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日 제작·감독·주연의 평양회담, 얻은 것과 잃은 것

이동복(15대 국회의원, 前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대변인)

北, 「하나의 조선」 노선 수정

金大中 대통령의 2박 3일 평양 나들이는 南北간에 세 번째의 또 하나의 「 선언적 합의서」를 생산하고 그 막을 내렸다. 지난 28년 동안 남북간에 생 산된 3건의 「합의서」를 비교해 보면 통일을 지향하는 한반도의 남북관계 가 일단 전향적으로 그리고 아래에서 위의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선 주목해 보아야 할 곳은 이 3건의 「합의서」의 서명란이다. 1972년의 「남북공동성명」은 당시 남측의 「중앙정보부장」인 李厚洛(이후락)과 북 측의 「노동당조직지도부장」인 김영주가 국호는 물론 직함도 없이 자신들 의 이름만으로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서명했었다. 1992년의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교류와 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 「남북기본합의 서」)는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연형묵」이 쌍방의 국호와 직함을 정식으로 사용하면서 서명했다. 이 번 「남북공동선언문」은 「대한민국 金大中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 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호와 직함을 사용하면서 서명하고 있다. 이 3건의 「합의서」 서명자들은 「장관」급에서 「총리」급을 거쳐 「정상 」급으로 격상되어 왔다. 특히, 이번 「남북공동선언문」은 그 前文(전문) 에서 쌍방의 국호를 명기하고 제5항에서는 이 선언문의 합의사항들을 실천 하기 위하여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갖기로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 은 북측이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관계를 두 개의 「사실상의 주권국가」간 의 관계로 받아들이고, 「대한민국 정부」를 「대화의 상대방」으로 받아들 였음을 시사한다. 적어도 문면상으로는 이같은 사실은 북한이 半세기에 걸 쳐 끈덕지게 고수해 온 「하나의 조선」 노선을 수정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선언문은 우리가 이번에도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에서 피해야 할 「禁忌」(금기)를 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선언문 역시 또 하나의 「원 칙적 합의」인 것이다. 남북간에 생산된 수많은 「합의」들이 예외 없이 「 원칙적 합의」의 형태를 띠었고, 결국 실천·이행단계에서 그 해석을 「합 의 따로, 이행 따로」로 결국 死文化(사문화)의 길을 걸어온 것이 남북대화 의 역사였다.

이번의 「원칙적 합의」는 과연 예외가 될 것인가. 특히 이번 선언문은 여 기서 다루어진 유일한 구체적 사안인 이산가족의 문제에 관하여 이를 1회성 으로, 그것도 非전향 장기수 문제와 결부하여 합의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밖 에 경제협력과 기타 교류·협력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남북기본합의서」 의 표현을 빌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선언문에서 아예 「남 북기본합의서」의 전반적 이행 착수에 합의하는 형태를 취하도록 노력할 수 는 없었는지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번 「공동선언문」도 그 내용과 표현을 보면 그 작성과정이 주로 북측에 의하여 주도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통일방안에 관하여 남측의 「 연합제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案」 간에 「공통성이 있다」는 대목은 주목을 요한다. 남측의 「연합제案」이 공식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동안 남측의 「연합안」은 과도적으로 「1민족, 2국가, 2정부, 2체제」를, 북측의 「연방안」은 과도적으로 「1민 족, 1국가, 2정부, 2체제」를 각기 상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더구나 북측의 「연방안」은 남측에 대해 수락 불가능한 「전제조건」들의 충족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양자간에 과연 어떠한 「공통성」이 발견되었는지 이 문제에 관한 논의의 내용이 보다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면 안될 듯하다.

國內 안보를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

이번 金대통령의 평양 나들이 성과를 결산함에 있어서 강조되지 않으면 안 될 사실은 이를 통하여 북측은 金正日 중심 체제의 강철 같은 결속을 과시 한 반면 남측에서는 對北정책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세력 간의 심각한 갈등 구조를 점화시키는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북측은 평양을 방 문한 金대통령 일행에게 金正日 제작·감독·주연으로 기계처럼 조작되는 평양시민들을 「엑스트라」로 동원하여 이제는 지구상 어느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식 「환대」를 「조직」하고 이를 이 용하여 비단 북측 주도의 「선언문」을 생산했을 뿐 아니라 남측의 언론매 체들을 북측의 「홍보매체」로 활용하여 반세기에 걸쳐 영욕이 점철된 가운 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남측의 「반공체제」를 일격에 난파선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이 정부는 국내적으로 국가안보를 어떻게 수호하고 우리의 자유민주주 의 기본질서를 어떻게 수호해 나갈 것인가. 더구나 북한을 「假想敵」(가상 적)으로 하는 對共안보의 주무기관으로 국가보안법 집행의 책임부서인 국 가정보원의 책임자가 이번 평양회담에서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모 습을 공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번의 선언문이 이행되는 상황하 에서 이 선언문의 産母(산모)가 책임자로 있는 국가정보원의 기능과 역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국민은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신뢰 해야 할 것인가. 어려운 평양 나들이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金대통령에게 국민적 차원에서 물어야 되고 설명을 들어야 할 일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월간조선 2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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