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란 말이 있지만, 6.15선언은 사후(死後) 무엇을 남길까요? 잠깐, 지나친 억측은 삼갑시다. 6.15선언이 아직 죽은 건 아니니까요. 다만 언제부턴가, 아마 10여 년 전인 이른바 5.24조치로 인해 남북관계가 절단되면서 6.15행사가 공식적으로 치러지지 않았으니, 거의 빈사 상태에 있다고는 봐야겠지요.

6.15선언 21주년을 맞는 올해도 남북 당국 간 행사가 없습니다. 남과 북의 언론매체에는 거개가 6.15의 ‘6’자도 안 보입니다. 그나마 남측에서 6.15남측위원회 등 일부 민간 차원에서 잊지 않고 조촐하게나마 행사를 하는 게 위안이면 위안이자. 미래를 향한 씨뿌리기 작업이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아무튼 6.15선언은 이제 잊힌 것일까요? 완전 사멸해 단순한 종잇장으로 형해화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6.15선언이 갖고 있는 가치나 의미는 2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절실하니까요.

알다시피, 6.15선언은 1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해 ‘민족공조’와 ‘민족자주’를 강조했으며, 특히 2항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해 통일방안의 단초를 적시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는 6.15선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합니다. 마침 분위기도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국가 간 장벽을 치며 교류를 막았던 코로나 팬데믹이 ‘백신의 시간’을 맞아 치유의 과정으로 접어들었으며, 특히 지난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북한이 아직 비난하는 담화를 발신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가 4.27 판문점선언과 6.12 싱가포르공동성명의 합의를 인정한 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해 대화와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로 한 점 등을 북한이 쉽게 물리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이를 의식한 듯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15일, 6.15선언 21주년 기념 ‘2021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통일정책포럼’에 참석해 “북측으로서 다시 대화로 나오기에 ‘꽤 괜찮은 여건’이 마련됐다”면서 “모처럼 마련된 기회의 창을 한반도의 평화로 다시 열어갈 수 있도록 정부는 남북관계의 조속한 복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나아가, 영국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을 마무리한 문재인 대통령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14일(현지시각) “북한이 동의한다면 백신 공급을 협력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점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이 장관도 위 민화협 포럼에서 북측에 대해 “코로나19의 방역 등 보건의료 분야에서 협력을 시작하고, 식량·비료 등 민생협력을 포함하는 포괄적 인도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는데, 지금 시기가 시기인 만큼 예사롭게 들리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2019년 말부터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북한은 2020년 초 국경폐쇄라는 강력한 정책으로 코로나19 유입을 막는데 성공했지만, 이제 코로나19로부터의 출구가 남아있습니다. 대개의 나라들이 백신 처방으로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쏟고 있고 또 일정 나라와 지역에서 성공을 거두고도 있습니다. 북한도 코로나19로부터의 탈출을 위해서는 백신이 절실할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잠잠해졌을 때 국경폐쇄의 빗장을 푸는 것은 너무 늦기 때문입니다. 남북관계 회복이 6.15선언 회복인 만큼, 6.15선언 회복을 위한 치료제가 코로나19 백신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호랑이가 죽어서 값비싸고 아름다운 가죽을 남기는 것처럼, 사람은 죽어서도 그 이름이 남으니 자신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라고 했습니다. 6.15선언은 죽어서 ‘민족통일’을 남길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민족통일이 이뤄지기 전까지 6.15선언은 죽거나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6.15선언의 생명력을 믿고 20년 넘게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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