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문재인 정부가 공을 들이며 추진 중인 종전선언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혔는데, 그 관점과 논리가 얼마나 빈약하고 천박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반 전 총장은 30일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개최한 ‘한미동맹 미래평화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 종전선언을 위해 물밑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안보태세를 이완시키고 북한에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까지 주장하게 될 빌미를 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입니다.

종전선언 추진이 왜 △안보태세 이완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까지 나아가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거의 70년간 정전상태에 있는 한국전쟁을 끝내자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종전선언은 가깝게는 현재 교착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물꼬를 트는 일이자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시발점으로 됩니다. 반 전 총장의 말대로라면 종전을 하지 말고 이렇게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그대로 끌고 가자는 것입니까?

물론 평화체제 구축 단계에 다다르게 되면 유엔사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 필경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건 아직 ‘머나먼’ 일이자 어차피 한번은 부딪쳐야 할 문제입니다. 유엔사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가 나올까 두려워 종전선언을 추진하지 말자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입니다.

나아가 반 전 총장은 “그동안 북한과 얼마나 많은 합의를 해왔느냐. 수많은 합의 중 의미 있게 지켜지고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며 “종전선언만 갖고 될 일이 아니다”고 거듭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간 정상급 차원이나 의미 있는 차원에서 남북 사이에 합의한 게 7.4공동성명에서 9.19평양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6개이고, 북미 사이에도 북미제네바 합의와 싱가포르 공동성명 2개가 됩니다. 모두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게 하나도 없는 것은 맞습니다. 왜 그럴까요? 반 전 총장의 말대로라면 북한이 모든 합의를 어겼다는 뜻인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각 사안이나 시기마다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북미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고 남북 사이에 더 이상의 합의가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합의는 자꾸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라도 더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북한 핵문제 해결 노력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면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남북 간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지고 지켜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반 전 총장 식견의 무지와 천박함이 절정에 이릅니다.

문재인 정부든 앞선 이명박-박근혜 정부든 북핵 문제 해결을 일순위로 놓고 노력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이라니요? 북핵 문제가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해결이 됩니까? 한국이든 미국이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웃통을 벗고 나서는 판인데 이미 해결된 양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이라니요? 본말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됐습니다.

반 전 총장은 유엔총장을 8년간이나 했습니다. 유엔총장의 역할은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그가 재직한 시기가 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였기에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등 한반도 정세가 아주 나빴습니다. 그런데 그가 총장 재임 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도시 잡히는 게 없습니다.

반 전 총장은 2015년인가에 개성공단을 방문하려다가 북측의 방북 허가 철회로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가 진정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바랐다면 임기 초부터 방북을 위해 부산히 움직였어야 했는데, 두 차례나 사무총장직에 있다가 임기 1년여를 남기고 그것도 평양이 아닌 개성을 방문하려 했다니... 나중을 위한 면피용이 아닌지 영 미덥지 않기도 했습니다.

마침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2월 2일부터 이틀간 중국을 방문해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주요 의제로 종전선언 문제가 점쳐집니다. 앞서, 서 실장은 지난 10월 미국을 방문해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종전선언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에 응원은 못할망정 초를 치다니요.

유엔 사무총장까지 지내며 국제적으로 노셨다는 분의 종전선언을 비롯한 한반도 주요 문제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로 부정적이고 천박하다니요. 아직 그리고 여전히 이 땅에는 ‘검은 머리 미국인’이 많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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