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배경 가운데 중요한 것은 6.25 전쟁 이후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됐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전환시킨 공로 때문일 것이다.

김 대통령은 50여년간 이어져온 뿌리깊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지난 98년 취임 이후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명명된 대북 포용정책을 실시, 남북관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한반도 문제를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김 대통령의 철학은 한반도 문제의 근본원인에 대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차별성을 갖는 것이었다.

북한이 90년대초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 심화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통한 대결정책을 통해 체제보장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확고한 안보를 바탕으로 일관되게 햇볕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98년 북한의 금창리 핵개발 의혹 시설과 대포동 미사일 시험 발사 등으로 한반도에 위기가 조성됐음에도 햇볕정책에 기초해 미국.일본과 3국 공조체제를 형성, 대북 포괄적 접근방안 마련을 이끌어 나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통한 대북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 천년이 시작된 6월 13-15일 평양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즉 `북한의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남북 화해.협력 추진` 등 대북 3원칙 아래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행동과 실천으로 이끌었고,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남측의 진의를 이해, 남북관계의 분수령이 된 정상회담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두 정상은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한 통일지향, 8.15에 즈음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비전향 장기수 송환, 경제 등 제반 분야의 교류와 협력 등에 합의하고 이를 6.15 공동선언이라는 형태로 세계 앞에 당당하게 발표했다.

김 대통령은 이후 이산가족 추가 상봉과 남북 장관급 회담, 분단사상 최초의 외무장관.국방장관 회담 등을 통해 신뢰회복에 나서면서 경제 교류와 협력체계도 가속화시켜 남북의 화해무드를 전반적인 흐름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남북 간의 훈풍은 나아가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인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방미에 이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북 등 북.미관계의 획기적 진전,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의 재개 등을 추동하는 계기도 만들었다.

김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에도 정상회담으로 마련된 민족의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남북 화해와 협력을 진일보시키고 남북공동의 국가경쟁력을 강화시켜 세계의 중심으로 뻗어나간다는 `한반도 시대`의 비전을 실현시킬 것으로 보인다.

또 국제무대에서 북한과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북한의 개방을 지원함으로써 통일을 위한 외교적 기반 조성을 마무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연합2000/10/13)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