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4.15총선이 끝난 지 사나흘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 그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한마디로 놀라운 민심의 결과가 던진 충격 때문이겠지요. 이번 4.15총선의 성적표는, 여당인 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합산 의석만 180석이며. 우호적인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등이 합류할 경우 범여권 의석은 190석에 달합니다. ‘거대 여당’, ‘공룡 여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반면 야당인 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을 더해 103석에 그쳤으며, 국민의당 3석에 보수 무소속 4석을 더해야 110석입니다. 이외에 군소 정당들, 특히 진보적인 정당들은 명함을 내밀기도 민망할 따름입니다.

이번 선거는 사실상 양당 체제로 치러졌기에 어느 쪽이든 승자가 단독으로 과반이 가능했지만 그래도 민주당이 5분의 3에 이르는 180석을 석권할 것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상투적으로 여당의 완승이자 야당의 완패이지만 그렇게 표현하기에는 밋밋합니다. 여당의 ‘역대급 대승’이자 야당의 ‘궤멸적 참패’라 표현하는 게 더 실감이 날 정도입니다. 그럼 이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유권자는 어떤 메시지를 던졌을까요?

선거에서는 당연히 정당의 대국민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이번 총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한복판에서 치러졌기에 이에 책임이 있는 민주당은 ‘국난 극복’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반면에 통합당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안보 불안과 경제 실정을 겨냥한 중간평가 격인 ‘정권 심판’(뒤에 ‘정권 견제’)을 내걸었습니다.

정부 여당이 비교적 코로나19 사태에 선방하고 팬데믹 현상이 되면서 각 나라에서 문재인 정부를 칭송하기 시작하자 표심이 민주당 쪽으로 서서히 쏠렸으며, 아울러 모든 이슈를 코로나19가 블랙홀처럼 흡수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보통 총선에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는 여당의 무덤입니다. 그런데 이번 총선은 ‘정권 심판’이 아니라 ‘야당 심판’이 됐습니다. ‘야당 심판론’으로 인해 야당이 참패를 했으니 이는 여당에서 우월점을 찾는 것보다 야당에서 문제점을 찾는 게 도리일 것입니다.

사실 이번 총선 이전부터 ‘정부 심판론’보다 ‘보수야당 심판론’ 분위기가 더 돌았습니다. 한때 여론조사에서는 후자가 훨씬 더 높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상한 일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3년차에 들어섰으니 역대 총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부 심판론’이 고개를 드는 것은 당연한데, 이와 반대로 ‘보수야당 심판론’이 등장했다는 것은 기괴한 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역대 어느 총선에서도 ‘야당 심판론’이 나온 적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왜 그랬을까요?

선거에서 이긴 이유와 패배한 이유를 찾자면 수십 가지, 수백 가지가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 거두절미하고 야당의 패배는 오직 하나 ‘변화와 쇄신’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선거는 표면적으로는 코로나19 사태의 분위기였지만 내용적으로는 ‘촛불 정국’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촛불 민심의 준엄한 명령은 ‘적폐청산’이었습니다. ‘박근혜 탄핵’의 본류인 통합당도 그 대상에서 당연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통합당은 탄핵 이후 이번 선거에 이르기까지 손에 잡힐만하거나 국민이 인식할만한 아무런 변화와 쇄신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표를 구걸하니, 유권자들이 “정부 여당이 탐탁지 않지만 그래도 통합당만은 못 찍겠다”고 한 것입니다.

전두환 정권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이었다면, 통합당은 이번 선거 전에 ‘사라졌어야 할 정당’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니 표심으로 사실상 ‘퇴출 명령’,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은 당연합니다. 통합당은 실제로 공중분해가 되고 새로운 보수 세력과 보수 정당이 나서 대체해야 합니다. 통합당이 여기서 더 무언가를 하겠다고 해체하지 않고 버티겠다며 몸부림친다면 생명 연장이 아니라 생명 재촉을 당할 것입니다.

여당인 민주당은 압승에도 불구하고 지난날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표정관리를 하면서 저마다 ‘표심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책임감’의 본질은 아직 지체되고 있는 촛불혁명의 과제인 ‘적폐청산’이자 ‘개혁완수’인데, 이는 입법부인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여러 가지 개혁입법을 통해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의원 5분의 3인 180석은 개헌을 제외한 입법 활동에서 대부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의원 수로 무작정 밀어붙이면 안 되겠지만 꼭 해야 할 개혁입법은 전광석화처럼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은 남북관계입니다. 그 핵심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을 내다보는 입법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4.27판문점선언을 국회에서 비준 받고자 했으며, 또한 민주당은 4.27판문점선언의 분위기를 업고 국회 남북특별위원회 구성을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당시 남북특위는 입법권도 갖고 남북경제협력 등 예산에 대해서도 여러 부처의 논의를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위상을 갖는 ‘슈퍼 특위’의 개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두 야당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준 기회입니다.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민족화해를 추구해온 정부와 여당이기에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압도적인 표심에 맞춰, 기존에 남북이 합의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그리고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을 비롯해 향후 평화문제와 통일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평화 입법’과 ‘통일 입법’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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