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 기자(hjpark@tongilnews.com)


북한 평양방송이 3일 정오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장충식 대한적십자회 총재의 월간조선 10월호와의 인터뷰 내용에 강력 문제를 제기하며 장 총재가 대표로 있는 한 남북 적십자회담을 재검토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성명은 우선 장 총재의 발언이 `처음부터 마감까지 동포이고 형제이며 대화 일방인 우리를 심히 자극하는 것으로 일관` 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문제 삼았다.

첫째, 인터뷰에서 평양은 지난 10년 간 발전이 아니라 정체되어 있었다고 말한 내용, 둘째, 지난 이산가족 상봉시 남에서 올라간 사람들은 매일과 같이 옷을 갈아 입었지만 북쪽 사람들은 같은 양복만 계속 입고 있었다고 말한 내용, 셋째, 교류가 진행되면 밑지는 것은 북이지 남이 아니라느니 하는 따위의 험담들을 늘어 놓은 내용, 넷째, 이산가족상봉은 남북 양쪽의 이질성과 체제의 우열을 비교할 수 있는 거울이라고 말한 내용, 다섯째, 북은 자유가 없다느니 통제 사회 속에서 숨막히게 살고 있다느니 하는 등의 정치체제까지 정면으로 걸고들면서 말한 내용 등이다.

이에 장총식 총재 문제의 인터뷰 내용을 부분 발췌해 보면 다음과 같다.

―10년 전의 평양과, 현재의 평양을 비교하신다면….

『평양은 10년 동안 달라진 것이 없더군요. 한마디로 발전이 아니라 정체된 기간이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숙소인 고려호텔 앞에 가게나 음식점이 있어 저녁때도 불이 켜져 있곤 했는데 지금은 전에 비해 활기가 없더군요. 거리를 다니면서 보니까 시가지도 너무 어둡고 여러 가지 시설물이나 건물이 낡아가는데, 저걸 어떻게 보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산가족 방문단장으로서 50년만의 재회 장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좀 안된 얘깁니다만 부모 자식간이 형제로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남과 북의 형제가 상봉한 경우도 있었는데 남쪽에서 자란 형제는 체격이 건장한 반면, 북에서 성장한 형제는 왜소해 보였습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굳이 설명을 않더라도 남북한의 식량사정이라든가 경제력의 차이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끈 을 계속 이어가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 양쪽의 이질성과 체제에 대한 우열을 비교할 수 있는 거울입니다. 때문에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볼 때 이산가족 상봉은 그들의 실생활이 외부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사업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체제유지가 급선무인 북한 입장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보다는 점진적 단계를 밟는 쪽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텔레비전을 유심히 본 분들은 아셨겠지만 북한 이산가족 상봉단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사람들에게 옷감을 줘서 급히 해 입힌 겁니다. 남한에서 올라간 가족들은 양복에 티셔츠 , 개량한복 등 매일 같이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만, 북측 가족들은 3박4일간 같은 양복만 계속 입고 있더군요. 옷으로도 가릴 수 없는 것이 얼굴입니다. 북한의 가족과 남한에서 올라온 부모형제들이 만났을 때, 고생을 많이 한 북한의 얼굴과 남한의 여유로 운 얼굴이 대조되니 북한 관계자들이 얼마나 곤혹스러웠겠습니까. 남측 방문단은 어떤 기업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선물로 준 것을 가지고 가서, 상봉장면을 즉석에서 촬영해 북의 가족에게 주었습니다. 즉석 사진이 나오는 장면을 본 북쪽 가족들의 시선, 그리고 남측 가족들의 시계와 반지, 옷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북측 사람들에게는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노인들조차 카메라를 다 한 대씩 들고 왔으니…. 그 풍요로운 모습은 북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정치교육 시켰던 사람들에게 불신감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 카드를 받아들인 것은 어떤 형태로든 북한이 변화하는 쪽으로 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저는 순안비행장에 우리 비행기 착륙을 허가할 때부터 北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양으로 출발하는 과정에서 북한 고려 민항 비행기에 짐 싣는 장치가 없어 출발이 한 시간이 나 지연됐어요. 공항에 환영 나온 평양 시민, 그 비행기를 타고 남북을 오간 이산가족들은 그들의 초라한 고려 민항 비행기와 태극마크, 색동마크가 새겨진 우리 비행기의 웅장함을 비교할 수 있었을 겁니다. 어떤 형태로든 남북교류가 진행되면 밑지는 것은 북한이지 남한이 아닙니다. 우리는 북한을 사랑으로 봐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유스럽게 성장한 복된 삶을 가지고 우리보다 자유가 없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통제 사회 속에서 숨막히게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넓은 아량 없이는 통일을 감당할 민족이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우리에게 겉옷 하나를 벗어서 보여준 상태입니다. 앞으로 잦은 교류를 하면 그쪽의 진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입니다. 북한은 이미 금강산, 예술단, 교예단, 오케스트라 등을 다 공개해서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어요. 반면에 우리는 얼마 전까지 북한에 제공하는 식량에 적십자 마크를 붙이지 않았습니다만, 그런 것 없어도 북한 주민들은 남한이 보내는 식량이라는 것을 다 알 정도라고 해요』

―장 총재의 발언을 종합해서 본다면 북한도 통제 속에서나마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북한이 의존할 곳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자기들 조건을 들어줘야 원조를 해 준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미국은 핵과 미사일에 대한 투명성 없이는 도와주지 않습니다. 북한은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남한이 자신들을 안아주길 바라는데, 남쪽 정치권과 언론이 북한을 때리고 나오니 수비하기 바쁜 상황이 됐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언론사 사장단 訪北을 주선한 것도 여러 가지 내면적이 뜻이 있었다고 봅니다. 제 판단으로 볼 때 북한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중국식 개혁 개방의 가능성을 인식한 것으로 보입니다』

―63명의 미전향 장기수가 북한에 가서 영웅이 됐는데, 이들이 북한 사회에 어떤 변화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까요.

『제가 저녁에 평양의 옥류관에 가서 냉면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서울 같으면 불야성을 이룰 그 시간에 불이 꺼져 암흑에 싸인 시가지를 보면서 불현듯 「미전향 장기수들도 얼마 후엔 이 자리에 앉아 냉면을 먹을 텐데, 저 암흑의 평양 거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상념에 젖어보았습니다. 가게에 나가 뭘 사먹을 데도 없고, 통행도 자유스럽지 못하고, 편지 전화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사회에 갇혔을 때 그 심경의 변화가 과연 어떨까요. 아마 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지경이 되면 북측은 우리가 미전향 장기수를 더 데려가라고 요구해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릅니다』

- 그렇지만 이인모 노인은 북에 가서 영웅대접을 받지 않았습니까

『이해득실을 좀 더 세부적인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 문제가 좀 달라집니다. 이인모 노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이번에 보낸 미전향 장기수도 그토록 오랜 세월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고향에 보낸 사실 자체를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미전향 장기수를 北으로 보냈다 해서 북한 주민들이「우리 체제가 남한보다 우월하니까 계속 이런 식으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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