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철 / 6·15합창단
“헉헉~”
“아저씨 그렇게 올라가다가는 죽어요~~”
늦잠으로, 6·15산악회(회장:권오헌)와 함께하는 ‘예빈산 산행’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어져 허겁지겁 서둘렀지만 야속한 전철은 나의 처지와는 아랑 곳 없이 계속 간발 차로 떠나버리고, 결국 1시간 가까이 늦어졌고 어떡하든 점심시간 안에는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덕소행 전철에 내려 택시를 탔다.
“기사님, 오늘 예빈산 산행이 있는데 늦어서 그러니 입구까지 부탁드립니다.”
택시에 내려 등산객 차림의 행인들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예빈산 간다고 했으니 거기 입구에 내려줬겠지 했던 믿음과 달리 입구 안내표지판엔 '예봉산 입구'라고 써 있었다.
‘예빈산을 예봉산으로도 부르나?’
갸웃거려졌지만 그걸 따져 볼 시간이 없었다. 난 이미 1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을 지각했으니까.
첫걸음부터 속도를 냈고 난 군대에서도 해보지 못했던 전투산행에 돌입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안경엔 입김과 땀으로 아무 것도 안 보여 아예 벗어 주머니에 넣고 흐릿한 시야로 정신없이 걷고 또 걸었다.
“헉헉”
한참을 가뿐 숨을 들이쉬며 오르는데 하산하던 등산객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을 건넨다.
“아저씨, 그렇게 올라가다간 죽어요.”
“네... 네...”
‘저도 알아요~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일행들은 벌써 정상에 올랐을까?’
머릿속은 온통 먼저 올라간 일행들 생각뿐이었다.
한참을 오른 지 30여 분 정도 됐나? 저 멀리 정상이 보였다.
얼핏, 사진 찍는다고 어설픈 포즈에 정신없는 여자분, ‘효정인 것 같은데...... 딱 걸렸어’
놀래킬 생각으로 천근만근인 걸음을 재촉해 정상에 올라보니, 약 15명 정도의 첨 보는 일행들이 옹기종기 모여 막걸리를 들이키고 있었다.
‘어랏~ 다들 어디갔지? 벌써 하산했나?’
불안감에 얼른 효정에게 전화했다.
“효정아~ 어디야? 여기 예봉산인데 아무도 없네?”
“뭐? 야! 이 바부탱아! 예봉산엔 왜 가니? 예빈산이라고 했잖아~ 빨리 내려와”
‘엥? 이건 뭔소리? 산이 예봉산도 있고 예빈산도 있었던거야? 헐~~’
휴대폰을 열어 네이버 지도를 폈다.
아...... 예봉산 한참 아래 예빈산이라고 떠억하니 산 이름이 적혀있다.
‘이런 된장... 택시기사는 왜 예봉산 입구에 내려준거야...’
투덜거릴 시간도 없이 또 걸음을 옮기려는데 어디서 전혀 상냥스럽지 않은 목소리의 아주머니 한 분이 불러 세웠다.
“저 사진 한 장만 부탁드릴게요~”
“네.”
‘저 이럴 시간 없답니다’ 속과는 달리 얼른 건네는 폰을 받고 촬영모드.
“자, 하나 두울~”
“잠깐만요, 저두요~”
일행인 듯한 분이 포즈를 취한 아주머니 옆으로 기대선다.
“자, 찍습니다. 예쁜 포즈~~”
“잠깐만요, 저두요~”
막걸리 들이키던 일행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단체사진이 되었다.
맘은 급했지만 여유롭게 두세 컷 찍어주었고 한사코 나도 찍어주겠다 하여 인증샷 담아 예빈산으로 향했다. 너무 급하게 올라와서인지 내려가는 내내 다리가 후들거리고 힘이 빠져 휘청휘청 위태로운 걸음이었지만 내달리다시피 내리막길을 재촉했다.
도착하면 얼마나 놀려댈지 주요 인물들이 눈에 선하다. 그건 나중 얘기고 지금은 한시라도 일행과 조우하는 게 급선무 아니던가. 다시금 기운을 내 본다.
휴대폰 지도를 열어 계속 방향을 확인하며 길을 재촉했다.
‘이건 내려가도 너무 내려가는데?’ 대개는 산 능선끼리는 연결되어있는 구조라 산봉우리와 산봉우리를 넘는 구간은 경사가 그리 깊지 않은데 이건 뭐 완전히 하산했다가 재 등정하는 코스였다. 하산하느라 다 풀린 다리는 또 다시 예빈산을 오르기에는 이미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발걸음을 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아, 늦었으면 오지나 말걸...... 이게 웬 고생이람......’
맘속으론 백번도 후회의 원망을 곱씹었지만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을 우렁각시들들을 떠올리며 한 걸음 한걸음 힘을 내어 본다.
