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시작되자, 당일 오전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즉각 담화를 내고 “우리 국가를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가장 집중적인 표현”이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앞서 김 부부장은 1일에도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 담화를 발표해 “나는 분명 신뢰회복의 걸음을 다시 떼기 바라는 북남수뇌들의 의지를 심히 훼손시키고 북남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희망이냐 절망이냐? 선택은 우리가 하지 않는다”며 남측의 결단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한미관계에서 남측의 입지가 협소하다는 걸 모를 리 없는 북측이 8.1담화에서 남측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 결단을 촉구한데 이어, 한미 연합훈련이 개시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8.10담화를 발표했다는 점에서, ‘김여정 8.10담화’라는 준비된 카드에는 몇 가지 의미 있게 짚어볼 게 있습니다.

먼저, 김 부부장은 담화 맨 끝에서 “나는 위임에 따라 이 글을 발표한다”고 밝혔는데, 위임을 한 주체는 당연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일 것입니다. 북측 사정상 ‘최고 존엄’의 위임이기에 이번 8.10담화를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8.10담화는 주로 미국을 향한 것입니다. 담화는 “우리는 이미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며 기존 대미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우리는 날로 가증되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절대적인 억제력 즉 우리를 반대하는 그 어떤 군사적 행동에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국가방위력과 강력한 선제타격 능력을 보다 강화해나가는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천명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국가방위력 및 강력한 선제타격 능력 강화’란 북한이 2018년부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자제하면서 사실상 모라토리엄을 유지해 왔는데, 이에 벗어나 핵과 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냉전’ 상태의 북미가 ‘열전’으로 전변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당연히 담화는 남측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담화에서 “이 기회에 남조선당국자들의 배신적인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한 줄로 유감 표시를 했는데, 이는 예고편으로 당일인 10일 오후 남북 통신연락선이 불통된 것을 시작으로 다음날인 11일 오전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의 담화로 확대된 것입니다.

김 통전부장은 담화에서 “우리는 이미 천명한대로 그들(남측) 스스로가 얼마나 위험한 선택을 하였는지, 잘못된 선택으로 하여 스스로가 얼마나 엄청난 안보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면서 “북남관계 개선의 기회를 제 손으로 날려 보내고 우리의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하여 똑바로 알게 해주어야 한다”고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남북관계가 새로운 갈등으로 비화될 공산이 커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의미 있는 대목입니다. 8.10담화는 “조선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남조선에 전개한 침략무력과 전쟁장비들부터 철거하여야 한다”면서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한 조선반도 정세를 주기적으로 악화시키는 화근은 절대로 제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언명한 점입니다. 이는 사실상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것입니다.

북한 언론매체나 반미집회 등에서 ‘주한미군 철수’ 주장과 구호가 여전히 등장하고는 있지만, 북미정상회담이 시작된 2018년 이후 김정은 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들고 나온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주한미군 철수’가 공개적으로 나온 것입니다.

북한의 기류가 바뀌는 것일까요? 북미관계에서 새로운 ‘강대강’이 시작되는 것일까요? 앞에서도 밝혔지만, 8.10담화가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김여정 부부장이 발표했기에 그 무게와 의미가 남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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