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0.4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 나가며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하였다.”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합의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제1조 제6항, 남북 철도·도로 연결은 ‘민족경제’의 첫 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3년여 세월이 지나도록 속수무책 시간만 흐르고 있다.

진장원,  『남북중 고속철도의 꿈』, 국민북스, 2020.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진장원,  『남북중 고속철도의 꿈』, 국민북스, 2020.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래서 유라시아교통연구소 소장인 진장원 한국교통대 교통대학원 교수의 『남북중 고속철도의 꿈』(국민북스) 발간은 더욱 반갑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심장을 높뛰게하는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남북 고속철도 건설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거리도 아니지만 저자가 주목한 것은 중국의 고속철도망이다. “북한에 경의선고속철도만 만들어지면 남쪽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북한을 경유하여 39,000km에 달하는 거대한 중국의 고속철도망에 편승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이 책의 중심을 이루는 제3장 ‘중국의 일대일로와 고속철도망’은 중국 고속철도의 역사 뿐만 아니라 저자가 직접 고속철도를 타고 중국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누비는 생생한 여행기를 담고 있다. 고속열차 안에서 중국 공안(경찰)에게 의심을 살 정도로.

“중국 당국자 입장에서는 어떤 외국인이 4월에는 베이징으로 입국해서 동쪽 국경 훈춘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더니 다시 7월에는 중국 서쪽 끝인 우루무치를 가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일 법도 했다.”(117쪽)

저자가 직접 체험한 중국의 고속철도는 이미 우리 KTX를 여러 측면에서 능가했다. 속도는 물론 소음과 진동까지. 세계 최장 구간은 기본이고 세계 최고속 열차(394.2km)와 세계 최고도 열차(5,072m)도 모두 중국 차지가 됐다. 더구나 중국 전역을 4종4횡을 넘어 8종8횡으로 연결하고 일대일로 구상에 따라 유라시아 전역으로 연결해 가고 있다.

그동안 한반도 종단철도(TKR)를 건설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과 연결함으로써 유럽으로 뻗어나간다는 구상이 주종을 이뤘다면, 이제 중국의 고속철도망에 ‘편승’하면 유라시아 어느 곳으로도 닿지 못할 곳이 없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도라산역에서 중국 단둥역까지 약 400km로 1시간 반, 서울에서 베이징 1,400km는 약 5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고속철도로 5시간 이내에 연결되는 “서울-평양-베이징, 선양-창춘-하얼빈-훈춘-블라디보스토크는 명실상부한 거대연담도시(Megalo Police) 권역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인구 4억 2,500만명에 지역총생산량(GRDP) 5,960조원 세계 최고의 메갈로폴리스 경제권이 가능해진다는 것.

결국 현실은 남북 철도연결로 돌아온다. 아무리 현란한 구상을 제시하더라도 북한을 통과하지 않은 고속철도는 의미가 없기 때문. 저자가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행부터 ‘한반도 종단철도와 북핵일지’를 하나의 절로 중요하게 다룬 이유다.

“철도주권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은 2013년 12월8일 남한 측 기업을 포함하여 중국과 3자 의향서를 작성”했고, “2014년 2월 24일에는 개성-평양까지 189km는 한국 기업이, 평양-신의주까지 187Km는 중국 기업이 건설하기로 계약서까지 작성”했지만 우리 정부는 계약주체인 (주)G-한신을 홀대했고 북한의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158쪽)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여한 북한 방문단은 서울역에서 경강선 KTX를 타고 강릉역에 도착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던데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솔직히 토로하기도 했다. 북측 철도구간 조사 등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지금은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어쨌든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동아시아 철도·경제·에너지 공동체’ 구상을 제안했고, 최근에는 보건·방역과 기후위기 협력까지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한국과 중국 간 해외직구는 양방향 모두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2019년 기준으로도 약 246만건 약 2조원에 달하지만 항공이나 해운으로만 운송되고 있다. 남북중 고속철도가 연결되면 시간과 비용 면에서 상당한 경쟁력이 예상되기도 한다.

저자는 남북중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재정조달 문제부터 전력공급과 통합 기술사양, 관리시스템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까지도 하나하나 짚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철도통합 사례도 추상적인 논의를 넘어서는데 인용되고 있다.

아마 광명시장 출신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더불어 남북중 고속철도의 실현을 위해 직접 발로 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남북중 고속철도가 ‘북한 퍼주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선은 남한 경제를 위해서 시급한 일”이라는 논지를 펴며 국민 설득에 나서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남북중 고속철도의 꿈을 그리며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제시하고 있는 점은 저자의 진정성과 역사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선각자’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회의체 아이디어‘가 실현됐다면 “오늘날 유럽 연합과 같은 지역 공동체가 이미 아시아에 출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꿈꿨던 동양평화 공동체를 고속철도를 타고 둘러볼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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