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풍류를 그저 한량들이 기생들을 옆에 끼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풍류는 조선시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풍류가 쾌락, 유흥 따위로 전락한 것은 일제강점기 전후라고 추정한다.
풍류는 선비문화와 한몸처럼 붙어있는데, 풍류를 깔아뭉개면 선비문화 전체를 싸구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정은 어렵지 않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 자가 반드시 있다.
이득을 보는 자가 범인이고 손해를 보는 자가 피해자이다.
살인사건에서 이익을 보는 자가 범인일 가능성은 90%가 넘는다고 한 경찰의 말도 있다.
조선시대 선비나 양반이 풍류의 가치를 나쁘게 만드는 행위는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아서 손해가 된다.
반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역사를 폄훼하기 위해 악랄하게 굴었던 일본이 가장 이익을 본다.
우리가 풍류를 ‘그저 한량들이 기생들을 끼고 향락을 즐기는 행위’로 이해하는 것은 결국 일본침략자들을 옹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듯 우리문화 곳곳에는 아직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의 잔재들이 살아 꿈틀거린다.
풍류의 진정한 의미는 이렇다.
‘양심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소박한 즐거움’
더 간단하게는 ‘지조와 절개에 대한 보상’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일반 백성과 같은 평민신분이다.
평민 중에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
수신(修身)과 학문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자가 선비이다.
선비는 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관료가 되어 정치를 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고향에서 지방 수령과 협조하여 민심을 반영하는 역할도 한다.
선비의 가장 큰 덕목은 수신(修身)을 통해 사회적 양심(인의예지)을 가지는 것이다.
자기 수양과 양심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타인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다.
사회적 양심을 지키는 것이 지조와 절개이다.
하지만 양심을 지키는 자는 언제나 고통을 당한다.
음해를 당하고 배신을 당하며 경제적 불이익과 경멸 따위를 감내해야 한다.
요즘도 나쁜 놈들이 선한 사람을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무차별 공격하는 행위가 흔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조선시대 내내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높은 가치를 주었다.
심지어는 정적이라도 존중했다.
양심을 지키는 대가가 평생의 고통이라면 아무도 양심적인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선비도 사회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보상이 필요하다.
그래야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양심을 지킨 보상은 사회적 평판을 통해 대부분 가족, 가문, 정파에게 돌아간다. 벼슬을 내리거나 비석을 세우는 식이다. 이런 보상은 죽어서 얻는 경우가 많았다.
살아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풍류이다.
개인적 풍류는 소박한 즐거움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이다.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 지인들과 시를 짓고 노래를 하는 시회, 악기를 연주하는 것, 꽃놀이,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일, 난초나 수선화를 키우기 따위는 사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정부에서는 관기를 동원하여 춤과 노래를 부르고 술과 안주를 내어 잔치를 열어주었다.
관청과 연계하여 활쏘기 대회를 개최하거나 대규모 뱃놀이를 하기도 했다.
과거에 급제하거나 사회적 공적을 만든 선비들에게는 문중이나 고향사람들이 잔치를 열어 위로했다.
이러한 선비들의 양심적인 삶을 고무시키는 일을 ‘사기(士氣)를 높인다’고 한다.
사기(士氣)를 높이는 일은 사회적 풍류인 셈이다.


사회적 보상이 필요하다.
그래야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양심을 지킨 보상은 사회적 평판을 통해 대부분 가족, 가문, 정파에게 돌아간다. 벼슬을 내리거나 비석을 세우는 식이다. 이런 보상은 죽어서 얻는 경우가 많았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