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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그려진 책거리도<연재> 심규섭의 아름다운 우리그림 (194)
심규섭  |  smyna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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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1  21: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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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거리 8폭 병풍/175*457/견본채색/조선후기/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거리 10폭 병풍] 그림이다.
[책거리 그림]은 책과 각종 사물들을 그린 그림이다. 
[책거리 그림]의 원류는 [책가도]이다. 
[책가도]에서 책장을 해체하고 대신 백성들의 욕망이 투영된 각종 사물들을 결합했다. 
[책가도]가 흘러내려 대중그림(민화)이 된 것이다. 

만약 도화서에서 창작한 작품이라면 틀림없이 장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궁중회화가 아니다. 
개인화가나 그림공방에서 판매 목적으로 창작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나 미국으로 팔려나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림의 수준은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이다. 
원근투시법을 사용했지만 일관성이 없고 사물의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색조의 기품도 떨어진다.
아무튼 조선시대에서 상징이 붙은 거의 모든 사물을 10폭의 그림 속에 그려 넣었다. 이렇게 비빔밥처럼 수많은 요소들을 뒤섞는 것은 대중그림의 전형적이다.  
  
대부분의 대중그림(민화)은 창작자나 화가의 서명이 없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이지만 추정컨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창작된 것이다. 
이런 추정을 하는 이유는 작품의 형식이나 기법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시계의 존재이다.
그림 속의 시계는 수입품이다. 
이런 시계가 그림 속에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이다. 
산호걸이 시계의 경우는 청나라산일 가능성이 높다. 옥이나 도자기로 시계 주변을 장식했고, 그 안의 꽃문양이나 매듭장식도 지극히 동양적이다. 
반면, ‘A-WEEK’라는 글자가 새겨진 쾌종 시계는 미국산일 가능성도 있다.

***

   
▲ 쾌종시계에는 로마자로 시간이 정확히 표시되어 있고 시침과 분침도 정교하다. 아주 공을 들여 그렸다는 반증이다.

시간은 세상을 질서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시헌력[時憲曆], 육십갑자, 12달, 12시 따위는 모두 날짜와 시간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시간은 국가나 전 세계가 개입하여 만들고 정한다. 흔히 ‘달력’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달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물리학과 정교한 수학이 필요하다. 

조선 초기에는 독자적인 달력을 만들어 쓰다가 효종 때부터 중국에서 가져다 사용했다.
사람들은 이런 달력에 따라 농사를 짓고 관혼상제를 행했으며 밥을 먹고 약속과 만남이라는 사회생활을 영위했다. 
삶이 녹아 있는 시간이 모여 역사가 만들어지고, 좋은 시간의 흔적들은 전통이 되었다.  

당시 그림 속의 시계는 당시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명품이었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것이다. 
이런 시계가 그림 속에 들어가 있다는 말은, 그림이라는 권위-철학의 주술성-를 빌어 정당성을 얻고자 한 것이다. 
동시에 그림을 통해서라도 명품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이 시기 조선은 망해가고 있었다.
외세의 노골적인 침략과 세도정치로 왕권은 힘을 잃고 민심의 이반은 극심했다.
상업으로 부자가 된 중인들은 대놓고 선비들을 조롱했다. 돈으로 족보를 사고 얼뜨기 양반행세를 하며 백성들의 욕망에 불을 지르고 선동했다.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는 역사가 아니라 욕망의 상징이 되었다.
현재도 수백, 수천만 원에 이르는 고급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시계가 상징하는 역사와 가치는 모두 욕망의 그릇에 비벼져 비릿한 냄새를 풍긴다.  

인간의 욕망을 없애지 못하지만 그 욕망이 전면적으로 발현되면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어버린다. 결국 전쟁과 다툼이 일어나고 공동체는 박살난다. 
극소수의 권력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백성들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 

인류사에 이런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인 양심(인의예지)으로 인간의 욕망(칠정)을 조절, 절제하고자 했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어렵다고 외면한 성리학을 붙들고 500여 년을 버틴 것이다.  

***

그럼에도 이 [책거리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가 있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수많은 사물이 뒤엉켜 있지만, 그 중심에는 인문학을 뜻하는 책과 문방구가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절제와 희생이라는 인문학적 가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서구식 제도와 천박한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고 세계의 모범국가가 될 수 있는 바탕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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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20-06-22 10:33:26
인류사에 이런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인 양심(인의예지)으로 인간의 욕망(칠정)을 조절, 절제하고자 했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어렵다고 외면한 성리학을 붙들고 500여 년을 버틴 것이다.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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