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복 전 의원이 보는 `變化`에 대한 `가치평가 기준`


그러나 이 것은 아직도 남북간에는 냉전구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상황 속에서는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의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이나 남북 정상회담 같은 것이 기회가 되어 그 같은 왜곡된 이미지가 바로잡혀지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적인 점이 없지는 않더라도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기대로 또 문제가 있습니다. 그 것은 정도의 문제입니다. 그 같은 이미지의 개선은 가능한 한 객관적 토대 위에서 합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김정일의 이미지 변화가 이 같은 객관성과 합리성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내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문제를 짚어보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김정일은 세 가지의 ‘무기’로 남쪽 국민들 사이에서 그의 이미지를 하룻밤 사이에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첫째로는 그의 순안공항 출영이었습니다. 둘째로는 평양시민의 대규모 동원이었습니다. 셋째로는 분방하기 그지없었던 그의 화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김 대통령 일행이 평양방문 기간중 접했던 김정일의 ‘얼굴’은 그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얼굴’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김정일이라고 하는 인물은 미지의 인물, 미궁의 인물입니다. 그 자신도 김 대통령에게 “이번에 김 대통령의 방문으로 나는 은둔자로서의 이미지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미지의 인물’로써 김정일에 관해서는 여러 개의 상이한 ‘얼굴’들이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오랜 세월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그와 생활공간을 공유했던 측근인물로 지난 1997년 북을 탈출, 남으로 망명한 황장엽(黃長燁) 전 노동당비서가 그려준 그의 ‘얼굴’이 있고, 1984년 북으로 납치되었다가 1989년 기적의 탈출에 성공한 영화인 신상옥(申相玉)·최은희(崔恩姬) 내외가 그려준 그의 ‘얼굴’이 있으며, 1987년 미얀마 근처 인도양 상공에서 대한항공 858편 여객기를 폭파한 2인조 북한 폭파범중의 하나인 김현희(金賢姬)가 그려준 그의 ‘얼굴’이 있습니다. 또한 그에게는 북한지역을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수용소군도’로 유지하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통제와 세뇌를 통해 대다수 북한동포들을 인성(人性)을 박탈당한 기계적 도구로 변모시켰을 뿐 아니라 경제정책의 실패로 수백만의 아사자를 발생시킨 실정(失政)의 책임자로서의 그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 2박3일 동안에 김정일이 보여준 그의 ‘얼굴’은 이 ‘얼굴’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얼굴’이었습니다.

1964년 김일성대학을 졸업하고 노동당 지도원으로 지도자 수업을 시작한 김정일은 평생동안 ‘조직’과 ‘선전’ 및 ‘선동’ 분야에서 경력을 키워온 사람입니다. 이번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 기간중 김정일은 ‘조직’과 ‘선전’ 및 ‘선동’의 대가로서의 그의 진면모를 십이분 발휘하여 그 자신의 기획·제작·감독·연출·주연으로 남쪽의 대다수 국민들은 물론 세계의 이목을 놀라게 한 거대한 ‘깜짝쇼’를 꾸며냈습니다. 사실은 순안공항에, 그리고 평양시내에 모아놓은 수십만의 인파가 엄밀한 의미에서 김 대통령 일행을 환영하기 위한 군중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엄청난 결속력으로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동원된 인파였고 결과적으로는 남쪽으로부터의 방문객 일행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군중시위였습니다. 실제로 이날 평양군중 속에서 어느 누구도 당일 날 흥분했던 남쪽의 어느 TV 해설가와 수행했던 어느 교수가 분명히 ‘실언’한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을 거명하여 연호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연호한 것은 오직 김정일의 이름뿐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김 대통령 일행은 실제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김 대통령을 수행했던 일행은 이 ‘시위군중’을 ‘환영인파’로 착각하여 감동했으며 감동의 정도가 지나쳐 김정일의 여러 다른 ‘얼굴’들은 외면한 채 이번에 보여준 ‘얼굴’만을 가지고 그를 ‘악마’로부터 ‘천사’로 둔갑을 시켜놓은 것입니다.

