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용마중학교 교사)


늘 그러했지만 남북 간에 발생한 문제는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상대방을 비난하기 바빴다. 그 와중에 국민들은 정확하지 않은, 추측성 이야기들을 접하며 분노하고 휘둘리며 살아왔다.
 
서로 웃음 짓고 화해를 하는가 싶으면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해서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처럼 등을 돌렸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는 이러한 화해와 갈등의 반복이었다.
 
지난 6월 29일, 또 한번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서해 연평도 근처에서 우리 해군과 북한 해군 간의 교전이 발생했다. 도대체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아무도 정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러했을 것이다`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그중 가장 그럴듯한 이야기를 정답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적 아니면, 동지" 식의 단편적인 사고가 어느새 자리하게 된다. 
 
지금까지 남한의 언론에서 내놓은 견해는 북의 선제공격을 전제하고, `북한이 NLL을 침범하여 발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권에 반하는 군부의 독자적 행동`, `99년 연평해전의 치욕을 갚기 위한 복수극`, `방어 개념의 교전규칙에 원인`, `꽃게 잡이에 혈안이 된 어민들을 통제하다가 북의 기습 공격을 당했다` 등등의 기사를 전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몇몇 언론들은 앞장서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소리높여 주장한다. 국민들은 함께 흥분하기 시작한다. 또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당장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고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어위주의 교전규칙도 보다 적극적 개념의 교전규칙으로 수정할 것이 제기되었고, 기존의 5단계 교전수칙이 3단계로 단순화되면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이미 수정이 된 상태이다.

지난 6월, 우리를 돌아보자.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국민 모두가 붉은 악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하나가 되어 웃고 즐기는 축제의 장에 있었다. 더불어 축제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분단된 국가의 오랜 소망이 새록새록 솟아나고 있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붉은 악마는 당당히 "AGAIN 1966"이라는 카드섹션을 펼쳐 보였다. 분명히 1966년에 8강에 진출한 국가는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구가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은 남과 북을 하나의 민족으로서 언젠가 통일되어야 할 동일체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6월 25일 펼쳐진 독일과의 4강전에서는 `오 필승 코리아`와 함께 `오 PEACE KOREA!`가 대중적인 구호로 등장했고, 붉은 악마는 이 기념할 만한 날에 태극기가 아닌 한반도기로서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평화에 대한 기원을 담아 내고자 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정치성을 배제한다는 FIFA의 반대로 무산되었다.(평화의 축제를 기획해야 할 FIFA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행동을 반대했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북한 사회의 6월이 어떤 분위기였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지난 4월 29일부터 6월 29일까지 아리랑 축제를 실시해 왔다. 나름대로 공을 많이 들인 축제로 알려져 있으며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한다. 또한, 월드컵 대회의 여러 경기를 중계해주었다. 지난 7월 1일 북한 축구협회는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월드컵 4강까지 오른 한국팀의 선전을 축하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오는 9월에는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 축구대회를 가질 예정이었다. 그야말로 대립과 갈등의 시대는 가고 화해와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지난 6월을 지나면서 우리는 화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자세를 서로 키워왔다. 서로의 흠보다는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고, 하나됨의 희망을 발견해 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서해 교전은 지금까지 무르익은 분위기를 한순간에 뒤집어 버렸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기에 이러한 반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문제를 얼마나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돌이켜 본다면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반응들이 다소 지나친 것임을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서해교전의 정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점을 모두가 인정하고 차후 밝혀질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임 문제를 명확하게 논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흥분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일각에서 제기 되고 있는 금강산 관광 중단, 대북 지원 중단, 정부 책임자 경질 등 대북 강경책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남북 관계의 긴장은 일본, 중국, 미국 등 관련 국가들의 관계를 경색시킬 것이고 이는 군사적 측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발전과 직결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경제적인 측면을 말하자면, 월드컵을 계기로 몇몇 신용평가회사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희망의 분위기를 우리가 애써 냉전과 갈등의 분위기로 바꿀 이유는 없지 않은가? 
 
붉은 악마들이여! 제발 "AGAIN 1966"의 순수했던 설레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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