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 요금을 냈다는 표시로 우편물에 붙이는 증표’에 불과한(?) 우표를 통해 한 국가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믿을 수 있을까?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형상화한 우표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하는 기념우표를 상기하면 다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우 제한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우표를 통해 한 국가의 현대사를 천착하려는 책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안재영의 『우표로 보는 북한 현대사』다. 한마디로 북한우표를 통해 북한 현대사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우표에서 배운 게 많다”고 말한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언명을 상기하면서 폐쇄사회인 북한이 외부세계에 자신의 의도를 알릴 홍보수단이 제한돼 있다면 우표도 그 충분한 홍보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 게다가 외부로부터 온통 제재를 받고 있지만 북한우표의 외국 반출은 유엔이나 미국의 제재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저자는 왜 우표를 주제로 해 북한 상황을 살피고자 했을까? “미국을 중심으로 강력한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북한이 자국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가 바로 우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기에 저자는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체제결속을 다지기 위한 선전선동의 매체로,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입장을 호소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우표를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북한에서 우표란 “자신의 목소리를 합법적이며 공식적으로 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서 홍보물이자 선전물인 셈이다.
저자는 “북한의 우표는 선전화 중에서 가장 작지만 선전 내용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면서 “이 가장 작은 우표에는 사회주의 국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정치 이데올로기, 시대적인 이슈, 역사적인 사실과 대중정치선동, 보도, 광고 등이 함축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우표는 소소한 금액이 박힌 단순한 종잇조각이 아니라 의미 있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특별한 물체인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우표를 ‘종이보석’, ‘꼬마 외교관’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러기에 우표를 통한 북한 현대사의 천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지만 다소 의외인 사실은, 남북 간에 어느 쪽이 더 많은 종류의 우표를 발행했을까? 개수가 아니라 종류다. 답은 북측이다. 1946년부터 2020년까지 남측은 4,700여 종을 발행했는데 북측은 7,200여 종의 우표를 발행했다. 북측이 2,500여 종이나 더 많은 것이다.
『우표로 보는 북한 현대사』 는 1946년부터 2021년까지 북한에서 발행한 우표 7000여 종 가운데, 북한의 현대사를 조명해 볼 수 있는 426장의 우표를 선별해내어 우표에 사용된 도상(圖像=Image)을 가지고 우표발행의 목적을 탐구하면서 북한의 현대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광복이후 지난 75년 동안 북한에서 발행된 우표를 통해 북한의 정치·경제·외교·사회·문화와 통일 분야를 알아본다는 것은 흥미진진하면서도 남측에서 그동안 왜곡된 시선으로만 바라보았던 북한을 좀 더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북한의 내부관점에서 바라다본 북한 현대사 입문서’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역시 이 책에 나와 있지만, 재미있는 것으로 남측 인물 중에서 북한우표에 등장하는 인물은? 세 사람이다. 당연히 세 사람 모두 남북관계 개선에 힘쓴 사람들이다. 2000년 6.15선언에 합의한 김대중 대통령과 2007년 10.4선언에 합의한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다 쳐도 문익환 목사가 북한우표에 나왔다는 것이다. 1989년 방북한 문 목사는 통일운동과 관련하여 북측 내 최초로 북측 행사에 참가한 것을 기념하여 발행됐다는 것.
우표를 매개로 해 북한 현대사를 연구하는 저자가 궁금하다. 독도를 너무 사랑해 파주 헤이리마을에 ‘영토문화관 독도’를 개관해 운영하면서 인근 군부대와 공무원 대학 등 단체에서 독도강연”을 하고 있는 저자는, 스키동호회 정회원이자 풀코스 마라톤을 22회 완주한 건각이기에 북측 마식령 스키장에서의 스킹과 대동강변을 따라 달리는 평양마라톤 참가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