물론, 이번에 김정일이 평양에서 보여준 그의 ‘얼굴’이 꾸며지지 않은, 분식되지 않은 그의 실제 ‘얼굴’중의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보여준 언행이 철두철미 꾸며진 ‘연기’가 아니라 진실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냉엄한 현실은 이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이 문제는 냉전시대 다른 나라에서도 제기되었던 문제입니다. 1980년대 미·소간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이 진행되고 있을 때 등장한 ‘경구(警句)’가 있습니다. 즉, “믿어라, 그러나 그 전에 검증하라”(Trust, But Verify First)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김정일의 이미지 변화도 반드시 ‘검증’을 거쳐서 이를 수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번에 보여준 ‘얼굴’이 진짜 실제 ‘얼굴’인가도 ‘검증’해야 하고 이와 아울러 앞에서 일부 지적된 것처럼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밖의 여러 ‘얼굴’들에 대해서도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번 평양나들이에 참가했던 남쪽 인사들이 코끼리와 장님들에 관한 인디안 우화에 나오는 장님들처럼 행동한다면 이번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과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는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관해서는 작금 우리 사회의 흐름이 걱정스럽습니다. 왜냐 하면, 지금 우리 사회에는 김정일에 관하여 김 대통령이 전하고 그려내는 이미지만이 우리들에게 전달되고 있고 이 같이 변화된 김정일의 이미지에 관하여 동조하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수구’ ‘반동’ ‘보수’로 매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의 이미지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그 것은 이번에 평양에서의 2박3일간의 한 편의 드라마를 통하여 그가 그의 뛰어난 연출력과 연기력으로 이룩해낸 이미지 변화가 그밖에 그가 책임져야 할 어두운 과거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을 것이냐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는 최근 이른바 ‘역사 바로 잡기’ 운동의 열병을 앓고 있는 중입니다. ‘역사 바로 잡기’라는 미명아래 과거의 많은 사건들이 재조명되고 이들 사건에 연루되었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훼예포폄(毁譽褒貶)이 진행중입니다. 여기에는 심지어 여수·순천사건, 제주도 4.3사건까지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북의 경우, 물론 김일성의 후계자로써 역사적 사실들에 관하여 연령상 직접 책임을 질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일들도 적지 않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오늘날 북한에서 전개되고 있는 어느 상황으로부터도, 또 남북관계에서 일어났던 어떠한 사건으로부터도 김정일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내부에서 ‘역사 바로 잡기’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대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진행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에 대해서만은 분단은 물론, 6.25 전란과 그 이후 헤아릴 수 없었던 대남도발, 그리고 북의 동포들에게 가해진 엄청난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은 비단 형평성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정의의 차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또 있습니다. 그 것은 이 공동선언을 보면 우리가 김정일을 비단 분단상태 하의 남북관계를 관리하는 ‘분단관리’의 상대방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실상 분단조국의 ‘통일논의’의 상대방으로 그 존재를 수용하는 것을 그 취지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분단상태 하에서 김정일은 북한지역과 이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에 대한 절대적 통치자로써 부동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 때문에, 분단상태 하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해결하는 일은 북한지역의 유일무이한 실권자인 김정일을 상대로 해서 추진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분단상태 하에서 남북간에 평화공존을 제도화하고,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고,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고, 분단으로 인한 그 밖의 고통과 불편을 경감 내지 해소시키는 등 남북관계를 개선·해결하는 일에 관해서는 우리는 김정일을 우리의 대화 상대방으로 수용하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통일은 이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통일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우리는 김정일을 상대로 따져야 할 일이 있고 그에게 책임을 지워야 할 일이 있습니다. 통일은 북의 동포들을 상대로 추진해야 하지 김정일을 포함하여 오늘까지 북한을 지배해온 통치세력을 상대로 추진해서는 아니 되는 일입니다.

한편에서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저질러진 여러 가지 불미한 일들에 대하여 그 때의 관점이 아닌 현재의 관점에서 흑백을 가리고 이를 근거로 특정 사안들에 대한 때늦은 ‘정의의 심판’이 설왕설래되고 있는 상황인 데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분단을 초래했고, 수백만명의 동포들로 하여금 월남실향민이 되게 하는가 하면 6.25 전쟁을 도발하고, 북의 2천7백만 동포들로 하여금 오늘의 고통을 안겨준 장본인을 과연 용서할 뿐 아니라 그를 상대로 ‘통일’을 논의할 수가 있는 것인가? 만약 과거의 과오와 관련하여 우리가 남쪽 사회 내부에서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면 당연히 북쪽에서 저질러졌던 역사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관대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이미 과거의 일이 된 역사 속의 일에 대해서는 남북에 대해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번 6.15 남북공동선언은 김정일의 위상에 관하여 ‘분단관리 방안’ 논의의 상대역보다는 ‘통일실현 방안’ 논의의 상대역으로써의 위상을 부여하는 데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6.15 남북공동선언이 역설적으로 ‘국론통합’에 기여하기보다 ‘국론분열’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없지 않은 것입니다.

