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조(色調, tone)는 색상과 채도의 복합적 용어이며, 빛깔의 조화를 의미한다.
색깔의 분위기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미술작품은 수많은 색상과 밝고 어두움, 선명하고 탁함 따위를 이용하여 사물을 표현한다. 
작품의 색조는 색깔을 사용하여 만들어낸 최종의 분위기인 것이다. 

사물이 상징을 통해 내용을 전달한다면, 색조는 정서를 표현한다. 
이 둘의 결합을 통해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된다. 
붉은색 느낌이 나는 작품이 있고, 갈색이나 회색 분위기, 심지어는 흑백에 가까운 회색 분위기의 작품도 있다.

같은 소재를 사용해도 색조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만약 웃는 사람을 밝은 색조로 그리면 활력과 행복을 느끼지만, 어두운 색조를 사용하면 고독과 자조(自嘲)의 느낌이 표현된다. 

▲ 램브란트/제욱시스로 분장한 최후의 자화상/82.5cm×65cm/유채/1668
웃고 있지만 무거운 색조와 명암을 사용했기 때문에 마냥 밝지만은 않다. 
램브란트가 이혼 당하고 경제적 고통을 당하는 현실을 감안하여 허무한 표정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한 현실에도 밝고 화사한 분위기로 그렸다면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이를테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경지에 이른 웃음으로 말이다.

마찬가지로 꽃을 밝은 색조로 표현하면 생명의 환희를 느낄 수 있지만, 어두운 색조로 표현하면 죽음과 허무함을 느낀다.

민족미술, 민족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민족이 어떤 색과 색조를 좋아했는 지를 알아야 한다.
시대적 분위기, 당대가 요구, 대중들의 선호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살육과 피가 난무하는 난세에는 붉은색이 중심이고, 평화의 시기에는 밝고 높은 채도의 색상의 그림이 그려지기 마련이다. 
또한 석조건물이 가득한 도시는 온통 칙칙한 회색의 풍경화가 그려지고, 눈으로 뒤덮힌 곳에서는 흰색을 중심으로 명도 대비가 강한 풍경이 표현된다. 
그래서 작품의 색조만 가지고도 시대상황을 이해하거나 미술 사조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일단은 색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색상은 안료의 삼원색(빨강, 파랑, 노랑)과 빛의 삼원색(빨강, 파랑, 녹색)으로 나눈다. 
안료의 경우 흰색과 검은색이 추가된다. 
빛의 경우는 빛의 많음과 적음으로 흑백을 대신한다.
안료는 자연물에서 얻을 수 있는 물감이다. 이를 아날로그 물감이라고 해도 된다. 

빛은 사람이 눈으로 인식하는 색이다.
안료도 결국은 빛으로 인식한다.
현대에 들어서 빛으로 만들어내는 색은 디지털이다. 
컴퓨터에서 만들어서 모니터로 보여주는 색은 모두 빛의 색이자 디지털로 구현한 색이다. 

최근에는 컴퓨터, 휴대폰, TV 따위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안료와 빛의 요소를 결합해 4원색(빨, 파, 노, 녹), 여기에 흑백을 결합해 6원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전통색을 ‘오방색(五方色)’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오방색은 우리그림의 색조와 아무 관련이 없다. 

오방색은 빨강, 파랑, 노랑, 하양, 검정인데, 빨강, 파랑, 노랑은 안료의 3요소이며 흰색과 검은색은 명도나 채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다섯 가지의 기본색을 섞으면 안료의 모든 색을 만들 수 있다. 
결국 오방색은 안료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색일 뿐이다.

오방색은 [주역-음양오행론]에 유추한 색이다. 
색에다 방향을 결합한 것인데 논리적인 근거는 없다. 
이는 마치 서구의 ‘일곱 색깔 무지개’와 같이 비과학적이다. 다만 종교와 문화적 가치에 의해 규정된 것 뿐이다. 

오방색은 색을 도교(미신)적으로 정형화한 것이다. 
우리그림에서 오방색을 사용한 것은 당연하고 틀림없다. 아니, 모든 나라의 화가들은 오방색을 사용한다.
하지만 오방색에 붙은 방향성에 맞춰 미술작품을 창작한 사례는 없다. 

▲ 오방색을 사용한다는 단청이다. 오방색만을 사용하면 알록달록해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냥 5가지 색을 혼색해서 다양한 색을 만들어 칠했다. 위 사례는 녹색에 흰색을 혼합한 옥색이 중심이다. 오방색은 그냥 모든 색을 사용한다는 말이고, 색조와는 별 관련이 없다.

