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군사전문가)


또 밀실외교인가

차세대 전투기 선정을 둘러싸고 국민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 높은 관심과 참여의지는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나로서는 최근의 전투기 논란에 남다른 감회가 있다. 문민정부 출범 직후 노태우 정권에 추진된 소위 한국형 전투기사업(KFP)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직 공군 참모총장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KFP의 기종변경 의혹논란은 감사원의 국방부 율곡비리 특별감사로 이어졌고 그 결과 오늘날 제1야당의 총재, 이회창씨가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되는 기회를 제공했다. 아마도 율곡비리가 없었다면 당시 감사원장으로서 이회창 총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뿐인가. 뒤이어 국회의 율곡비리 국정조사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스타 국회의원`들이 탄생했다. 김영삼 정권이 스스로 `성전`이라 칭할 만큼 노태우와 하나회에 대한 전쟁선포는 전면적이었으며 무제한적이었다. 5·6공 정권의 핵심 기반이었으며 장기집권의 토대인 하나회 군부가 추풍에 지는 낙엽처럼 숙정되는 것을 보고 국민은 환호했다. 이 전투기사업 특별감사에 시작된 실세군부와의 전쟁은 한국정치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점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은 만일 이번에 공군전투기 사업이 또다시 비리와 의혹으로 얼룩진다면 `DJ 군부`와의 일전불사를 벌릴 태세다. 그러나 이 준엄한 경고에도 아랑 곳 없이 투명성이라고는 전혀 보여지지 않는 기종결정의 흐름이 조성되고 있다. 이 의혹을 보다 명료하게 제기하여 다가오는 19일의 부시 미국 대통령 방문 이전에 확실한 국방정책의 중심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세 가지 의혹

의혹은 세 가지다. 첫째, 국방부가 차세대전투기 도입사업에서 미국제 기종선정을 위한 준비된 각본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종 기종선정이 미국제냐, 유럽제냐 하는 점보다는 사업 진행과정 자체가 미국화 되어 있다는 점이 더욱 심각하다.

우선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에 대한 소요제기 과정 자체가 그렇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이미 F-15 판매를 미국에 요청했다가 두 번이나 거절당하고 `꿩 대신 닭`이라는 식으로 F-16을 120대 도입했다. 그러다가 이제 F-15전투기가 낡아서 처분할 때가 되니까 미국은 돌연 이 비행기를 한국에 팔기 위해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때맞춰 한국군의 방위개념도 주변 5백km를 `절대방위권`이라는 개념 하에 F-15급 차세대전투기를 소요제기하였으며 중기국방계획에 반영했다. 이 개념은 명백히 주변국 위협까지 고려한 것이다. 신방위 개념이 가능했던 것은 한미 국방 최고위층에서 교감과 합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의사결정이 미국화 되어 있다는 근거는 수없이 많다. 최초 국방부가 전투기 사업을 관리하면서 사업지침에 절충교역을 30%로 명기한 것도 그중 하나다. 이 절충교역 30%는 과거 F-16 도입시 미국업체에 적용한 기준이다.

최초 1988년 국방부 훈령에는 절충교역 하한선이 50%로 명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88올림픽을 앞두고 대미 무역흑자가 너무 많아서 흑자 관리가 안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던 당시 상공부는 국방부에 공문을 보내 대미 무기거래시 절충교역을 하향 조정할 것을 요청했다. 이를 국방부가 받아들여 미국 측에 유리하도록 절충교역 하한선을 30%로 하향 조정하는 훈령을 새로 만든다.

이 조치 덕분에 미국의 재너럴 다이내믹스사와 맥도널 더글러스사는 `상호 담합`하여 절충교역 30%의 조건으로 한국에 전투기를 넘겨준다. 같은 시기 미국은 그리이스, 캐나다 등과는 최소 70%, 많게는 120% 절충교역의 조건으로 전투기를 판매했다.
 
그 뿐인가. 공군의 차세대전투기에 대한 요구성능(ROC) 자체가 이미 F-15급 전투기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구식 비행기에는 없는 첨단 하이테크 기술이 적용된 유럽제 전투기가 높은 가산점을 받는 장치가 없다. 성능 면에서 볼 때 3.5세대 전투기와 4세대 전투기가 구별되도록 변별력을 갖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이 ROC는 80년대에 작성된 것이다. 이런 낡은 기준으로 전투기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미국제 전투기 도입에 유리한 환경이 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있다. 국방부의 사업관리가 대단히 낡은 방식이면서도 그 의사결정 과정 자체가 정부 내 오프 라인, 즉 공군-국방부 획득실-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로 이어지는 특정라인이 독점하고 있다. 이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1999년 국가 항공산업 육성 기본계획은 국방부가 아닌 산자부가 발표했다.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 항공산업육성 진흥회도 있다. 전투기 사업은 국가 항공산업 육성의 지렛대로서 국방부만이 아닌 경제관련 부서와 과학기술부가 관여해야 한다.

정부는 개혁차원에서 앞으로 전투기 사업을 범정부적으로 하겠다고 이미 발표한 상태다. 그러나 지금 사업관리 방식을 보면 개혁되기는커녕 과거 80년대로 다시 회귀한 느낌이다. 정부 방침까지 위반하면서까지 국익을 외면하는 사업관리 방식이 고수되는 속내는 무엇인가. 사업추진 당시부터 `준비된 각본`이 있었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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