<질문>
이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북한이 노리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답변>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가지고 보면 북한이 노리는 것은 크게 두 갈래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첫 번째로는 김정일의 이미지 개선, 그리고 이를 통한 북한의 이미지 개선을 들 수 있겠지요. 북한은 이 노림 수에서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우스개 소리이기는 하지만 남쪽에서는 김정일의 이미지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오는 2002년의 남쪽 제16대 대통령선거 때 만약 김정일이 출마하면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거론되기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김정일이 직접 출마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또 그가 출마할 경우 당선될 것이라는 말도 공연한 희담이겠지요. 그러나 김정일이 낯을 찡그리는, 다시 말하여 거부권을 행사하는 후보는 당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왕설래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지 않습니까? 김정일의 이미지가 좋아지니까 북한의 이미지가 덩달아 개선되고 있지요. 북한은 지금 이 개선된 이미지에 편승하여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탈피할 뿐 아니라 위상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대적 외교공세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서방국가들과의 수교협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고 또 국제정치무대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북한의 배후세력으로 다시 확보하는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보너스로 북한은 ‘아시아지역 안보포럼’(ARF)에 일거에 가입이 되었고 최근 태국수도 방콕에서 열린 ARF 외상회의에서 북한의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은 단연 인기 스타가 되어 한국의 이정빈(李廷彬) 외교통상부장관, 일본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외무대신, 중국의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 미국의 마들레인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등과 연쇄회담을 갖는 바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경제적 혜택일 것입니다.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로 과연 어떠한 내용과 규모의 경제적 혜택이 북한의 몫이 될 것인지에 대하여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이번 정상회담이 도합 6억여 달러의 현금지원을 포함하여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북한에게 제공하게 되어 있는 금강산관광을 필두로 하는 현대그룹의 대북 경제협력 드라이브를 통해 그 정지작업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정상회담 이후 이루어지고 있는 가시적 현상으로는 또한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 이전에 지원했던 20만 톤에 이어 10만 톤의 비료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미 항간에서는 정상회담이 실현되었다는 것은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경제적 지원이 북에 제공되었거나 되기로 약속이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추측이 그럴 듯 하게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특징은 북한의 태도에서 전례 없는 여유가 과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궁금한 것은 이 같은 여유의 출처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의 경제는 사실상 파탄상태였습니다. 1994년 김일성의 돌연한 사망도 사실은 북한의 경제난국의 실상을 뒤늦게 파악한 데서 온 충격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유력하게 제시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한 북한의 경제난국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생긴 여유냐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저 나름의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북한이라고 하는 체제는 배급에 의존하는 체제입니다. 공산주의 체제의 체제논리는 “모두로부터 능력에 따라,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 체제로써 북한의 사회적 안정은 모든 종류의 생필품을, 물론 계급과 신분에 따라 차등적이기는 하지만, 계획된 배급일정에 따라 차질 없이 배급해 주느냐의 여부에 따라 좌우되게 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북한의 경제실정은 이 같은 배급의 차질 없는 실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하여 난국과 위기가 심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에 북한은 배급제도를 재정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배급대상의 규모를 과감하게 감축한 것입니다. 김정일이 인민 전체를 배급으로 먹이고 입힐 능력에 한계를 느끼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배급의 대상을 북한의 체제유지에 필요한 ‘기간요원’으로 국한시키고 그 테두리 밖에 있는 주민들은 아예 배급 대상에서 배제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규모가 크게 줄어든 대상에 대한 배급은 최근 미국과 한국 및 중국과 기타 국제구호기관을 통해 확보되는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으로 충당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되자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주민을 배급대상으로 삼았을 때 공급물량의 부족에서 오는 중압감으로부터 오히려 해방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북한은 이 같이 확보한 ‘여유’를 이용하여 통이 큰 게임을 시도하기로 한 듯 합니다. 남한을 상대로, 그리고 남한을 교량으로 이용하여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을 상대로, 대담한 ‘통일전선’ 전략·전술을 시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서 남쪽에서 거두려고 하는 수입은 크게 보아 분명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제적 혜택입니다. 또 하나는 남한 사회의 분열·이간입니다. 경제적 혜택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했지요. 남한 사회의 분열·이간에 대해서도 이미 앞에서 언급했습니다. 이와 아울러 또 하나의 노림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것은 주한미군 문제입니다. 6.15 공동선언에는 주한미군 문제를 비롯하여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 문제에 관해서는 김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양자가 합의할 수 있는 정도의 ‘어휘’와 ‘문장’을 찾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6월15일 평양으로부터 귀환길에 서울공항에서의 귀환인사를 통해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에 관하여 김정일과 상당한 논의가 있었고 의견의 일치가 있었으며 두 지도자간에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있었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김 대통령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도 ”기능과 위상의 변화를 전제로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는 데 대하여 상당한 공감대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김 대통령의 주장이 과연 사실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김정일의 ‘확인’이 필요하나 아직까지 김정일로부터는 이 문제에 관한 확인 발언이 없습니다. 그보다도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김 대통령의 발언은 이 문제의 실체를 왜곡시키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은 그렇게 임의로 쉽게 좌우될 수 없는 것입니다. 1949년 한반도에서 철수했던 주한미군은 1950년 북한군의 6.25 남침을 격퇴시키기 위하여 한반도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을 명시하는 근거가 되는 많은 장치들, 즉 법적 제도들이 마련되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1950년 대전에서 한미간에 체결된 마이어 협정을 비롯하여 1954년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그 뒤의 한미 행정협정을 비롯한 일련의 양국간 협정들, 그리고 ‘작계 5027’을 포함하여 한미연합작전 체제 등이 있습니다. 이들 법적, 제도적 장치들에는 예외 없이 주한미군의 존재는 북한군의 재남침을 억제하는 억지전력으로서만이 아니라 그러한 재남침이 있을 때 이를 격퇴하는 것으로 그 목적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이 없어진다면 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은 그 명분이 소멸될 뿐 아니라 주한미군 주둔의 근거가 되는 앞에서 거론한 일체의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일거에 존재이유를 상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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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刊「軍事世界」2000.8月號(通卷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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