 남북교류‧협력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남북관계의 경색에 따라 완공이 늦어지는 사례는 비일비재했고, 북한 내부 사정이나 전력과 인프라 미비 등 난관도 많았다. “대규모 신축 공사에는 직장돌격대나 청년돌격대를 동원하여 공사를 진행했다. 이들은 건설 관련 경험이나 기능이 없는 인력이 대부분이었다. 골조 품질에도 문제가 많았다...”, “북한의 건축설계와 기술이 일정 수준 이상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생각보다 더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저자가 “언론에 전혀 보도죄인 않은 사업 중 하나”로 꼽은 ‘천덕리 농촌시범마을 조성사업’은 2005~2008년 400채의 농촌주택과 탁아소, 유치원, 진료소, 마을회관 편의시설을 건립했고, 용수 공급, 도로 조성, 식수 사업 등 마을을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당초 800채 건설 예정이었지만 2010년 5.24조치로 사업이 중단됐다. 이같은 사업이 가능한 배경에는 남북나눔운동이 1993년부터 2015년까지 22년간 북한에 1520억 원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농촌 주택의 경우 “남북나눔은 화장실에 좌식 수세식 변기를 놓고 정화조를 설치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인분을 비료로 사용해야 한다며 북한이 반대해 정화조는 설치하지 않았다. 부엌은 연탄과 화목을 형편에 따라 사용해야 하므로 입식이 아닌 방과 단 차가 있게 계획했고 씽크대를 설치했다. 난방은 연탄보일러를 설치했으며, 농촌의 특성을 고려해 수납을 위한 창고 공간도 마련했다...” 실전의 지혜가 오롯이 담겼음을 알 수 있다.

북녘 건축물 건설 경험을 다룬 1부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임에는 틀림없지만 2부 ‘북한의 외자유치 정책’과 3부 ‘싱가포르의 해외 개발과 북한 개발’도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70여 쪽으로 요약된 ‘북한의 외자유치 정책’은 한 마디로 북한의 대외경제 정책을 84년 합영법부터 현재까지 일목요연하게 고찰하고 있으며, 많은 사진과 도표를 통해 상세하고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당한 자료 수집과 학습의 결과일 것이다.

저자는 또한 2018년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싱가포르에 눈을 돌렸다. “북한이 싱가포르의 개발 방식 도입과 투자 유치를 원한 것은 싱가포르가 정치적으로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 시장경제를 통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므로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발전시밀 수 있는 모델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싱가포르는 해외 도시 개발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했고, 도시 개발 시 시설만이 아닌 행정 시스템 개선, 주민 생활 및 사호구조 변화 등을 개발 목표로 했다”, “중국과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국가 주도의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여 성공했다”는 것.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남북 교류‧협력이 재개되는 경우 그동안의 교류‧협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와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건설 분야는 철도, 도로, 발전소 등 인프라 건설 및 경제개발구 개발 등 대규모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시행착오를 방지하고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남북 건설 협력사업에 대한 전만적이고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남북 정상간의 합의들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꽉 막히다 못해 군사행동들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저자의 바람대로 남북 교류‧협력이 본격화되는 시기가 언제 닥쳐올지도 모른다. 변상욱의 『북한의 건축 사람을 잇다』 속으로 빠져 들어가 가슴 설레는 꿈을 꿔봄직도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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