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제8차 당대회 개정 규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북한의 제8차 당대회 개정 규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최근 입수되어 일부 내용이 국내 언론에 공개된 북한의 제8차 대회 개정 조선노동당 규약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한겨레]는 1일 조선노동당 새 규약을 검토한 결과라며,  '북, 76년간 지켜온 '남한 혁명통일론'을 사실상 폐기'라는 제목으로, 북이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노선 폐기 △두개 조선(Two Korea) 지향을 최고 규범인 당규약에 공식 반영했다는 주장을 1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신문은 이같은 변화가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던 1990년대 초반 남북 교차승인과 유엔동시가입이 비대칭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기울어진 현실이 본격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북은 '통일' 보다 '공존'을 모색하는 추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북이 일제잔재 청산을 이유로 새 표준 평양시간을 제정했던 일과 민족담론을 국가담론으로 대체한 '우리국가제일주의' 천명 등은 이런 변화에 앞선 여러 전조 현상 중 하나라고 짚기도 했다.

같은 날 [연합뉴스]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개정 당규약 서문에 당의 당면 목적을 설명하는 대목이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제7차 당대회)에서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으로 바뀐데 대해 북이 '적화통일'의지를 포기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개정 당규약에서 당원의 의무를 표현하면서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삭제한 것도 이러한 변화의 징후로 파악했으나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개정 당 규약의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관련 규정 중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제1비서'를 선출하며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대리인이다'라는 신설 규정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하면서, 제1비서는 조용원 당 비서가 맡았을 것이라는 추정도 전했다.

이같은 언론보도에 대해 '실로 놀라운 변화'라는 반응부터 '북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부족한 과잉해석' 등 다양한 의견이 확인되고 있다.

2018년까지 북의 대외무역일꾼으로 활동하다 탈북한 강문 씨는 "기존 규약에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삭제했다며 이를 '북 주도 통일혁명론'의 폐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역사적인 상식이나 정치적인 식견이 없는 것"이라고 최근 언론보도에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외세의 지배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삶을 지향한다는 것을 뜻한다"며, "어느 한쪽 민족 집단이 다른 세력을 몰아내고 하나로 만들자는 '적화통일'류의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외부의 간섭이 없이 한 민족끼리 평화롭고 화목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비롯해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모든 내용이 민족해방의 과제라는 것.

그래서 지난 1월 10일 당규약 개정 결정서 채택 관련 북측 보도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과업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위협들을 제압하여 조선반도의 안정과 평화적환경을 수호한다는데 대하여 명백히 밝혔다"고 한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사적 우위로 외세를 제압하고 평화통일의 분위기를 먼저 만들겠다는 명백한 의미이며, 남녘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외세를 상대로 통일분위기를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이미 준비된 핵억제력을 중심으로 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풀이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개정 당규약에서)당의 목표(통일과업)와 관련해 더 주목해야 할 내용은 지난 8차 당대회 당규약개정에 대한 결정서 내용"이라고 하면서 같은 대목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통일과업 관련 당면 목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확보를 제시하고 한반도는 일시적인 정전상태에 있는 지역이며, 이로 인한 불안정한 정세는 우리 겨레의 생존과 발전을 위협하고 조국통일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북의 개정 당규약을 통해 확인할 핵심은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나 '적화통일'의 포기라는 개념보다는 "(북이)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문제는 곧 통일의 유리한 환경과 조건을 조성하는 문제이며 통일의 전제를 마련하는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삭제에 대해 "(북이) 대남보다는 해외 통일전선업에 주력하겠다는 것으로 보이고 미국과 일본 등에 대한 남한내 투쟁이 아닌 북 스스로 국방력을 바탕으로 조선반도 평화와 통일의 환경을 만들겠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짚었다.

다만, 이 문제가 남북관계를 재규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현재 조선노동당 대남비서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나 김여정 당 부부장이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없애는 문제 등을 언급한 것 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다소 결이 다른 견해도 있다.

