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가 세계 상황은 물론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의 이동성에 제약이 생기자 국제사회가 단절되고 있는 것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요. 남북관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로부터 시작된 남북관계 경색이 지난해 말부터 창궐한 코로나19로 인해 더 장기성을 띠며 악화되고 있습니다. 설사 남북관계가 풀렸더라도 교류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19가 한창이니까요. 이런 판에 최근 있었던 코로나19를 매개로 한 ‘강경화-김여정-강경화’로 이어진 일련의 남북 간 언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5일 바레인에서 열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초청 연설 질의응답에서 북한의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좀 이상하다”고 말했을 때 사실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강 장관은 “북한은 여전히 코로나19 확진 사례들도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믿기가 어렵다”며 “모든 징후가 북한 정권이 자신들이 없다고 얘기하는 그 질병(코로나19)을 통제하는 데 아주 강도 높게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는 북한에도 확진자가 발생했을 텐데 왜 없냐고 하며, 일종의 대북 불신을 나타낸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흘 후인 8일 북측이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상대는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김 제1부부장은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망언’이라고 규정하고는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타박했습니다. 물론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되어야 할 것”이라는 협박(?)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김 제1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지난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이후 6개월 만에 나온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타박이나 협박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담화가 네 문장으로 매우 짧다는 사실입니다. 남측이나 미국을 향한 북측의 담화나 성명은 촌철살인과 같은 단어와 해학적 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비교적 긴 편인데 이번엔 ‘이례적으로’ 매우 짧았습니다. 물론 강 장관의 ‘망언’에 대한 원 포인트 지적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 짧은 담화가 북측의 현 상황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북측은 지난 6월 중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한 이래, 최근 5-6개월간 대남 발언이 전무했습니다. 아울러 대미 발언에도 특별한 게 별로 없었습니다. 대남 및 대미 발언을 부러 참아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싶습니다. 지난 8월, 내년 1월 제8차 당대회 개최를 밝히고 나서 더 그랬습니다. 이는 북측이 내년 1월 당대회 개최 때까지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무언의 표시인 셈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측이나 미국이 뭐라고 해도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월 말 취임 이래 지금까지 숱하게 대북 발언을 했지만, 평소 북측 같으면 한두 번쯤 버럭 했을 법도 한데 쿨하게 넘어가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강 장관의 발언만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유는 명확합니다. 코로나19 방역은 북측의 자랑이자 김정은 위원장의 성과인데, 강 장관이 이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한명의 악성비루스(바이러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며 인민에게 감사를 표하며 사실상 ‘코로나19 확진자 없음’을 만천하에 알렸는데, 강 장관이 애꿎게 ‘이상하다’며 시비를 거니 이는 곧 ‘최고 존엄’을 건드린 셈이 된 것입니다. 그래도 김 제1부부장은 대남 비난 담화를 네 문장으로 짧게 ‘용건만 간단히’ 했을 뿐입니다.
심기일전한 강경화 장관이 11일 다시 발언을 했습니다. 강 장관은 이날 한 국제 안보포럼 기조연설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코로나19 대응 협력, 인도적 지원 등 우리의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북측에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사실 이 제안은 강 장관이 지난 5일 바레인 연설에서도 밝힌 핵심 내용과 같은 것인데, 김 제1부부장이 그 제안보다는 북측의 비상방역상황과 관련된 문제성 발언을 콕 찍어 비판한 것입니다.
아직 북측의 반응이 없는 걸로 보아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듯싶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번에는 코로나19를 매개로 한 남북협력에만 한정했기 때문입니다. 강 장관은 바레인 연설에서의 자신의 발언에 대한 오버를 에둘러 인정한 셈이고, 이에 아직 답변이 없는 걸로 보아 김 제1부부장도 그 정도면 넘어가자며 묵인을 한 셈입니다. 네 문장의 짧은 담화와 묵인! 코로나19 상황에 8차 당대회를 앞둔 북측의 심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남 부문에 책임을 지고 있기에 김 제1부부장은 언제고 다시 전면에 등장할 것입니다. 김 제1부부장이 대남 비난이 아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