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서명한 공동선언은 민족자주에 의한 통일문제 해결을 명시하고 있어 향후 주변 4강과의 함수관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공동선언은 표면적으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원칙`을 강조해온 주변 4강의 입장과 부합될 뿐만 아니라 김 대통령도 이날 통일 원칙과 북한의 대(對)미.일관계 개선은 긴밀히 연계돼 있음을 분명히 했다.

김 대통령은 공동선언 서명에 앞서 이날 저녁 만찬사를 통해 "이 시대의 통일은 절대적 명제"라고 전제하고 "북측도 통일을 위한 화해와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하며 이를 위해 미국, 일본과 관계개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한. 미. 일의 대북 공조가 자주(自主)와 관계돼 있다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지적에 "3국 공조는 대북정책이 북한에도 유리하고 우리에게도 좋은 윈-윈(win-win)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며, 결코 북한을 해롭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인식은 지난 92년 남북 기본합의서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도 판단된다. 당시 합의서 제6조는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즉 민족내부의 역량으로 평화통일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 수단으로 주변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 대통령이 단순히 `민족 우선주의`를 택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그 동안 미. 일과의 공조, 4강 외교에서 보여준 노선은 철저하고 치밀한 실리주의이며 당분간 그 중심기조가 변할 가능성은 없다.

만일 민족내부의 축만 강조할 경우 동북아 국제질서의 방향타 역할을 해온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한반도 문제해결의 또다른 기제인 국제적 축이 붕괴됨으로써 한반도의 분열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와 동북아에 평화와 안전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으나 한반도에 대한 자신의 발언권과 영향력이 줄어들 것에 대해 내심 우려하는 4강의 이해도 적절히 수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즉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남북한`이라는 주변국들의 확고한 인식을 담보로 김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민족자주에 의한 문제 해결을 도모하고 북한의 미.일 접근을 측면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확산을 최대의 위협요인으로 간주해 왔던 미. 일의 우려를 씻어내면서 한반도 문제의 민족내부화를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김정일 위원장의 5월 방중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의 7월 방북, 예상되는 북한과 미. 일과의 수교교섭 등으로 벌써 동북아 정세는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주변 4강의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종래의 냉전외교와는 판이한 성격을 띨 것으로 보이며, 사안에 따른 전략적 협력과 견제가 교차하면서 한반도의 냉전구조는 새로운 질서로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연합 (200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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