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평화운동가, 평화네트워크 자문위원)
안보위기의 징후
이번 서해교전 사태를 겪으면서 확전 등 위험이 있더라도 북한에 강경대응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부 여론조사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햇볕정책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도 점차 다수가 되어가고 있다. 현정부 출범 이후 남북간에 어떤 무력충돌이 있었을 때도 이러한 강경론이 과반수를 넘은 적이 없다. 이러한 여론의 쏠림 현상은 이번 사태의 경우 과거보다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하겠다. 분명 햇볕정책이 근본으로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된 일차적 원인은 일단 정부에 있다. 작년 4월 미 해군의 EP-3 정찰기가 중국의 하이난 섬에 불시착했다. `정보의 폭포`로 불릴 만큼 귀한 정보 보따리가 무더기로 중국에 넘어갔다. 이 때 미국정부가 중국정부에 초강경 조치라 할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연일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며 기민하게 위기관리를 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대통령이 직접 상황을 국민에게 설명하며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대통령의 지지도는 올라갔다.
이번 사태 처리과정에서 정부와 군이 확전을 예방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것은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와 한 박자 늦은 조치들을 보며 국민이 이 정부를 불안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일단 국민에게 안정감을 주고 합리적이고 정교한 프로그램에 의해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하는 모습을 앞서서 보여주었더라면 햇볕정책에 대한 논란은 상당부분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현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왜 경직되어 있으며, 죽은 조직이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집권 초 현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국가 최고 위기관리 기관으로 그 위상을 강화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실제 운영을 보면 과거 정부의 통일안보관계 장관회의와 다를 바 없는 행정조직에 불과하다. 국가의 최고 전략두뇌를 결집하여 종합적인 안보전략을 성안하고 위기관리 시스템을 재정비한다는 취지와 달리 실세장관에 의해 끌려 다니는 회의체에 불과했다. 전략 두뇌가 아닌 행정 요원들로 그 상주 인력이 편성되어 있다.
상황대처에 무능한 죽은 조직들
국방부와 합참은 또 어떤가. 지나친 육군편중 인사와 특정 지역 출신들의 요직이 채워져 조직과 시스템의 힘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고 의사결정이 경직되어 있다. 해군은 군에서 가장 적은 예산을 쓰면서도 육군보다 5배 더 넓은 경계범위를 갖고 있다. 경계선도 없는 해상에서, 또는 수중에서 작전과 기동 개념은 지상에서와 매우 다른 것이다. 이에 대한 특수성을 이해하고 전문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인사가 없이 오로지 육군 출신들로만 주요 정책부서와 정보, 작전, 전략을 독식하게 해 놓으니까 관리에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죽은 조직이다.
통일부와 외교부는 또 어떤가. 몇 년 전 통일부 예산을 살펴보던 필자는 깜짝 놀랐다. 통일부의 정보비가 채 5억원도 되지 않았다. 각종 서적과 영상물 등 공개된 자료 구입비로도 벅차다. 통일정책의 주무부서가 사실상 아는 것이 거의 없다보니까 남북대화 등 중요한 이벤트마다 실제 일하는 부서는 국정원이다. 국정원은 또 정보비가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조직이다. 정보와 지식의 편중이 각 부서가 골고루 임무와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결과 의사결정이 특정부서에 편중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통일정책을 통일부가 성안하지 못하고 국정원이 성안하게 되면 그만큼 국민 참여 정책이 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자꾸만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 참여의 길은 제한되고 정권적 차원의 정책으로 전락되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정보 유통과 관리의 파이프 라인이 잘못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모든 정보는 각 정보기관이 청와대에 직보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다 보니 각 정보기관이 자신의 공적을 인정받기 위해 타부서와 정보를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유럽의 경우 국가마다 국가 차원에서 정보를 종합하여 필요한 정보 수요자들에게 차질 없이 전파하도록 정보조정 기구를 둔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각 기관이 오로지 최고 권력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정보를 독점하게 마련이며, 정보기관의 본분을 넘어선 기획 업무까지 과도하게 손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래서 위기관리가 안 된다.
햇볕정책의 성패는 `관리 능력`
그동안 정부는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비난 여론이 있을 때마다 `인내가 필요하다`며 문제점을 외면하기만 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햇볕정책을 외치는 동안 부서와 조직들은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개혁적 프로그램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했으나 `열중 쉬어`하고 있었던 것이 그간의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대북정책이 목표 지상주의적인 정책, 슬로건만 있는 정책으로 공허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한 수구 기득권 세력에 대한 관리능력이 포기되고 기득권은 `관리 불가능한` 영역에서 존재했다. 일을 안 하기 때문이다.
이제 명실공히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새로운 종합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무능하고 죽은 조직이 아니라 시스템과 기법으로서, 잘 관리된 정보와 지식을 토대로 움직이는 전략적인 활동이 요구된다. 이러한 공조직의 재정비를 통해 다음 정부가 한반도 평화 달성을 반드시 이루도록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위 이회창식 대북관과 무모한 안보주의로는 한반도 평화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평화와 안정의 리더쉽, 위기를 예측하고 예방하며 차단하는 긴밀한 시스템, 잘 관리되고 활용되는 정보가 요구된다. 이것을 준비함으로써 평화의 리더쉽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국가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일하는 정부가 되어야 겠지요.
평화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고 험난한 여정에서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