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김용순 비서의 서울 도착시 조성태 국방부 장관이 보여준 일련의 처신과 자세는 그가 과연 이 나라의 국방부 장관이며 나라를 지키는 60만 장병들의 우두머리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회의를 느끼게 한다.

북의 김 비서 일행 중에는 송이버섯 전달만을 위해 서울에 온 박재경 대장이라는 군인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실세일지는 모르지만 20여명쯤 되는 북한군 대장 중의 한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송이버섯 전달을 위해 굳이 「군복 입은 대장」을 보내는 북의 저의를 알지 못한다.

문제는 그 같은 인물이 진짜 어떤 진의를 갖고 서울에 왔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우리 국방부와, 조 장관이 뒤늦게 그를 만나려고 안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 국방부 장관의 카운터파트격인 무력인민부장도 아니었다. 우리 장관과는 격이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는데도 우리 국방부 측은 『우리 국방부 장관이 잠깐 뵙자』고 하면서 면담을 졸랐다고 한다. 그러나 박 대장이라는 북의 군인은 「내 임무는 송이 전달뿐」이라며 『일이 많아 평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끝내 면담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우리 측 관계자들이 끈질기게 권유하자 그는 국가안보회의 멤버들과의 오찬석상에서 마지못해 조 장관과 자리를 함께 했고 10분간 대화를 나눴다는 보도다.

다른 장관도 아닌 국방 장관의 이 같은 행태는 국민들을 창피하게 만들었다. 격에도 맞지않는 이에게 왜 구걸면담인가? 우리는 북이 굳이 군사문제에 대해서는 남쪽과 어떤 협의도 거절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국민의 따가운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도 북의 「군복」과 무슨 그림을 그려보려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럴수록 장관은 당당하고 의연했어야 한다. 평화의 구축과 보장은 아직도 갈길이 먼데 국방 장관마저 이 같은 경박한 처신을 보여준다면 국민이 어떻게 군을 믿고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조 장관의 이 같은 처신에 크게 실망하며 평생을 군에서 봉사하고 조국을 지켜왔다는 군인출신의 자랑스러운 자부심은 어디 갔는지 묻고 싶다.

조 장관뿐이 아니다. 북이 지정한 수령자분 외의 여분의 송이를 배분하는 심부름까지 청와대에서 했다니 기가 막힌다. 제주에 가있는 동안 우근민 지사의 「과공」, 포항경유지로 대구에 도착했을 때 문희갑 대구시장 등의 공항영접 등 우리 공직자들의 일련의 처신이 손님에 대한 적절한 예우에 부합한 것인지, 또는 「품위 있는 화해」를 원하는 이쪽 국민들의 자존심을 허물어뜨린 체신없는 처사였는지 본인들 스스로 자괴할 일이다.

조선일보 20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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