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군사전문가)


소위 `W이론`의 부활

이회창 총재의 대북관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며칠 전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는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는 식의 대북 접근법을 밝힌 바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여 접근하겠다고 말한지 며칠만의 일이다. 최근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 논법을 보면 미국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한나라당의 대선 전략기조가 미국 보수 주류층의 전쟁관, 대북관을 완전히 추종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이회창 총재는 미일 강경보수층과의 반북 국제 정치동맹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 대선 승리를 가져오는 `보수의 축`으로 내심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80년대 전두환-레이건-나카소네를 잇는 `전쟁불사형 정치동맹`과 유사한 시나리오다. 이 국제적 보수대동맹은 차기에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물적 토대다.
 
둘째, 한나라당 내 보수 헤게모니의 확립이다. 이회창 총재가 영남표의 지지를 끌어오는 조건으로 영남 보수층의 반북주의와 색깔론을 수용하고 영남 보수파의 당권장악을 인정하는 야합구조다. 최근 한나라당 내 국제협력위, 남북관계특별위, 정책위 등 주요 남북관련 정책기구들이 확연히 강경보수주의로 기울고 있는 실태가 바로 `보수 헤게모니`의 강화 징후다.

허황된 이론체계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과거 김영삼 정권 때 명백히 실패한 것으로 검증된 소위 `W이론`을 부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문민정부 초기에 관변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이 이론은 북한에 대한 이중전략이다. 북한의 정권, 즉 노동당, 인민군과 행정조직에 대해서는 주적의식으로 대하며 북한의 주민에 대해서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한다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군비경쟁`,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흡수통합`을 병행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적어도 1994년 불바다 위기 때까지 이 지침은 김영삼 정권의 중심기조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1994년 국방부 [국방백서]에서는 처음으로 `주적`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국방부 [장병 정신교육 교재]에는 `주적 개념`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주적이란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인민군과 노동당, 그리고 그 주변세력으로 정의되어 있다. `W이론` 체계에 딱 들어맞는 개념정의다.

같은 시기 한미연합사 작전계획 5027은 매우 인상적인 변화를 겪는다. 기존의 3단계 한반도 전쟁시나리오가 5단계로 바뀌면서 마지막 5단계의 내용이 평양정권의 궤멸과 북한 주민에 대한 군정이다. 작전계획에서는 이를 `전쟁 이후단계`라고 명명하고 있다. 바로 `W이론`에 의한 군사전략체계의 전환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시기 김영삼 정권은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차남 김현철을 통한 대북 밀가루 지원을 시도한다. 주민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과 이론의 결과다.

왜 실패했는가

그런데 이 전략은 왜 실패했는가. 군비경쟁과 흡수통합의 정책을 병행한다는 이중전략이 한반도 현실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첫째, 국방비용과 통일비용을 다같이 증대시키는데 반해 북한과 협상에서 아무런 성과도 내오지 못하는 `고비용-저효율`의 대북정책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시기 상황은 북한에서 최악의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북한 정권 붕괴의 가능성이 점쳐지던 시기다. 김영삼의 대북압박은 북한의 `조기붕괴론`을 은연중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기대는 섣부른 것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이론체계가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고조시킴으로써 한국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1994년, 1996년 당시 한반도의 전쟁분위기는 어떤 이론과 논리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심각한 것이었다. 
 
1994년 여름,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폭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준비를 클린턴 정부는 한국에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레이니 주한미국 대사는 주한 미국인들과 미군 가족들에게 본국으로 철수하라는 요지의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김영삼 대통령이 낌새를 눈치채고 클린턴에게 전화를 했다. 요지인즉슨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1백만명 이상 사망한다, 한국에서 절대 전쟁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전화 한 통으로 일단 북폭 시나리오는 유보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김영삼식 대북정책의 총체적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더 이상 관변학자들에 의해 "W이론`이 연장되지 않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김영삼의 대북정책은 아무런 철학도 이론도 없는 무정책이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이다. "어떤 동맹도 동족보다 강할 수 없다"는 집권초의 전향적 대북정책도 파산되었고, 군비경쟁으로 북한정권이 곧 궤멸할 것이라던 당초 기대도 무산되었다. 결국 김영삼은 대북 정책에서 아무 것도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회창의 한나라당이 다시금 흘러간 노래를 부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회창 총재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전쟁지향형 논리체계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전쟁논리는 광신적 애국주의와 전쟁의 광기가 솟구쳐 오르는 미국내 분위기에서는 나올 수 있는 것일는지 모르나 모처럼 다져놓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토대 위에서는 절대 부활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다.

이 상자를 다시 여는 이회창식 대북관의 말로는 명약관화하다. 아무래도 이회창 총재가 미국의 `주술`에 걸려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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