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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간 적대관계 청산과 한반도 평화체제
서보혁기자  |  bhsuh@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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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10.14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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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혁기자(bhsuh@tongilnews.com)


북한의 조명록 특사의 방미 결과는 북-미간 관계 개선은 물론 한반도의 오랜 냉전구조 청산의 길을 열어 놓았다. 미 국무장관 올브라이트는 조명록 특사를 환영하는 만찬사에서 양국간에 적대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 역시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꾸준히 추구해 왔다.

지난 6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적대적 상호의존관계가 협력적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진 북-미간 고위급회담은 이제 한반도의 냉전구조의 종식 가능성을 현실의 장으로 이끌어냈다는 의의를 가진다. 조명록 방미를 결산하는 북-미 공동성명은 "두 나라 사이의 쌍무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명시하므로써 양국간 적대관계를 정상적 관계로 전환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 북한, 4자회담을 통한 평화체제 논의 수용

특히 북한이 한반도의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그동안 고수해온 북-미 평화협정 주장을 사실상 철회하고, 4자회담을 통한 접근을 수용한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성명은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하였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미국으로부터 국가안보와 영토안정을 보장받는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대결단을 할 것이라고 말한 조명록 특사의 발언에서 확인되었다. 따라서 북한 최고정책 결정자는 이 두 가지 목표가 달성된다면 그 방법에는 구애받지 않겠다는 "통큰 모습"을 다시금 보여주었다.

북-미 공동성명에서 양국이 4자회담이라는 다자적 틀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모색하기로 한 것은 북한이 이미 아세아안보포럼(ARF)에 가입한 사실을 감안할 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또 북한이 4자회담을 통한 평화체제 논의를 수용한 것은 북-미 평화협정 방식을 반대해온 남한의 입장을 고려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남한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북-미 관계 개선으로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식 전술로 회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4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모색한다는 것은 남, 북한이 주가 되고 미국, 중국이 지원하는 형태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소위 2+2방식으로 불리는 이런 접근에 미국과 중국은 거부할 명분이 없으며, 특히 김대중 정부가 구상하는 평화체제 구축방법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그동안 한-미-일 3국간 대북정책조정 과정의 결실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4자회담은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을 논의할 두 개의 분과위원회를 만들어 둔 상태이다. 여기서 정전협정 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문제도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4자회담이 느슨한 수준의 논의 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4자회담 안팎을 넘나들면서 남북간, 북-미간 관련 회담이 필요하고 또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사자 문제 해결 전망 밝아져

이번 북-미공동성명에서 평화협정체제가 아니라 "평화보장체계"라고 표현한 것은 △북-미 평화협정체제를 주장해온 북한이 남한의 입장을 고려하면서도 △미국으로부터 체제안보를 보장받으려는 의지를 동시에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이 용어를 사용해 왔으며 남한과는 불가침선언, 미국과는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 왔다. 따라서 정전협정의 대체 방법에 대해 관련 국가들간의 타협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이 문제를 4자회담에서 논의한다는 데 동의하므로써 당사자문제는 보다 유연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마련되었다는 평가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문제와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은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문제이다. 미국과 일본의 안보관련 부처 담당자들은 남북관계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점에 대한 북한의 변화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남북관계 개선=한반도 긴장완화라는 등식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남북 국방장관 회담, 경의선 복구사업에 남북한 군의 대화 및 협력 가능성, 북한군 최고위 인사의 미국방문, 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예, 핵동결을 핵심으로 하는 북-미 제네바 합의 준수 등과 같은 일련의 합의 또는 조치들은 이 문제가 전향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제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관계 개선을 지속하면서 이를 상호보완적으로 조정하여 한반도의 긴장을 청산하고, 이를 평화체제로 이끄는 당사국간 신뢰 형성 및 정책적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서는 4자회담, 남북간, 북-미간 관련 인사들간의 빈번한 접촉 및 대화로 인간적 신뢰를 높여 오해와 불신을 제거하고, 나아가 평화체제 수립의 여정을 순조롭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 북-미관계 변화로 한-미 동맹관계 재조정 불가피

그리고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동시 변화에 따라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고 유지해 왔던 한-미 동맹관계의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남북 및 북-미관계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냉전시대의 한-미 관계가 온존된다면, 이는 역으로 남북 및 북-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고, 나아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기회는 상실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관계의 변화에 나서는 문제는 △주한미군의 지위 및 역할 △팀스피리트 훈련의 존속문제 △전시작전권 반환문제 등 여러 가지들이다. 이 가운데 한-미 양국은 지금까지 주한미군 문제를 "(북한이 간섭할 성격이 아닌) 전적으로 한-미간의 문제"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남북관계 개선 및 주한미군의 사회적, 역사적 역기능으로 인한 반미감정, 미국의 정권 교체기 등의 조건을 맞아 주한미군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우리는 주한미군 문제가 동북아의 안정 및 평화 증진, 한국의 군사주권 확보, 지속적 남북관계 개선의 지지 등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 한반도는 오랜 적대와 대결의 구습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관련 당사자들의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즉 이익이 근본적으로 충돌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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