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11월2일 미국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National Press Club에서 행한 연설 가운데 주요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이날 연설은 올브라이트 장관의 지난 주 평양 방문 및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해 미국 내에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을 감안,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 국무부 및 올브라이트 장관 자신의 입장 등을 밝히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대북 관계 개선과 관련, 새로운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그동안 진행되어온 대북 정책과 추진 배경 및 향후 추진 방향 등을 시사했다


북한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는 동안 우리가 우려하는 안보 현안을 비롯해 몇 가지 핵심적인 분야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었다. 김 위원장에 대한 인상은 그의 과거사를 들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 마련인 그런 내용과는 아주 판이했다.

그는 실제적이고 결단력이 있으며, 우리와의 논의를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해놓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회담은 실용적이고 생산적이었으며, 아주 좋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점은 분명히 해야겠다. 나는 평생 공산주의 시스템을 연구해온 사람이고, 그런 체제의 속성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 김 위원장도 물론 이 점을 알게 되었을 것으로 보는데, 그의 정치적 이념과 우리의 이념 사이에는 심연이 놓여 있다.

김 위원장과 나는 회담을 하면서 우리 양측간에 정치적인 차이점이 엄청나다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은 했으나, 그 차이점 때문에 진전이 안 된 것은 없다.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핵심적인 안보 현안에서 얻을 것을 얻는 것이다. 전쟁을 방지하는 것보다 더 긴급한 인권 문제는 없다. 이 분야에서의 협력이 나중에 더 큰 논의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의 대북 접근은 서울과의 긴밀한 상의 하에 진행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권위독재주의 구조인 북한의 경우 김정일 위원장 및 측근들과 직접 얘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기 미국에는 한국을 위해 옳은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과 한국 국민들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미국 지도자들이 북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이런 견해는 분명히 그들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대화가 없다면 우리는 현상태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서로 대립해서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는 북한과 같이 일을 하려고 할 때가 덜 위험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페리 박사 팀은 의회의 공화 민주 양당 의원들에게 쌍방 교류 방식에 특히 역점을 두었다. 전에도 말한 바 있듯이, 우리의 목표는 동북아 지역에 효과적인 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미 국내에서 초당적인 협조를 얻어내는 일이다. 그래야 다음 주 화요일의 선거 결과에 상관 없이 그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북한은 다른 나라가 북한의 위성을 궤도에 쏘아올려 준다면 영구적으로 미사일 개발을 금지하는 데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을 내비쳤다. 여러 차례에 걸쳐 평양에서 온 대표단들과 이 가능성에 대해 토의를 했으나, 내가 방북하기 전까지는 정말 북한이 그런 해결법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담에서도 물론 이 문제가 주된 의제였으며, 장거리 미사일 개발 의 북한 내 문제와 수출 문제 등 두 가지 모두에서 출발이 좋았다고 본다. 미사일 전문가 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견할 수는 없다. 미사일 문제가 경제 협력과 외교 관계 등 다른 문제에 어떤 연관이 될는지도 역시 예측할 수 없다.

핵심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서두르는 것이 아니다.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을 봐야지 진행 속도, 즉 시간을 봐서는 안 된다. 50년 간의 냉전을 넘어설 역사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우리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및 다른 나라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줄일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이다.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회동 가능성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나는 대통령에게 방북 보고를 했고, 대통령은 방북이 우리의 안보 및 화해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곧 결정할 것이다.

지난 해 북한은 우리의 관심사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는 뜻을 진지하게 그리고 직설적으로 표명해왔다. 어떤 사람들은 전에는 안 그러다가 왜 이제 와서 그러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미북 관계가 좋아지면 역설적으로 남북 대화에 지장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 평양이 워싱턴과 서울 사이에 쐐기를 박으려 했던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미국과 한국 사이에 쐐기는 절대 박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평가를 할 때는 반드시 동북아에서 발생한 일만 감안할 것이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더불어 평가를 해야 한다.

기본 핵 합의가 없었더라면, 북한은 1994년 당시 가동중이었던 소형 원자로에서 뿐만 아니라 당시 거의 완성 단계였던 대형 원자로들에서 수 개의 핵 무기에 필요한 핵 물질을 뽑아냈을 것이다. 우리의 대화가 없었더라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거의 다 마쳤을 것이다. 포용정책이 없었더라면, 지역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을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는 38도선이 하나의 평범한 위도가 되는 날을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긴장이 완화되면서 남북 사이의 접촉이 증가하고 평양을 오가는 일이 더 이상 세계의 주목을 받지 않은 날을 그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날은 내가 국무장관을 그만둔 지 한참 후의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번 추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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