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하나의 제도가 장기화되고 관료화되면 온갖 불순물이 섞이기 마련입니다. 사회주의나라 북한도 예외는 아닙니다. 북한이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를 지난 8일부터 설날 전인 11일까지 나흘간 진행했습니다. 이번 전원회의는 지난 8차 당대회(2021.1.5-12) 종료 이후 한 달여 만에, 그것도 통상 일정보다 긴 4일 동안 개최돼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번 전원회의에서는 모두 5개의 의정(안건)이 상정됐는데, 가장 중요한 의정은 단연 첫째 의정인 ‘당 제8차 대회가 제시한 5개년 계획의 첫해 과업을 철저히 관철할 데 대하여’였습니다. 여기에서 ‘5개년 계획’이란 지난 8차 당대회에서 제기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말합니다. 북한의 최우선 과제가 경제발전을 통한 ‘인민생활향상’이고, 이는 지난 8차 당대회가 7차 당대회 때 제기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목표가 “엄청나게 미달”되었기에 그 ‘결함의 원인’의 찾고, 이어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개최됐다는 점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김정은 총비서는 이번 전원회의의 취지에 대해 “5개년 계획 수행의 첫해부터 실제적인 변화, 실질적인 전진을 가져올 수 있는 구체화된 실천의 무기, 혁신의 무기를 안겨주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즉 “제8차 대회가 결정한 새 전망목표를 달성하는데서 첫해 사업이 매우 중요”하기에 “5개년 계획도 첫해 계획이 잘 세워지고 제대로 집행되어야 최종목표 점령에로 확신성 있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7차 당대회 때 제시한 ‘5개년 전략’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김 총비서의 이 같은 언명은 ‘시작이 반’이라는 우리 속담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은가 봅니다. 5개년 계획과 관련 “내각에서 작성한 올해 인민경제계획이 그전보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분석한 것입니다. 그는 북한의 관료들이 5개년 계획에 근거해 세운 올해 첫해 계획에서 나타난 몇 가지 무미건조한 사례들을 열거했는데, 마치 북한판 관료주의의 진열대를 보는 듯싶습니다.
농업부문에서는 5개년 계획의 첫해부터 알곡생산목표를 주관적으로 높이 세워놓아 관료주의와 허풍을 피할 수 없게 하였으며, 반대로 전력공업부문 등에서는 생산계획을 연말에 가서 비판을 받지 않을 정도로 낮추어 기안하는 편향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건설부문에서도 평양시 살림집 건설계획을 당대회에서 결정한 목표보다 낮게 세웠는데 이는 보신과 패배주의의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김 총비서는 사회주의의 장점인 집단주의의 폐단에도 메스를 들었습니다. 다름 아닌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입니다. 그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가 개별적인 사람들이 저지르는 반당적, 반인민적 행위라면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는 부문과 단체의 모자를 쓰고 자행되는 더 엄중한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 행위”라며 낙인찍은 것입니다. 그는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에 대해 “당권, 법권, 군권을 발동하여 단호히 쳐 갈겨야 한다”고까지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김 총비서의 비판은 계속됩니다. 둘째 의정 ‘전사회적으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더욱 강도높이 벌릴 데 대하여’에서도 “특히 당조직들이 일꾼들 속에서 나타나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 행위를 극복하기 위한 작전을 강도높이 전개하는 것과 함께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비호 조장시키는 대상들을 일꾼대열에서 단호히 제거할 데 대하여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비판의 대미는 인사 교체입니다. 김 총비서는 지난 8차 당대회에서 임명한 김두일 당 경제부장을 한 달 만에 경질하고 오수용 제2경제위원장을 당중앙위원회 비서 겸 경제부장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인사가 만사’(人事萬事)이기에 속전속결로 처리한 것입니다.
김 총비서가 지적한 ‘관료주의와 허풍’, ‘보신과 패배주의’, ‘세도와 부정부패’ 그리고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 등은 더 이상 자본주의사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념과 제도에 관계없이 관료화된 개인이나 집단에 반드시 나타나는 독버섯과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이제 ‘북한판 관료주의와의 투쟁’이 시작됐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까요? 분명한 건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북한의 집념이 매섭게 일관하다는 점입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