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공개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당사업총화보고(이하 ‘보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핵무력’을 포함한 ‘국방력 강화’에 관한 것이다.
2017년 11월 ‘국가핵무력 건설대업’을 완성하기까지와 그 이후 ‘핵무력 고도화 투쟁’을 상세히 보고하고 첨단 재래식 무기를 보유하게 된 과정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성능 개량, 핵추진 잠수함 및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정찰위성과 무인 정찰기 보유 등 군사력 증강 계획을 거리낌없이 공표했다.
“우리 국가를 겨냥한 적들의 첨단무기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자기의 힘을 부단히 키우지 않고 무사태평하게 있는 것보다 더 어리석고 위험천만한 짓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우리 국가를 겨냥한 적들”이란 “최대의 주적”으로 규정된 미국, 아태 지역 내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일본, 그리고 정전상태로 67년간 대치해온 남측(한국)을 지칭한다.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 돌입한 미국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아태 지역 미군기지와 동맹국들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추진 중이다. 일본은 일단 보류하기는 했으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빌미로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를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앞두고 자주 국방력 강화를 명분으로 △첨단 정찰위성, △경항공모함, △차세대 잠수함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미 미국으로부터 탄도미사일 탄두중량 제한 해제를 받아냈고, 2021년까지 스텔스 전투기 ‘F-35’ 40대를 들여오게 된다.
9일 <조선중앙통신>은 “보고에서 제기한 국가방위력 강화를 위한 중대과업들은 미국과 적대세력들의 분별없는 군비증강으로 국제적인 힘의 균형이 파괴되고 있는 실정에서 이 땅에서 전쟁접경과 완화, 대화와 긴장의 악순환을 영원히 해소하고 적대세력들의 위협과 공갈이라는 말자체가 종식될 때까지 나라의 군사적 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갈 철의 신념과 의지의 표명으로 된다”고 밝혔다.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기는 했으나, 이 경우 북한이 그간 힘을 쏟아온 경제건설을 위한 평화로운 대외환경 확보, 특히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가 어려워지는 딜레마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력갱생’, ‘자급자족’ 강조와 평양시 5만 세대 살림집 건설 등 현실적인 경제 목표 제시, “오랜 력사적 뿌리를 가진 특수한 조중관계”와 “전통적인 조로관계의 새로운 발전” 언급이 이를 뒷받침한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강력한 국가방위력은 결코 외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에로 추동하며 그 성과를 담보하는 위력한 수단으로 된다”고 밝혔다. 특히, “대미전략을 책략적으로 수립하고”라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트럼프 행정부 때 품었던 미국에 대한 일말의 선의도 버렸다는 말로 들린다. “새로운 조미관계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는데 있다”면서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좋게 말하면 자주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일방적인 대미.대남 행보가 보다 강화될 것임을 예감하게 한다. “우리가 역량이나 행동의 자유를 포기하면서까지 북한과 대화할 생각은 없다”는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방침을 연상시킨다.
당면해서는 군사훈련과 전력증강을 둘러싼 한미와 북한 간 기싸움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첫 고비는 2월말~3월초다. 북한 군이 동계훈련을 마무리하면서 실사격 훈련을 실시하는 시기이자, 한.미가 연합군사연습을 시작하는 시기다. 북한이 어느 수준으로 무력시위를 할지, 한.미가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변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이다.
3월 고비를 넘긴다 해도 남북의 국방력 강화가 미·중의 지정학적 경쟁, 관련국들의 연쇄 반응과 맞물리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을 군비경쟁의 ‘악순환’으로 몰고갈 수 있다. 이 경우 가장 괴로운 처지에 빠질 당사자는 남과 북이다.
문재인 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지향하는 외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신년사’를 발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