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세월이 꽤 지났으니 누구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어지간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이름이 어떤 식으로든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민혁당이라는 전사(前史)도 있지만 '이석기'는 세상에 이름을 알린 순간부터 줄곧 'RO(혁명조직)', '전화국·도시가스 폭파', '내란음모·선동', '경기동부' 등과 연관 검색어였고 '통합진보당 해산'의 결정적 원인으로 거론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진보의 대연합이 절실했으나 결과는 통한의 분열로 나타난 그때. 사람들은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을 '이석기'에게 물었고 그후 오랫동안 '이석기'는 불온시, 금기시 대상이었다.
그를 구속하고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박근혜는 얼마 못가 탄핵되었지만 그에 대한 세간의 냉랭한 시선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새로운 진보의 흐름에 기꺼이 몸을 던졌던 이들에게도 '이석기'라는 이름은 지우기 어려운 하나의 낙인이었다.
그렇게 2013년 9월 4일 구속된 '이석기'는 총 9년 8월의 확정판결을 받고 지금까지 8년이 넘는 징역을 꼬박 채우고 있다.
2015년 1월 22일 대법원은 제출된 증거만으론 'RO'의 실체를 인정하기 어려우며, 핵심 쟁점인 '내란음모'혐의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실질적 위험성 인정'이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으로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석기 의원이 혁명조직 'RO'의 총책으로서 조직원들과 가진 비밀회합에서 통신·유류시설 등 국가기간 시설 파괴와 인명 살상을 모의했으니 '내란음모·선동 및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찬양' 등 혐의로 구속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 국정원의 핵심적인 주장은 대부분 부정되었지만 형량 선고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2019년 3월 19일 별건 재판에서 징역 8개월이 추가되어 최종 9년 8월을 선고받은 그의 만기출소일은 2023년 5월이 된다.
'박근혜 정권이 만든 최장기 양심수 이석기'에게 형 집행을 면제해주거나 유죄 선고효력을 정지시키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취해지지 않으면 그는 탄핵된 박근혜와 5년 임기를 마친 문재인정부를 거쳐 새 정부가 들어서고도 1년이 지나서야 문을 열고 세상을 나오게 되는 것이다.
29일 오전 정부가 발표한 연말 특별사면 대상자 3,024명의 명단에서 이 의원은 또 제외됐다.
"한 사람에게 국가가 가하는 고통에 대한 이 무감각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교수는 최근 출간된 『새로운 백년의 문턱에 서서-이석기 옥중수상록』 추천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인권감수성에 대해 개탄을 금치못했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한 사람을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사회와 격리시켜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이석기'는 '개인이나 소수의 이익이 아니라 다수의 이익, 공동선을 위해서 양심에 따라 행동하다 구속된 사람', 즉 양심수이다.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는 매월 누리집에 발표하는 '양심수현황'에 대전교도소 4012 수감번호를 달고 있는 이석기 전 의원을 첫 머리에 올리고 있다.
서로 의지하면서 행복하고, 다른 이를 위해 노력하면서 자유로운 존재인 사람을 그 관계에서 오랫동안 떼어놓는 것은 반 인권적이다.
이석기 의원도 옥중수상록 서문에서 "나는 생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옥에 갇힌 사람인데, 이 안에 들어와서도 생각을 하고 있으니 역설적이지요. 사람이 생각하는 건 존재 그 자체의 특성일테고, 이걸 권력의 자로 재어서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감옥에 가두는 건 야만적인 체제"라고 따졌다.
옥중수상록에는 보다 발전된 민주주의와 민중들의 더 나은 삶, 자주적인 한반도를 위한 사색의 흔적이 오롯이 담겨있다.
자신을 가둔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반대파에게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이들을 소멸시키려 했다'는 점을 민주주의 파괴행위 중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지배를 선언하고 이를 위한 절차를 규정하지만 동시에 '다수가 되지 못한 이들'을 보호한다. 권력을 쥐고, 그에 따라 폭력을 독점하게 된 정치세력이 반대파를 힘으로 억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희생양을 만들고, 그들과 친하다는 이유로 차별의 범위를 넓히면서, 그들과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공포를 만들어 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완전히 대척점에 선 행동이다. 민주주의는 이런 배제의 벽을 무너뜨리고 한발 한발 전진해왔다"라며 자신이 당한 고통에 관한 성찰, 민주주의가 결국 승리한다는 신념을 밝혔다.
나아가 그는 "우리가 민주주의자이려면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넘어선 근본적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며, '분단과 불평등에 정면으로 대결하는 정치'만이 민주주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새로운 백년을 향한 문턱에서 △ 거대 양댱체제를 벗어나 민중과 강력히 결합한 진보정당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탈동맹-선제적 군축과 남북협력 △세습되는 불평등을 바꾸기 위한 힘에 대한 것 등으로 고민은 이어진다.
그는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는 더 이상 소득격차를 줄이는 방법으로 자산의 격차를 좁힐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며, 소득의 재분배가 아니라 자산의 축적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언급했다.
토지는 모두의 것이고 주택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니 토지와 주택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인륙 역사상 사유재산을 가장 강력하게 통제한 사회주의 뿐만 아니라 공유제를 주장한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부터 '유토피아'를 쓴 영국의 정치가 토마스 모어는 물론, 뉴딜 시대의 미국이나 유럽선진국들도 상당기간 고소득자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한 사실 등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사유재산제도의 정당성을 회의한 묵자와 토지균분제를 주장한 조선의 실학사상가들, 그리고 조소앙 선생이 기초한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삼균주의' 건국강령에서 토지와 '대(大)생산기관'의 국유화를 주장한 것 등을 집요하게 추적하고는 '재산권이란 게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라는 점을 역사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공동체의 자주성을 지키면서 평등을 향한 대담한 변화를 시작할 때이며, 우리가 세상 그 누구보다 앞서서 이 길을 열어나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진보정치의 도약을 위해서는 2000년 초반에 그랬던 것 처럼 현장에서 운동을 일궈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조합이 없다면 노동조합을 만드는데서부터 시작하고 그래서 노동자, 농민들이 진보정당을 흔쾌히 지지하면 진보정치의 도약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일을 해 낼 개척자들은 우리 사회에 충분히 있다고 낙관했다. 특히 청년과 여성의 세력화는 진보의 시대를 여는데서 관건이 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많이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갇혀 있는 이가 나와서 자유로운 토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