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은 철저히 시대와 환경을 반영한다. 
시대는 당대의 철학과 미학이고, 환경은 지리, 기후 따위의 자연적 조건을 의미한다.

미술작품의 핵심요소는 미학, 조형원리, 표현기법이다. 
구체적으로는 철학, 미학, 조형원리, 표현기법, 재생산구조(교육)이다.
이 중에서 표현기법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물감이나 붓과 같은 미술재료이고, 이런 재료는 모두 채색을 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학은 철학에서 나온다. 
당대 사람들의 가치관을 이루는 철학은 가치 있고, 유용하며, 아름다워야 한다.
철학의 관점으로 아름다움을 규정하는 것이 미학이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철학은 소비와 허영을 아름다움으로 규정한다. 성리학에서는 청빈과 절제를 아름다움으로 규정한다. 
반대로, 성리학에서는 소비와 허영은 통제하거나 버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자본주의에서는 청빈과 절제를 무능력, 가식(假飾)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같은 현상과 사물이라도 철학에 따라 아름답기도 하고 더럽기도 한 것이다. 

▲ [주자(주희)의 초상. 성리학은 공자가 체계를 세우고 맹자가 크게 발전시키고 주자가 집대성한다. 태극을 바탕으로 우주원리를 해명하고 인간은 인의예지라는 우주적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예술은 관념적이고 보이지 않은 철학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상으로 외형화한다.
미술은 철학이 만들어 내는 시공간의 아름다움을 압축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그림의 철학은 유학이다. 
구체적으로는 성리학이다. 
우리그림의 미학은 모두 유학과 성리학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성리학의 핵심은 인의예지이며 사회정치적으로는 민본세상, 태평성대이다.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된다.

인의예지는 인간의 우주론적인 본성이다. 
이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수양이 필요하고, 수양의 내용은 욕망의 절제와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헌신이다. 흔히 ‘지조와 절개’라는 말은 모두 수신(修身)에서 나온다.
문인화(文人畵)나 수묵화의 대부분은 수신(修身)이라는 미학을 표현하고 있다.
매화, 국화, 난초, 대나무, 목련, 동백, 수선화, 호랑이, 매, 참새, 개, 소나무, 괴석 따위를 소재로 한 그림들은 수신(修身)에 따른 ‘지조와 절개’라는 미학을 표현하고 있다. 

▲ [이징/대나무와 새/종이에 수묵/89.4*55.1/조선 초기/국립중앙박물관.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를 뜻하고 새(까치)는 내면의 즐거움을 표현한 그림이다.] 

제가(齊家)는 흔히 ‘가정을 다스린다.’라고 알고 있지만,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집안을 가지런하게 한다.’이다.
‘다스린다’라는 의미보다는 ‘평안하다, 바르다, 온전하다’라는 개념과 더 가깝다.
제가(齊家)의 핵심적 내용은 효(孝)이다. 
효는 인류애를 뜻하는 인(仁)의 구체적 실천이면서, 공동체의 최소단위인 가정의 바탕이다.
효를 표현한 회화작품은 많지 않지만 교육이나 출판용 그림으로 창작되었다. 

▲ [효제문자도. 제가의 바탕은 효이다. 주로 교육용 병풍으로 창작했다.]

치국(治國)은 ‘출세(出世)’라는 내용으로 표현한다.
출세는 수신을 한 선비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위이다. 크게는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는 방법이 있고, 작게는 향촌과 같은 지역 사회에서 관청과 협조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돌보는 방식도 있다. 
연꽃, 복어, 게, 갈대 따위를 소재로 한 그림이 ‘출세’라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 [연지유압도/심사정/비단에 채색/142.3*72.5/조선후기/리움미술관. 제목처럼 연꽃에 핀 못에서 원앙이 노니는 그림이다. 연꽃은 출세의 상징이다. 올바른 정치를 통해 화목한 세상을 만든다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평천하(平天下)는 태평성대, 민본세상과 같은 말이다.
궁궐을 장식했던 그림의 대부분은 평천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십장생도, 오봉도, 책가도, 모란도, 수복도, 평생도, 백동자도, 요지연도, 성시도 따위는 수신제가치국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이룰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 [십장생도/심규섭/디지털화/2020.
십장생도는 태평성대, 민본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조선시대는 선비나 정치인들의 자발적 청빈과 청렴, 희생과 헌신을 통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화려한 채색을 한 것은 왕이나 선비가 아니라 백성들이 누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풍류’를 표현한 그림도 많다.
풍류는 ‘수신’이나 ‘지조와 절개’에 대한 보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탁족, 악기연주, 노래, 춤, 뱃놀이, 술, 차(茶) 따위를 소재로 산수화와 결합해 풍류를 표현한다. 
산수화는 이상세계를 표현했지만 지극히 청빈과 유유자적을 추구하는 선비 취향이다. 

▲ [이경윤/고사탁족도/비단에 담채/31.1*24.8/고려대학교 박물관.
탁족그림은 유유자적한 풍류를 표현하고 있다.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선비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 풍류이다.]

우리그림의 미학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맑을 청(淸)이다. 
청(淸)을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아래와 같다.

[맑다 2. 깨끗하다 3. 탐욕(貪慾)이 없다 4. 빛이 선명하다(鮮明--) 5. 사념이 없다 6. 분명하다(分明--) 7. 한가하다(閑暇--) 8. 고요하다(조용하고 잠잠하다) 9. 끝장을 내다 10. 거스르다 11. 차갑다.]

이러한 청(淸)은 여러 개념과 결합하여 청빈, 청렴, 청백리, 청명, 청직, 청산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만든다. 
담백, 소쇄, 정갈, 단정이라는 말도 모두 청(淸)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림에 빈 공간을 만드는 여백, 사물을 세밀하게 그리지 않고 간략하게 표현하는 선묘, 얇게 색칠하는 담채기법은 청(淸)이라는 미학을 미술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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