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날 조찬을 겸해 가진 `의원 공부모임`에서는 내년 이맘때쯤 복원될 경의선 철도와 비슷한 시기에 개통될 문산-개성 도로가 `남침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같은 날 대북 식량차관 제공을 논의한 한나라당 총재단 회의에서도 5만t 안팎의 식량 무상지원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정리하면서 그것도 지원식량이 군량미로 쓰이지 않고 굶주리는 북한 주민에게 전달된다는 점이 투명하게 밝혀져야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런 발언들은 일견 타당성과 합리성을 갖춘 것처럼 보이고 그 때문에 우리 사회 일부의 지지를 얻는지 모르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과연 그럴까 싶은 의문이 생겨난다.
`남침 통로` 발언은 북한이 남한을 무력으로 적화통일하겠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이 전제는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북한이 자기 체제 중심의 통일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면 그런대로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전멸을 각오해야 하는 전쟁을 벌여 통일을 이룩하겠다고 하는 것은 현재의 남북한 관계,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에 비춰 도저히 불가능한 `망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만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주장을 계속 고집하려면 거기에 합당한 근거를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 주장은 또한 남쪽 중심의 일방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띤다. 군사적 요충지인 문산-개성 축이 이어진 뒤 만의 하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것은 `남침 통로`일뿐만 아니라 `북침 통로`가 될 수도 있는데도 북한의 `남침 통로` 활용 가능성만 부각시키고 있다.
남한이 `남침`을 두려워하는 것만큼이나 북한 역시 `북침`을 두려워 하고 있다는 것은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과 탈북자들도 부인하지 않는 객관적 사실이다. 북쪽에서도 문산-개성 축 연결이 `북침 통로`를 만들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도 남을 법한데 아직까지 북한에서 `북침 통로` 가능성을 문제삼고 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어쨌든 남북 양측은 문산-개성 축 연결에 합의했다. 양측 당국이 북침, 남침에 대한 깊은 불신을 씻어 냈기에 가능한 것이지 서로를 침략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한 점 우려라도 남아 있었다면 애당초 말도 꺼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만의 하나의 경우를 걱정할 여력이 있다면 전쟁예방이나 화해, 협력의 새싹을 가꾸고 키우는 데 이를 돌리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북한에 지원하는 식량을 군량미로 사용하지 말고 기근에 시달리는 주민들에게 전달하라는 `군량미` 주장도 설득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배급할 식량을 군량미로 돌리고 외부에서 지원받은 식량을 주민들에게 배급한다면 군량미를 지원한 것일까, 주민을 지원한 것일까. `군량미` 전용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소박한 의문에도 한번쯤 답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차라리 식량지원을 하지 말라는 주장이 보수우익층의 면모에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정일용기자
연합뉴스 2000.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