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혁기자(bhsuh@tongilnews.com)



<연방제 통일론 시리즈> 차례
1. 연방제와 국가연합
2. 북한의 연방제 통일정책의 변천
1) 과도적 연방제에서 최종통일방안으로(1960-80)
2) 198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국가연합적 연방제안
3. 김대중정부의 통일방안
4. 남북한 통일방안의 비교 검토
5. 통일방안 합의(대내적, 남북관계 차원)와 전제조건(통일환경 조성)


2. 북한의 연방제 통일정책의 변천

2) 198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국가연합적 연방제안

(1) 체제공존을 위한 연방제 통일론


1980년대 후반에 들어 남한은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 경제적 성과와 외교적 성공에 기반한 서울올림픽의 개최와 북방정책의 추진 등 대내외적 발전을 보인 반면, 북한은 계속적인 경제침체와 국제적 고립에 직면하였다. 이에 따라 북한은 통일전략의 기조를 先남조선혁명 後합작통일로부터 先남북공존 後연방통일로 전환해 갔다. 이것은 체제 열세에 놓인 북한이 흡수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한 것이다. 북한은 이에 따라 통일방안도 체제생존을 위한 사실상의 국가연합 수준으로 수정하였으며 남북대화에 적극 임하게 되었다.

북한이 남북한의 공존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대남정책의 변화를 시사한 것은 1988년 김일성의 신년사였다. 김일성은 남북이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하나의 연방국가를 창설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발언은 고려연방제안의 기조 속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1980년대와 달리 수세적인 입장이 담겨 있었다. 김일성의 이같은 발언은 이듬해 "남북한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제도"에 의한 제도통일은 후대에 맡기자고 한 신년사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북한은 탈냉전으로 세계 유일패권국이 된 미국과의 핵사찰 공방으로 안보위협을 받게 되면서 민족대단결을 "공존 공영 복리" 차원에서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1993년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 회의에서 김일성이 직접 작성했다는 `조국통일 전민족 10대 강령`이 그것이다. 이것은 이후 북한에서 7.4 남북공동성명,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과 함께 `조국통일 3대 헌장`의 하나로 강조되고 있다.

당시 북한은 통일정책을 체제안보의 하위개념으로 위치짓고 연방제 통일을 국가연합 수준에서 주장하였다. 1991년 윤기복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은 "남북한의 2개 정부가 일정 한도내에서 잠정적으로 외교 및 군사권을 보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1992년 5월 하와이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이삼로 북한 대표도 "남북지역정부가 외교권, 군 통수권 등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두 개 제도와 두 개 정부"를 주장하였다. 이같은 발언은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에서 연방정부가 외교권 및 국방권을 보유한다는 제안에 비추어 볼 때 훨씬 약화된 주장이다.

(2) 김정일의 통일노선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당시 총사령관이던 김정일은 통일정책을 김일성의 `통일유훈` 계승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그의 발표 논문을 통해 볼 때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이 크지 않았으나, 김주석의 사망이후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소위 `8.4 노작`이라 불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1997.8.4)>는 글을 통해 `조국통일 3대 헌장`의 관철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온민족이 단결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룩하자(1998.4.18)>는 글을 통해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을 제시하였다. 여기서도 김정일은 즉각적인 연방제 통일 보다는 민족대단결을 재차 강조하면서 남북대화 용의와 통일문제 해결에 있어 주변국들(특히 미국)의 건설적 역할을 촉구하였다.

통일문제에 대한 김정일의 이같은 주장은 `통일유훈` 계승 차원에서 김일성의 통일정책을 기조로 유지하면서도, 남한당국을 민간과 분리하여 대화상대로 적극 인정하고 한반도문제의 국제적 성격을 수용하는 등 현실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6월 평양정상회담을 통해 남한의 국가연합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하면서 그 속에서 통일방안 모색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김정일의 이같은 인식은 남북간의 적대적 관계 청산을 당국자간 관계 개선으로 이루고, 당분간 체제공존을 하면서 상호 이익 및 민족 동질성 회복에 주력하자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3) 체제 열세=합리적 인식 제고?

이상을 통해서 볼 때 1980년대 말부터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다음과 같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연방통일과 제도통일을 분리하여 첫째, 제도통일을 민족분열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이를 배척하거나 후대의 일로 유보하고 있으며, 둘째, 기존의 완성형 연방제를 미완성형 연방제를 거치는 단계적 접근으로 후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연방정부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지방정부의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회하여 사실상 국가연합형 연방제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추진해온 평화적, 비평화적 방법의 통일정책 중 평화적 방법을 상대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되며, 열악해진 북한의 국가능력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판단으로 평가된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때로는 이같은 입장을 완성형 연방제와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은 △완성형 연방제를 완전히 대체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실현을 위한 단계의 재조정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며 △김일성의 `통일유훈` 계승이라는 주장에서 보듯이 김일성의 권위의 재활용 측면과 함께 △주민들의 혼란 방지를 통한 내부 결속용이라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여하튼 북한이 체제역량이 절대 열세에 놓이면서 연방제 통일방안도 그 수준이 하향조정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최고결정자가 통일정책은 물론 대내외 정세 인식에 합리적인 접근태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 다음 번에는 `김대중정부의 통일방안’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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