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탈북문제’와 ‘탈북 문제의 정치학’은 여전히 우리의 현재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만들어진 탈북과 북한의 형상은 우리 안에 내재된 무의식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진영에 있는 나라들은 한국 사회(혹은 미국 사회) 내부 문제를 직시하는 대신, 북한에 투영해 타자화시킨다. 기다렸던 민주화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여러 모순을 낳고 현재 체제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킬 때, 북한 인권 이데올로기는 이를 무마시키는 장치로 쓰여 온 것이다.”
- 본문 11~12쪽, 박현옥 캐나다 요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추천사 중

지난해, 평소 잘 아는 교수님의 저서(김성경, 『갈라진 마음들』, 창비, 2020년)를 읽고 탈북민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마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본 적이 있었다. 나는 과연 그들을 진정 우리 사회의 동등한 일원으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혹시 나도 모르게 그들을 우리와는 ‘다른 이’들로 생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작더라도 그 어떤 편견과 잣대로 그들을 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깊이 반성하고 돌아본 시간이었다.

조천현,『탈북자』, 보리출판사, 2021년 1월. [자료사진 - 통일뉴스]
조천현, 『탈북자』, 보리출판사, 2021년 1월. [자료사진 - 통일뉴스]

역시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저자 조천현 작가의 『탈북자』를 읽은 지금은,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여러 복잡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났던 수많은 탈북자들이 떠올랐다.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복잡하다. 물론 다양한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주로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명확하다. 그들은 여전히 외부인인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는 아닌가?

정확한 수치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현재 약 3만 4천여 탈북자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남한행을 선택한 이유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살기 위해 국경을 넘은 이들도 있고,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한국 땅을 밟은 이들도 있다. 자녀의 교육 때문에 탈북을 감행한 이들도 적지 않다. 여전히 그들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탈북했다고 믿는 이들에겐 조금은 새로운 사실일 것이다.

저자 조천현은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북·중 접경지역을 헤아릴 수 없이 방문하여 북녘을 사진에 담고, 영상을 촬영한 이다. 그리고 책을 통해 알 수 있듯, 무수히 많은 탈북자들을 만나왔다.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탈북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책은 그러한 저자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다.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탈북자에 대한 그 어떤 결론을 내리자는 것이 아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탈북자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반도 평화, 남북관계, 통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늘 뻔한 대답 주위를 맴도는 문제에 대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비교적 오래전 인터뷰들이 비중 있게 담겼다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탈북자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가 어제와 오늘로 딱 잘라 나눌 수 없기에,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고 또한 필요하다. 20년 전 탈북자의 탈북 동기와 중국 등 제3국에서의 삶이,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거나 더 나아졌다고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 신분을 숨긴 채 수많은 차별과 억압, 착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탈북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에게 ‘한국으로 보내준다’면서 돈을 챙기는 이른바 브로커는 이제 100% 사라졌는지, 선교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이용하고 있는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없는지, 우린 여전히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에게 또 다른 숙제를 안겨준다. 북·중 국경을 넘는 이들이 단순히 북 체제가 싫어서, 혹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탈북을 선택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 우리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그리고 탈북자들 각각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생각해 봤나?

저자는 탈북자들과의 오랜 인터뷰와 만남을 통해 그들을 세 종류로 표현한다. 다시 ‘북조선으로 가고자 하는 탈북자’, ‘중국에 정착하고자 하는 탈북자’, ‘한국행을 바라는 탈북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국경을 건넜지만, “죽어도 조선에 나가(들어가) 죽어야지요”말하는 탈북자와, 다양하고 기구한 사연들로 인해 다시 북에 들어가지 못하고 중국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혹은 살겠다는 탈북자들. 그리고 갚아야 할 빚 때문이라도 한국에 꼭 가야 한다는 이들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탈북자를 얼마나 단순하게 그리고 자의적으로 생각해 왔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또한 책을 통해 개인적으로 크게 반성한 부분 중 하나는 그동안 내가 탈북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일부 비판적인 시각 역시 일정 부분 불가피한 측면, 즉 우리 사회가 조장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들은 저자에게 “한국에 들어간 조선 사람이 조선을 욕하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 왜 자기 고향을 욕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분노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한국에 들어온다면 아마도 그런 이들을 곧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매우 슬픈 이야기지만, 분명한 현실이다. 자신을 부정해야만 자신을 인정받는 모순에 한 번쯤 좌절하지 않은 탈북자들이 있을까.

책의 말미에는 종교의 탈을 쓰고 이른바 탈북자 장사, 인권 장사를 했던 일부 종교인들의 추악한 진실이 담겨 있다. 가상의 순교자를 만들고, ‘카더라’ 수준의 이야기를 마치 사실 인양 부풀리며, 결국 제 배를 채운 이들의 이야기. 그들에게 속아 운명이 바뀌어버린 탈북자 이야기들. 분노보다는 허탈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리고 과연 그러한 일들이 지금은 전혀 없을까 자문하게 된다.

지금도 ‘자기 고향을 욕하면서 살아’가는 탈북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연명을 한다. 감히 내가 그들을 비판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자격이 없다. 하지만 끊임없이 생각은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 화해를 바라고, 공존을 바라고, 통일이라는 것을 원한다면,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3만 4천여 탈북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탈북자들을 이용해 ‘정치적’, ‘상업적’ 장사를 하는 언론과 정치인들, ‘인권’을 따지며 정작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이들. 또한 ‘인권’에 눈 감으며, 역시 그들의 인권에 모르쇠하는 이들. 슬프지만 우리는 아직 공존과 통일을 떠들 자격이 없다.

일단 나부터 머리를 다시 씻고 맑은 눈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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