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 대변인`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


▶박종웅 의원

흔히들 그를 일컫어 `또라이`라고 한다. 냉소적인 이들은 그의 형태를 놓고 `튀어보려고 하는 짓`이라고 일축한다. 그나마 그에게 호의적인 축의 반응이래야 `쓸 만한 사람이 망가졌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 `코드`가 궁금하다는 이들도 많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주연을 맡은 정치 드라마의 조연 박종웅 의원(한나라당 3선). 그를 만난 것은, 그가 발표한 이회창 총재 비난 성명 때문에 큰 소동이 벌어진 다음날이었다.

이총재에게 공천을 받았으면서도 이총재더러 배은망덕하다고 한 언사는 지나쳤던 것 같은데.

내가 공천 어쩌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이총재가 YS에게 받은 건 무려 다섯 가지다. 감사원장, 총리, 전국구 1번, 당 대표, 당 총재, 거기에다 당 대표에 임명되면서부터 대세론이 힘을 얻었으니 대통령 후보도 YS가 시켜준 것이나 다름없다. 과연 누가 배은망덕한 건지 모르겠다. 지금도 YS의 투쟁 때문에 덕을 보는 건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 뿐이다. 총선 결과가 그걸 입증한다. 그런데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선거가 끝나자마자 `YS는 끝났다`는 말을 퍼트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문제가 된 `식당` 발언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이야기다.

같은 당 사람들에게 멱살을 잡혔는데 지금 심경은 어떤가?

하도 많이 당해 이골이 났다. 지난해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했다. 당무위원 직을 박탈하고, 의원총회에서 발언하려는데 동료 의원이 허리띠 잡고 못 나가게 말리고, 이 새끼 저 새끼 욕설을 퍼붓고...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뒤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줄곧 욕만 먹었다. 아마 그게 내 팔자인 것 같다.

정치 입문 직후부터 욕을 먹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돌쇠 이미지로 인해 그를 대학 문턱도 못 밟은 사람으로 아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서울대 법대 71학번, 당시 서울대 5대 패밀리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이념성이 강한 경제법학회의 창립 회원이었다. 중도 좌파쯤에 속하는 이 동아리의 구성원은 대부분 호남 출신.

그가 군에서 제대해 상도동 막내로 정치에 입문하자 재야. 노동 운동계로 진출한 동아리 선후배들은 현실 정치, 그것도 DJ가 아닌 YS의 품에 안긴 그를 비난했다. 그 비난은 3당 합당 직후 절정에 달해, 한 후배의 표현에 따르면 모임 때마다 단골 안주감으로 `씹혔다`.

그렇지만 `상도동 대변인`으로 활약하기 이전만 해도, 그는 정치권에서는 꽤 괜찮은 국회의원으로 꼽혔다. 관련 사안의 맥을 짚어내는 성실한 의정 활동으로 여러매체에서 `국감스타`로 올랐을 만큼. YS 정권 당시 언론과 척지면 안된다는 정치권의 금기를 깨고 족벌. 재벌 언론의 소유 구조와 편집. 인사권 간여를 집중 거론해, 일부 언론에 미운 털이 박히기도 했다. 그를 두고 일각에서 `망가졌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그는 왜 자청해서 망가지는 길에 들어섰을까.

YS의 대변인 노릇을 자청한 건 의리 때문인가?

1979년에 상도동 막내로 정치에 입문했다. YS 밑에서 정치를 배웠고, 두 번이나 국회의원을 했다. 그런 내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그 분을 외면하고 마음이 편할 수 있나. 비난받지 않고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는 비난받더라도 마음이 편한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의리보다는 내 마음이 편한 길을 택한 셈이다.

지역이 부산이어서 정치적으로 크려고 YS를 따라다닌 건 아닌가?

그길이 정치에 도움이 된다면 17명 부산 의원들이 다 그 분을 가까이하지, 왜 멀리하겠는가. 지난 해까지만 해도 지역에서도 제발 YS와 거리를 두라면서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국회의원이 제 할 일은 안하고 옛 보스인 YS 뒤나 좇아 다니는 게 유권자들에게 할 도리인가?

나는 국회의원인 동시에 정치인이다. 야당이 약해서 제대로 못 치고 나가는 걸 YS가 대신 하고 있다. 그를 돕는 일도 정치인으로서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YS를 20년이나 모셨다. 표정만 봐도, 한 만디만 들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웬만큼 감을 잡는다. 이틀에 한 번꼴로, 많으면 하루에 두 번도 들르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 아니다. 의정 활동은 예전처럼 하고 있다. 올 7월에도 `언론발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발의해 동료 의원 33명의 동의를 받아냈다.

YS의 정치 재개를 무모하고 부적절한 행위라고 여기는 국민이 많다.

IMF 사태로 공은 묻히고 과만 두드러지게 보이게 됐지만, 그는 군 개혁과 금융실명제 같은 과감한 개혁을 단행한 대통령이다. YS가 반드시 명예를 회복할 것으로 확신한다. 또 YS가 나라를 바로잡고 국민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리라고 100 퍼센트 확신한다. DJ를 견제할 수 있는 정치인은 YS 뿐이다. YS까지 침묵했더라면 DJ는 어느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독선과 독주로 흘렀을 것이다.

지역 감정을 부채질하는 게 국민을 안정시키는 정치행위인가?

DJ 정권이 잘하는데도 YS가 독재자라고 말했다면, 그는 벌써 끝났다. 그 발언이 처음 나올 때만 해도 다들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앞을 내다보는 용기 있는 지적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지금은 상당수가 동의한다. 다만 그런 지적에 공감하는 사람이 영남에 더 많을 뿐이다.

정권 교체 이후 여야 의원 방북을 추진하고, 야당 의원으로는 처음 금강산 관광에 나서는 등 대북 문제에서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던 박의원이다. 주군이 방향을 바꾸면 소신도 바꾸는가?

잘못 알려진 측면이 많다. YS는 절대로 극우가 아니다. 장기수 이인모씨를 북으로 보내고, 북에 조건 없이 식량을 지원했던 YS다. 김일성 주석도 만나려 하지 않았는가? YS가 말하고자 하는 건 대북 관계를 진전시키는 과정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방향과 속도 면에서 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사람들 머리에 쏙 들어가도록 YS 특유의 어법을 동원하다 보니 극단이라고 비쳤을 뿐이다.

`DJ는 독재자` `김정일이 회장이라면 DJ는 전무` 같은 거칠고 품위 없는 어휘 구사가 특유의 어법이란 말인가?

`독재자` 발언에 대해서는 `너무 빠른 것 같다`고 의견을 말씀드렸다. 회장. 전무 발언에 대해서는 `사석에서는 몰라도 공식 기자회견에서 하기에는 좀 부적절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두 번 다 알았다고 하셨지만, 끝내 치고 나갔다. 그분으로서는 충분히 생각한 끝에 한 말이다. 대북 문제에서 YS의 다듬어지지 않은 비유가 보수 중산층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분 특유의 정치 감각이고, 대중의 정서를 짚어내는 언어 감각이다.

그렇다면 본인의 확신과 달리 YS의 정치 캠페인이 대중으로부터 끝내 외면당하면 어쩔 셈인가. 그는 주저없이 "YS가 끝까지 버림받는다면 나도 정치권을 떠나야지"라고 대답했다. 그는 시종일관 철두철미한 YS맨이었다. 시대 착오적인 `또라이`인가, 의리와 신념의 정치인 인가. 그 판단은 독자와 긴 역사에 맡긴다.

시사저널 200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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