최근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을 출간한 유영구 전 현대사연구소 이사장은 "매우 흥미로운 기사인데, 해석에서 너무 진도가 많이 나간 것 같은 느낌"이라며,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을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 실현'으로 변경하고 관련 내용을 이에 맞추어 수정, 삭제한 것은 더 이상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의 시대가 아니라는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는 평을 내놓았다.

가설임을 전제로 "남북한은 두 개의 사상과 제도를 지닌 민주공화국이 실체로서 존재하고 그에 의거해 점진적 통일론(국가연합의 수용, 즉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지향하고 그 과정에서 '민족의 공동 번영을 이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북측이 갖고 있다"고 하면서 "이런 변화는 6.15선언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이를 규약에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해석이 분분하고 많은 오해가 있는 한 지점은 김정은 총비서 시대에 강조하는 '우리국가제일주의'가 기존 민족담론인 '우리민족제일주의'를 대신하여 두개의 국가를 지향하는 '국가담론'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앞서 [한겨레] 기사는 "김일성·김정일 '두 영원한 수령'의 '민족' 담론을 '국가' 담론으로 대체한 '우리 국가제일주의 시대' 천명 등으로 '통일'보다 '국가 정체성' 강화에 집중해왔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다시 1월 10일 [노동신문]의 당규약 개정 결정서 보도를 살펴보자.

"개정된 당규약에서는 우리 당의 영원한 지도사상인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더욱 부각되고 당의 최고강령과 사회주의 기본정치 방식이 명백히 규제되었으며 당의 조직형식과 활동규범들이 일부 수정보충되었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더욱 부각되었으며, 당의 최고강령으로 성문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군정치를 대체하여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라는 이름의 사회주의 기본정치 방식으로 정식화되었고 조직형식이나 활동규범 등도 김일성-김정일주의에 비추어 정리되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사상 이론이자 정치 강령의 수준이고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변화된 시기에 애국주의를 호소하는 구호의 영역이며, 기존 '우리민족제일주의'와도 어색하지 않게 병존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2019년 김정은 총비서의 육성 신년사에 처음 등장한 표현이다. 

북은 여러 계기에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사회주의 조국의 위대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며 나라의 전반적 국력을 최고의 높이에 올려세우려는 강렬한 의지', '우리 국가제일주의의 사상정신적 기초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애국주의',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우리 민족제일주의정신으로 우리 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빛내이기 위한 줄기찬 투쟁속에서 승화발전된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강문 씨는 북이 앞으로 '통일'보다는 '공존' 모색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통일하자면 평화적인 공존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이 먼저"라는 말로 의견을 대신했다.

이밖에 개정 당규약 관련해서 전문에 대한 접근이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최소한의 사실관계 확인에 문제가 있고 이에 따른 해석독점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이번에 일부 내용이 공개된 개정 당규약이 보도와 같이 지난 1월 9일 제8차당대회에서 개정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당 규약 3조 1항은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원이 입당할때에는 시, 군 청년동맹위원회의 입당보증서를 내야하며, 그것은 당원 한사람의 입당보증서를 대신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기존의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의 이름이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바뀐 것은 올해 4월 28일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제10차 대회 결정서를 통해서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4월 28일 이후 개정된 문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앞선 1월 10일 당규약 개정 결정서 채택 보도에서도 "청년동맹의 명칭을 고치는 문제는 앞으로 진행되는 청년동맹대회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 일부 언론이 제1비서를 조용원 비서로 특정한 것은 [노동신문]이 지난 4월 30일 김정은 총비서가 청년동맹 제10차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보도에서 조용원을 당 조직비서로 호칭한 것으로 보아 현재는 공석일 가능성도 있다.

제1비서를 당 총비서의 대리인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서는 후계구도이기보다는 권력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상적인 조치이며, 제9차당대회가 열리는 2025년까지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출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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