‘후~ 드디어 정상인가!’ 정상에 올라 표지석을 보니 직녀봉...이라 써 있다.
‘뭐지? 그럼 견우봉도 있다는 건가’ 또 다시 밀려오는 불안감에 휴대폰 지도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견우봉’이 있다. 앞 쪽 산봉우리다.
‘우쒸!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만!’ 허탈한 마음으로 견우봉을 향하려는데 또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저, 아저씨 사진 한 장만요~”
바라보니 언제 올라왔는지 모녀 두 사람이 바위에 걸터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아, 네.” 거의 다 왔으니 사진 한 장 정도야~
“자~ 예쁘게~~” 찍으려는데 어머니가 딸에게 자꾸 자세교정을 요구하신다.
“다리 한 쪽을 올리고 찍어라~ 그래야 예쁘게 나온다.”
“아, 됐어~ 그냥 찍어.”
투닥거리는 모녀의 모습이 그저 예뻐보인다. 모녀가 산행하는 모습은 흔치 않은 모습이라 티격거려도 좋아 보였다.
“어머니 말대로 해보세요~ 예쁘게 나올 것 같은데요~”
라고 말은 건넸지만, 그리 썩 예쁘게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워낙 통통하고 작은 아가씨라 포즈로 큰 변화를 바라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색할 순 없지 않은가.
몇 컷 찍어드리고 견우봉으로 향했다.
드디어 우리의 일행과 상봉했다. 마구마구 놀릴거라 예상했는데 웬걸? 효정과 진덕이가 그냥 받아준다.
‘헛, 이럴 때도 있구나’ 생소함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순간, 내 몫으로 남겨 놓았다는 음식에 감사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젓가락질부터 향했다.
아, 막걸리! 아까 예봉산 정상에서 만났던 그 일행들이 마시던 막걸리가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한 잔 달라고도 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눈을 마주쳐주지 않아 말도 못 붙이고 군침만 삼켰던 막걸리! 한 병 달래서 몇 잔을 연거푸 따라 들이켰다.
‘캬~ 이 맛이지!~~’
세상 달콤한 막걸리다! 여태 마셨던 막걸리는 ‘쌀뜬물’이다. 정신없이 밥과 막걸리를 번갈아 마시며 그간의 고통을 일순간에 보상을 받았다. 한없이 고마운 일행들!! 싸랑한다!
어느덧 지각생의 식사가 마쳐지자 항상 펼쳐지는 ‘산상강연’이 진행되었다.
앞서 김영승 선생님의 한과 젊은 생이 몽땅 담긴 제목 미상의 ‘빨치산歌’를 청해 들었다. 고향땅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슬픔이 씩씩한 노랫가락 사이에서도 숨기지 못하고 배여 나왔다. 가슴 한켠이 아려옴을 느낀다.
김영승 선생님의 본 강연이 시작되었다. 아직 못다한 작업이 있어 마저 기어이 완수하시겠다는 다짐을 말씀하셨다. 바로 빨치산활동 속에 남녘에서 생을 마감한 전우들의 묘의 위치와 약력을 기록하는 일이라 하신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일이다. 관심이 있다 해도 연결고리가 없으면 위치 파악이나 약력을 알아내기엔 정말 희박한 일이다.
듣는 와중에도 이 일만큼은 선생님이 아니면 누구도 쉽지 않은 버거운 일임을 부지불식 간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느니 만큼 적잖은 시간과 비용, 정성이 요구되는 각고의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숙연해진다.
살아생전에 꼭 완성하시겠다는 굳은 다짐을 재차 결의하시고 자리하셨다. 작은 보탬이라도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산길에 들어섰다.
마지막 단체 기념사진을 남기고 조심스럽게 출발했다. 삼삼오오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즐거운 하산을 마치고 고대하던 뒤풀이에 들어갔다.
산행을 마치고 마시는 한 모금의 술은 정말 달다. 과음만 하지 않는다면 정말 맛있게 즐겁게 마실 수 있는 게 산행 뒤의 술자리다.
뒤풀이에는 유튜브 방송인 ‘왈가왈북’ 제작자 유영호 형님이 함께 자리하셨다. 근황도 묻고 계획도 듣고 하면서 꿀맛 같은 뒤풀이를 마쳤다.
한 가지 분노를 금치 못할 사실을 들은 바, 예봉산과 예빈산 입구는 같은 선상에 왼쪽과 오른쪽의 차이였다는 사실이다. 부들부들~~!! 오른쪽 예빈산 입구를 지나치고 왼쪽 예봉산으로 향했다는 것 아닌가! 이런 된장....
월요일 합창단 연습을 알리는 수다방에서는 낯설지 않은 호가 붙여져 있었다.
‘예봉 정철 선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