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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를 생각하며<연재> 고석근의 시시한 세상 (305)
고석근  |  ksk21cc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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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29  00: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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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골방에서
- 박운식

내가 자는 골방에는 볍씨도 있고
고구마 들깨 고추 팥 콩 녹두 등이
방구석에 어지러이 쌓여 있다
어떤 것은 가마니에 독에 있는 것도 있고
조롱박에 넣어서 매달아 놓은 것도 있다
저녁에 눈을 감고 누우면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그들의 꿈꾸는 꿈의 빛깔들도 어른거리고 있다
나는 그런 씨앗들의 거짓 없는 속삭임들이 좋아서
꿈의 빛깔들이 너무 좋아서
씨앗들이 있는 침침한 골방에서
같이 잠도 자고 같이 꿈도 꾸고 하면서
또 다른 만남의 기쁨을 기다리고 있지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지은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를 읽고 있다. 오랫동안 히말라야의 고원지대에서 인류의 이상향,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오던 라다크. 하지만 서구 문명이 들어오며 서서히 망가져 간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숨이 턱 막혔다. ‘그래, 내게도 라다크가 있었어!’

나는 어린 시절을 ‘이상향’에서 보냈다. 20 가구가 되지 않는 작은 마을. 눈만 뜨면 신나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며 나의 이상향이 갑자기 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건강한 구릿빛 얼굴의 마을 어른들이 야만인처럼 보였다.

책가방을 매고 운동화를 신은 뽀얀 얼굴을 한 읍내 아이들을 보며, 보자기를 매고 고무신을 신은 까만 얼굴의 우리들은 아프리카 오지의 원시인 아이들 같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 대구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찌질이들’만 고향에 남았다.

도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수도권에 정착한 나는 고향에 갈 때마다 자부심을 느꼈다. 여전히 새카만 얼굴로 흙과 함께 살아가는 동창들을 만나면 나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고운 손을 내밀었다.

그러다 중년이 되어 시골이 그리워 한 농촌으로 무작정 내려갔다. 아, 농촌은 두 팔을 활짝 벌려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나는 몇 달 동안 스쿠터를 타고 시골길을 누볐다. 밭을 구해 막걸리 병을 들고 가 땀을 흠뻑 흘리며 일을 했다.

90년대라 농촌의 공동체가 살아있었다. 수십 명 정원의 분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시골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놀 때면, 가슴이 벅찼다.

어린 시절 나도 박운식 시인이 골방에서 들었던 곡식들의 속삭임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자는 골방에는 볍씨도 있고/고구마 들깨 고추 팥 콩 녹두 등이/방구석에 어지러이 쌓여 있다/-/저녁에 눈을 감고 누우면/그들의 숨소리가 들리고/그들의 꿈꾸는 꿈의 빛깔들도 어른거리고 있다’

나는 화들짝 깨닫는다. ‘아, 나도 라다크에 살 기회가 있었어!’

무작정 고향을 떠났던 소년 시절.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만일 그때 누가 라다크 얘기를 해주었더라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건 더불어 사는 인간의 따스한 정이라고 말해주었더라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보는 도시의 삶. 항상 도사리며 남을 질시하고 내 것을 챙겨야 하는 도시의 삶.

시골 장터를 돌며 시골 할머니들에게 사기 치던 일당들이 검거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낯선 사람이 음료수를 줄 때 믿었을 것이다. 그분들은 ‘자비’가 몸에 배었으니까.

라다크 사람들은 전체를 보고 부분을 본다. 그 할머니들도 전체를 보고 부분을 본다. 그래서 사람을 믿는다. 당장엔 사기 당할 수 있어도 그게 있어야 인류가 산다는 것을 알기에!

사기꾼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 본다. 그래서 사기를 쳐서라도 눈앞의 이익을 노린다. 그 업보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그의 미래를 덮치리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고석근 / 시인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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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20-07-29 11:09:13
초등학교 시절 형과 함께 외가집 갈때가 그립습니다................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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