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둔 지난 1월26일 정범진 (주)겨레사랑 대표는 통일부로부터 체납액을 납부하라는 독촉장을 받았다. 

(주)겨레사랑 대표이사를 수신인으로 하여 통일부 운영지원과에서 보낸 이 독촉장에는 2016년 6월 7일 265만여원, 2017년 11월 20일 1,373만여원을 비롯해 총 1.639만여원의 체납액을 조속히 납부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형편상 일시납부가 어려운 경우 분납 관련 문의를 해달라는 친절한(?) 안내와 함께 15일 내에 납부하지 않을 경우 '국가채권관리법' 제15조에 의거해 소유재산에 대한 압류조치를 취하겠다는 숨막히는 압력도 담겨있다.

채무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비고란에는 2015년 서울고등법원 판결 번호가 적혀 있다.

통일부에서 (주)겨레사랑에 보낸 독촉장. [사진-겨레사랑 제공]
통일부에서 (주)겨레사랑에 보낸 독촉장. [사진-겨레사랑 제공]

간단히 경위를 말하자면 이렇다.

개성공업지구 입주가 예정되어 있던 경협사업자인 (주)겨레사랑 정 대표는 LH공사로부터 토지를 분양받고 입주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2010년 5.24조치로 일방적인 사업중단 통보를 받았다.

정 대표는 5·24조치로 인해 발생한 피해구제에 나서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손실보상을 청구했으나, 대법원은 △5·24조치는 적법한 조치이며, 기업이 입은 피해는 특별한 희생이 아니다 △보상에 관한 근거 법률이 없는 이상 헌법 제23조 제3항에 의하여 직접 손실보상청구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패소결정을 내렸다.

이번 독촉장은 한마디로 패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원고인 정 대표가 진행한 소송으로 인해 발생한 비용을 내라는 것이다. 

5.24조치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보상청구를 한 개인은 정 대표를 비롯해 3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겨레사랑에 대한 소송비용 납부 독촉 경과 개요

- ㈜겨레사랑은 개성공단 입주예정기업으로서 2007년 상업용지를 분양받아 오피스텔(지하 4층, 지상 14층) 건립을 준비하던 중 2010년 5·24조치로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추가)투자가 금지됨에 따라 사업이 중단됨.

-이에 따라 사업 중단의 책임을 대한민국 정부에게 물어 2011년 경협보험금 지급 소송과 손실보상 청구 소송 등 2건의 소송을 통일부를 상대로 진행함.
 
-경협보험금 지급소송은 해당 사안이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된다는 승소판결을 받아 투자금액 일부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수령함.

-손실보상 청구 소송은 5.24조치가 통치행위이며, 재산권의 보호를 헌법에서 보호하고 있지만 그 역시 구체적인 법률로서 보장해야 하는데 해당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2015년 6월 원고 ㈜겨레사랑에 패소 판결을 내림.

-이에 원고 ㈜겨레사랑은 2016년 2월 헌법재판소에 해당 입법을 명령해달라는 취지의 '입법부작위에 따른 헌법소원'을 제기해 놓은 상태임.
 
-통일부는 2015년 대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원고에게 소송비용을 최고하여 2016년, 2019년, 2021년 각각 16,391,220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납부하라고 독촉하고 있음.

 

먼저 통일부 당국자에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소송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 패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원칙이 있고, 통일부는 법적 절차에 따른 조치를 취했을 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부의 조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사람은 마땅히 감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지난해 5.24조치 10주년에 즈음해 '역대 정부에서 유연화와 예외조치를 거치면서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되었다'고 발표한 통일부의 입장을 '5.24 무효화'로 오해하면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남북교류협력 사업 중단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그 경우에도 경영정상화를 위해 재정지원 등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한 것은 과거 5.24조치와 개성공단 전면중단 등 정부 조치의 문제를 인정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렇지만 독촉장 발송 등 법적용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은 강경했다.

정 대표의 생각은 정반대편에 있다. 우선 문재인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행해진 5.24조치와 개성공단 폐쇄 조치 등의 문제점을 잘 알고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연급하면서도 경협기업들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서는 소송비용 납부를 독촉하는 등 지극히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통일부는 가장 먼저 독촉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 그리고 해당 기업에 대한 사과와 함께 그 최고행위의 근거가 되는 원인 자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조치를 취해 이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 조치로 정부가 정부 입법으로 피해보상 입법을 서두를 것,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5년전 ㈜겨레사랑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제기한 '남북경협기업 손실 보상에 대한 입법부작위 헌법소원'에 대해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4일 변호사 출신 서동용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순천·광양·곡성·구례 을)에게 물어 보았다.

서 의원은 "과연 국가가 당사자인 원고에게 소송제기가 부당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안인가라는 측면에서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라고 한 것은 국가가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청난 피해를 당한 국민이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어서 국가로부터 보상받을 수 없는지를 검토해달라는 취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국가가 법리적으로 승소했다고 해서 소송비용에 대한 책임까지를 국민에게 떠넘기면 과연 국가는 정당한 것이냐"는 것이다.

서 의원은 "원칙적으로 소송의 패소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한 것은 정당하게 보일 수 있고 승소한 정부측으로서는 소송비용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절차를 밟지 않아 결국 국고에 손실을 입힌 것 아니냐는 문제가 나중에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패소자 부담의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사안은 아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패소자 부담 원칙이란 먼저, 누구를 상대로 하건 소송 패소에 대한 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에 부당한 소를 제기하지 말라는 취지이고 특히 사인간의 관계에서 권리 없는 자가 부당하게 권리 당사자인 것처럼 나서 소송을 제기했을 때 변호사 보수 등 최소한의 소송비용을 패소한 측에서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경우 국가를 상대로 부당한 소를 제기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 않느냐"는 근본적 물음을 제기한 것이다.

특히 5.24조치나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통치행위로 합리화했던 기존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정부가 남북교류협력법을 개정하려고 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반성적 고려가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 의원은 "우선 소송비용을 원고인 패소자에게 전액 부담시키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판단해달라는 신청을 법원에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가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손해보상을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상식이다.

다가오는 2월 10일 개성공단 폐쇄 5년을 맞이하는 입주기업의 하소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미 (주)겨레사랑을 비롯해 2010년 5.24조치로 인해 졸지에 생업을 잃은 경협 및 교역사업자들이 오랜 세월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의무를 묻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에 협력하다 어려움에 직면한 많은 자영업자들이 '경영정상화를 위한 지원'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지는 손실 보상을 촉구하고 있지 않나.

이제 국가는 고지서 보내듯 독촉장을 보낼 일이 아니라 국민의 독촉에 답해야 할 때이다.

(추가 : 7일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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