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기록될 이번 회담에서 양 정상이 나눈 대화 가운데는 북측이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 사정, 정상회담 개최사실에 북측 언론이 침묵으로 일관한 나름의 사정 등에 대해 김 위원장이 직접 설명하는 대목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또 김 위원장의 발언 가운데는 북한 특유의 `제3방송` 같은 남한 주민들에게 언뜻 이해되지 않는 용어가 포함돼 있어 북한전문가 등의 설명을 토대로 이들 궁금한 점을 사안별로 짚어본다.
△`전금진`은 누구 = 김 대통령이 응접실 벽에 걸린 대형그림을 보면서 무슨 그림들이냐고 물었을 때 김 위원장은 "원래는 춘하추동 그림입니다"라고 말했고 `전금진` 조선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참사가 "묘향산의 춘하추동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돌연 등장한 `전금진`이라는 인물은 실상 남한 사람들에게도 낮익은 북한의 대남부문 간부 `전금철`이다.
그의 본명은 전금진(全今鎭)이지만 전금철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지난 58년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70년대 초부터 약 30년간 대남사업에만 매달려 온 대남협상 전문가이다.
전금철 책임참사는 일련의 남북회담에서 북측 대표로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었는데 88년 남북 국회회담 준비접촉 대표단장, 92년 남북 고위급회담 화해공동위원장, 95년 남북 쌀회담 북측대표, 98년 남북 차관급 비료회담 북측대표를 맡았다.
그는 현재 내각 책임참사뿐만 아니라 81년과 94년께 각각 임명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조선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의 직함도 사안에 따라 적절히 사용한다.
△정상회담 하루 연기에 대한 김 위원장의 설명 = 김 국방위원장은 "날씨가 대단히 좋고 인민들한테는 그저께(11일) 밤에 김 대통령의 코스를 대줬습니다. 대통령이 오시면 어떤 코스를 거쳐 백화원까지 올지 알려줬습니다"고 말한 뒤 "준비관계를 금방 알려줬기 때문에 외신들은 미처 우리가 준비를 못해서 (김 대통령을 하루동안) 못 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하루 연기에 대한 김 위원장 자신의 `해명`으로 볼 수 있는 이 대목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지난 10일 밤늦게 긴급 전언통신문을 보내 회담 연기 사유로 밝힌 `기술적 준비관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초 계획과는 달리 김 대통령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기로 하고 그에 따른 준비를 하느라 일정이 하루 순연됐다고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들에게 연도변 어느 지점에 나가서 환영을 하라는 지시를 하고 더욱이 김 위원장 자신이 직접 공항에 영접을 나가는 `1호행사`를 진행하는 데 따른 준비가 갑작스럽게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케 한다.
따라서 이는 북한이 사진 전송 등의 말 그대로 `기술(技術)상`의 이유로 정상회담 일정을 하루 연기했다는 일부 주장을 부인하는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정상회담 개최에 북 언론이 침묵한 사정 = 북한 언론은 지난 4월 10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남북 합의서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과는 달리 김 대통령의 방북 전날에도 아무런 보도도 하지 않았다. 또 김 대통령의 방북이 하루 연기된 데 대해서도 침묵을 지켰다.
이에 대해 김 국방위원장은 "신문과 라디오에는 경호 때문에 선전하지 못했습니다"면서 "왜 이북에서는 TV와 방송이 많이 안나오고 잠잠하느냐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얼마나 경호에 신경을 썼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 위원장의 순안공항 영접 사실도 김 대통령을 태운 특별기가 도착하기 직전 공항 구내방송으로 알리는 등 김 위원장이 참석하는 `1호행사`에 철저히 보안을 지켰다.
이로 볼 때 경호 문제 때문에 언론을 통해 `선전`하지 못했다는 김 위원장의 설명은 북측 입장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그만큼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북한 당국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생방송`은 무엇인가=김 국방위원장은 김 대통령과 회담에서 "그저께(11일) 생방송을 통해 연못동에서 영빈관까지 (김 대통령의) 행로를 알려줬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에는 `생방송`이라는 용어가 없고 문맥상으로 볼 때도 `생방송`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북한 특유의 `제3방송`의 잘못된 표기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제3방송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순전히 내부용 방송으로서 유선방송이다. 이 때문에 `제3방송`은 외부인들의 청취가 불가능하고 그 실체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중앙방송위원회에서 10여년 간 기자, 작가로 일했던 통일정책연구소 장해성 연구위원에 따르면 제3방송은 다른 방송과 달리 유선으로 연결돼 있으며 북한 주민들만 청취할 수 있다.
지난 79년께 설립된 이 방송을 통해 북한 당국은 주민들 사이에 나타나는 비사회주의적이며 무규율적인 현상을 폭로 비판하고 남한 관련 문제나 국제정치 정세 중에서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우면서도 주민들에게는 특별히 주입시켜야 할 사안들을 내보낸다.
김 총비서가 `11일 제3방송을 통해 주민들에게 연못동에서 영빈관까지 행로를 알려줬다`고 말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94년 정상회담 준비 당시 북측에 요구한 것은 = 김 위원장은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이 요구를 했다"고 밝히며 "유엔에까지 자료를 부탁해 가져왔는데 그때 김영삼 대통령과 다정다심한게 있었다면 직통전화 한 통화면 자료를 다 줬을텐데. 이번에는 좋은 전례를 남겼다"고 말했다.
이는 94년 당시 남측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측에 많은 자료를 요구했으며 북측의 유엔 대표부에까지 연락을 했을 것으로 추정케 한다. 또 이번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양측이 판문점 직통전화를 통해 서로 필요한 자료를 주고받은 `전례`를 만들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관계당국은 북측에 요구했던 자료가 무엇인지 확인해 주지 않아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연합 (2000/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