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곤 (서울 광양고등학교 교사)


우리 학교 1학년 6월의 재량시간 주제는 `6월, 월드컵 그리고 민족화해 평화 통일을 생각하는 달`이다. 시험도 없고 점수에도 들어가지 않는 재량시간에 월드컵에 폭 빠진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교사의 잔꾀(?)로 축구를 집어넣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월드컵은 화해와 평화라는 주제와 잘 맞아떨어진다.
 
1차시는 간략한 통일의식 설문조사에 이어서 [민족21] 작년 11월호에 실린 기사를 활용해서 남북의 축구 중계 방송에 나타나는 용어의 차이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한 북한 선수단 특별취재 영상(KBS 일요스페셜로 방영)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남북의 언어 차이도 그렇지만 36년 전 영국민들을 감동시킨 북한 축구단의 경기 모습을 더욱 흥미 있어 했다.

학생들의 소감문 몇 개를 소개하면, "북한이 축구를 잘했다는 것에 놀랐다.(...) 이외의 단어들이 재미있었다. 북한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우리가 못 가본 8강을 북한이 가 봤다는 것이 신기하고, 왜 영국 사람들이 북한을 응원했는지 궁금하다. 남북 대표팀이 힘을 합치면 4강도 가능하지 않을까..."
"북한의 주체성을 느꼈고 결코 다른 민족이 아님을 느꼈다."
"북한 언어가 너무 생소했고 재미있었다. 북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참 놀라웠다! 별로 언어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통일이 되면 더 재미있을 거 같다."
"북한이 월드컵 출전 당시 겪었던 어려움, 기쁨을 알 수 있었다. 패스가 굉장히 정확했다. 공을 실에 묶은 듯했다."
 
보다시피 긍정적인 소감들이 대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전에 한 설문조사는 상당히 다르다. 통일을 바란다는 64% 정도, 바라지 않는다가 약 33%, 식량사정이 어려운 북녘에 남아도는 쌀을 보내는 데 찬성은 약 64%, 반대가 28% 정도이고 북녘동포돕기 운동에 참여할 생각이 있는가에 찬성 약 42%, 반대 49%로 자신의 평소 생각을 드러낸 학생들이었다.

주관식으로 물은 북한 사회에 대한 인상은 절대다수가 부정적이었다. 북녘 사회에 궁금한 것은 주로 주민들의 생활상이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다. 저간의 여러 설문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조사를 하는 것은 몇 시간의 계획적인 교육이 학생들의 인식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실증으로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2차시는 월드컵에 참여한 나라들이 제국주의 시대 침략자와 식민지 관계이었거나 수천 만명이 죽고 죽이는 전쟁의 당사자들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유럽 통합 운동에 축구가 상호 이해와 화해의 정서적 바탕이 되었다고 진단한 글을 읽혔다.

`원초적인 축구놀이로 마침내 전쟁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공존의 길로 들어선` 그들을 읽으면서 학생들의 월드컵을 감상하는 눈이 좀 달라졌을까? 유럽인들은 전쟁을 상징하는 cannon-ball 대신에 foot-ball로 다투는 것을 선택했노라고 `뻥`을 치면서 Euro컵 축구대회와 같은 것을 동아시아에 창설하면 어떻겠느냐고 묻고 학생들이 창설위원회 위원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참가국을 선정해 보게 했다.

남-북한, 중국, 일본(빼자는 학생도 있다),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심지어 인도까지 넣기도 한다. 한 학생은 급하게 그린 대회의 상징(logo)으로 태풍의 형상을 제시하는 기발함을 보이기도 했다. 창설취지문을 작성해 보는 것은 국어과나 체육과 담당교사와 협의를 하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구조를 만들 짬은 없었다.
 
3차시는 `붉은 악마`가 주제이다. 이 수업을 통해 냉전, 매카시즘, 색깔론, 파시즘, 인종차별주의 등을 언급한다. 하나 하나가 한 시간 수업을 요구할 정도로 할 이야기가 많지만 문제의식만 환기시키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이들은 이런 주제와 관련하여 사고의 분열현상을 드러낸다.

우리 생활 속에 흔히 쓰는 `살색` 스타킹이나 `살색` 크레파스를 자연스럽다고 하면서 동성애자나 성전환자가 비정상이라는 의견에는 반대한다. 특별히 우수한 인종이 따로 없다고 답하면서 `우리 주변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 구리다`라고 생각하고 `검은 피부보다 흰 피부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러나 `영양실조 걸린 북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와 `사상이나 종교, 문화가 다르면 더불어 살 수 없다` `지하철에서 노숙자가 내 옆에 앉으면 자리를 피한다`는 항목에 대다수가 `아니오`라고 답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
 
이번 수업은 모두 7차시로 구성된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새로운 통일을 실현할 주역인 우리 학생들과 함께 나눌 이야기는 이렇게 너무 많다. 다만 관심을 갖고 실천할 교사들이 아직 소수인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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