우리그림의 색조는 ‘맑고 화사함’이다.
모든 색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맑고 화사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맑고 화사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색을 절제하고 조절해야 한다. 이게 곧 표현기법이 된다. 
‘맑고 화사함’은 철학적 가치에서 유추된 색조이다. 
동시에 그런 철학적 삶이나 태도,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조이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고, 인간이 사회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군자(君子)였다.
또한 이런 군자들이 만들고자 했던 이상세계는 ‘민본세상, 태평성대’였다. 
군자를 인격적 완성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너무 어렵고 관념적이다. 
그래서 쉽게 풀어서 이해하고자 했다. 

군자를 신선(神仙)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신선은 권력이나 재물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며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도우는 존재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군자의 경지, 신선의 삶을 한마디로 ‘맑음’으로 규정했다.

철학적 개념인 ‘맑음’은 문자로 ‘맑을 청(淸)’이 된다. 
청빈, 청산, 청렴, 청백리, 청직 따위의 개념은 선비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최고의 가치였다.

▲ 겸재 정선의 수묵 담채화. 은은한 선묘에 엷은 채색을 해서 맑고 담백한 느낌을 준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런 분위기의 작품을 가장 좋아했다.

조선이 추구했던 민본세상, 태평성대의 형상은 무릉도원에서 유래한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세상, 온갖 꽃들이 피고 나비와 새가 노니는 봄날의 절정기는 따뜻하고 밝고 환하다.
이를 색조로 표현한 것이 ‘밝고 화사함’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풀어보자.

첫째, 맑은 색은 깨끗하고 투명하다.
깨끗한 색을 내기 위해서는 가급적 색을 혼합하지 않아야 한다. 
색을 혼합하면 탁하고 지저분해진다. 
또한 투명한 색은 바탕이 비쳐야 한다. 진하면 투명함이 사라진다. 
그래서 물감에 물을 타서 묽게 칠해야 한다. 

이런 맑은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은 담채기법이다.
담채(淡彩)기법은 물감을 물에 녹여 엷게 칠하는 방법이다.  
주로 수묵담채화에서 추구하는 색조이다. 

▲ 단원 김홍도/송하맹호도/수묵담채/18세기.
무서운 호랑이를 그렸지만 적절한 여백과 엷은 채색으로 담백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포악성을 사라지고 총명한 호랑이가 창조되었다.

둘째, 화사한 색은 밝고 유려하다. (유려流麗-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화려하거나 자극적이 않으며 어둡거나 텁텁하지 않고 색의 충돌이 없어야 한다. 
화사한 색을 내기 위해서는 가급적 원색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흰색과 검정을 많이 섞지 않고 많이 사용하지도 않아야 한다. 
궁중채색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색조이자 채색방법이다.

철학적 가치인 ‘맑을 청(淸)’은 눈에 보이는 색인 ‘푸를 청(靑)’으로 유추된다. 
푸를 청(靑)’은 파란색과 녹색의 혼용이다.
궁중채색화는 유독 청록산수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청록산수법은 큰 의미로 채색화를 일컫지만, 파란색과 녹색의 결합인 ‘푸를 청(靑)’과 무관하지는 않다.
그러니까 궁중채색화의 청록기법 또한 조선의 미학적 관점이 깊이 투영되어 있다는 말이다. 

▲ 안중식/도원문진도(桃園問津圖)/164.4*70.4㎝/비단에 채색/1913년/리움미술관.
궁중채색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청록산수기법으로 그렸다. 무릉도원을 그린 것인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화사하다.

이는 단지 미술작품의 색조로 끝나지 않는다. 
옥색(연한 청색)의 장신구나 의복, 청화백자 따위로 확장된다.
‘맑을 청’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담백’이다. 
우리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담백한 맛’을 최고로 여겼다.

담백한 맛은 곧 시원, 깔끔한 맛이나 느낌과 같다. 
사람살이나 사회관계에 있어서도 이런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저 분 성격이 담백해.’  
‘일처리가 시원시원해.’
‘뒤끝이 깔끔해.’

뜨거운 욕탕에 들어가서 ‘시원하다’고 하거나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시원하다’고 표현하는 것, 좋은 풍경을 보고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은 모두 ‘좋고 아름답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맑고 화사함’이 곧 우리민족의 정서이고 우리 미학의 색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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