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 특히 김일성 북한 주석에 대해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의미 있는 책이 나왔다. 손원태 회고록 『내가 만난 김성주-김일성』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드는 첫 느낌은 1996년에 완성된 귀한 원고가 ‘왜 이제야 책으로 나왔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김 주석과 손정도 가문과의 범상치 않은 관계

저자가 ‘손원태’ 하면 누구인가? 하겠지만, ‘손정도 목사’ 하면 김 주석과 항일무장투쟁사에 대해 다소 관심 있는 독자라면 금세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손원태는 손정도 목사의 차남이다. 저자는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2대 의장(국회의장)을 지낸 항일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둘째 아들이며,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 제독의 친동생이다.

여기서 잠깐 김 주석과 손 씨 가문과의 범상치 않은 관계를 일별해 보자. 일제시대 손정도 목사는 젊은 김일성(김성주)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손 목사는 만주 일대의 공산당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던 김성주가 조선인 동지들과 함께 중국 관원에게 체포되어 투옥되었을 때 그를 구해주었다. 손 목사는 중국 관헌에 뇌물을 주어 그를 빼내주었고 손 목사의 아내는 그를 위하여 옥바라지도 해주었다. 문자 그대로 ‘생명의 은인’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 주석에겐 생명의 은인으로 중국인 장울화와 러시아인 노비첸코도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외국인이다. 같은 민족으로는 손 목사가 최초다. 김 주석은 손 목사에 대해 ‘결초보은’이란 표현을 썼다. 그러기에 자신을 구해준 손 목사를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김 주석은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 한 장(章)에 이 사실을 기록하여 손 목사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이처럼 손 목사는 김 주석의 생명의 은인인데, 손 목사의 장남이자 저자의 친형인 손원일 장군은 6.25 한국전쟁 당시 남측 해군을 총지휘하며 북측 김일성 인민군 총사령관의 군대와 싸운 원수지간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손원태가 있었다. ‘김일성-손원태’는 어린 시절 ‘의형제’이자 친구였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듯 “천운의 혜택으로 맺어진 김일성 주석과의 인연 덕분에 비극으로 점철된 우리 민족 현대사에 있어 특별한 증언자가 된 셈”이다.

‘김일성-손원태’, 음식을 통한 해후

이 책은 저자가 어린 시절 중국 길림에서 김성주를 만나고 겪었던 에피소드, ‘김일성 장군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증언’, 그리고 1991년 첫 방북해 김 주석과 61년 만에 해후하게 된 내용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저자의 자서전이니 1차 자료적 성격도 작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 손원태 회고록 『내가 만난 김성주-김일성』. 352쪽, 도서출판 동연, 2020 [사진제공-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

저자는 1914년생이고 김일성은 1912년생이니 두 살 차이다. 저자가 중국 길림에서 소년 김성주와 함께 지낸 것은 2년 남짓. 중학교 시절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인생관과 세계관이 대개 이때 형성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소년 김성주에 대한 몇 가지 회고에서 그 편린들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소년시절 만난 김성주에 대해 “형(김일성)이 웃을 때면, 볼에 움푹 패던 보조개와 살짝 드러나는 덧니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보조개와 덧니’. 젊은 시절 김 주석의 사진을 보면 충분히 연상되는 장면이다.

어렸을 때 기억에서 ‘무서운 일’이나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영화 <기생충>에 나온 짜파구리가 인상적이듯 어린 시절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고리도 음식이다.

저자는 길림의 거리에서 김성주와 함께 먹던 중국음식 ‘장즈꿔즈’(밀가루를 반죽해 연하게 부풀린 다음에 꽈배기처럼 기름에 튀겨 달달한 콩국과 함께 먹는 전통적인 중국음식)를 평생 간직하고 있었고, 김 주석은 ‘삥땅글라’(산열매인 찔광이에 사탕물을 올린 것으로 가느다란 나무막대에 꿰서 파는 음식)를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김 주석은 저자를 평양에서 만나자 길림시절 손 목사 댁에 찾아갔을 때 저자의 어머니가 해준 쫀드기떡(북산공원에서 뜯어온 쫀드기풀로 만든 떡)과 토끼를 잡아 만든 두부장 그리고 까나리 반찬 등을 기억해 낸다.

후에 김 주석이 이 음식들을 맛보고 다시 찾았음은 당연하다. 김 주석의 미식(美食)과 요리평은 정평이 나있지 않은가. 김 주석이 외부 사람을 만나 식사를 할 때 언감자 국수, 냉면 먹는 법 등을 소상히 설명해 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젊은 김일성의 노선, 항일무장투쟁

인생관과 세계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청소년시절의 김성주가 공산주의 운동에 최초로 발을 디딘 과정이 흥미롭다. 저자는 김성주가 육문중학교와 ‘조선인길림소년회’에서 활동하는 과정, 손 목사와의 관계 등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으며, 김 주석이 당시 독립운동의 노선으로 무장투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그리고 이후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인상적인 장면은 1927년 길림성 밖에 있는 대동공창에서 열린 도산 안창호의 시국대강연이다. 이 장면은 북측에서 나온 여러 자료와 소설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산은 이 강연에서 나라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분산적인 무장투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실력을 쌓자며 이른바 ‘실력배양론’을 역설했는데, 강연 후 어떤 중학생이 연단으로 나가 도산의 탁자 위에 종이쪽지 같은 것을 놓고 내려갔던 일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쪽지는 김성주가 도산에게 제출한 의견서였다.

그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후에 김 주석은 ‘게릴라전을 중심으로 한 무장투쟁’을 택했다. 따라서 당시 그 의견서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소 아쉬운 장면도 없지 않다. ‘김일성 장군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증언’과의 관계이다. 이제는 우스갯소리가 됐지만 김일성은 남측에서 ‘가짜 김일성’론에 시달려야 했다. 저자는 말하자면 ‘김성주=김일성’의 산증인인 셈이다. 저자는 성장하면서 김일성의 투쟁을 접해 왔다. 상해에서 대학시절, 상해 「대공보」 한 면에 걸쳐 ‘김일성과 항일투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저자는 그 기사에 실린 만주에서 벌이는 김일성 빨치산의 항일운동을 보고는 그 김일성이 그 김성주임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성주 형이 기어코 게릴라전을 시작했구나! 독립군이 쇠잔해가는 걸 그리도 가슴 아파하시던 아버님이 이 소식을 들으시면 얼마나 반가워하시랴!” 하고 생각한다. 저자는 ‘김성주=김일성’을 확인하고, 나아가 김 주석의 항일무장투쟁 소식으로 ‘손정도-김일성’을 연결시킨 것이다. 이후 저자가 김 주석의 보천보 전투 소식도 들었음은 당연하다.

‘김성주=김일성’임을 알고 있는 드문 증언자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후에 미국에 살면서 ‘가짜 김일성’론과도 분투했으나, 그조차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 책을 통해서나마 다소 밝혀지는 아쉬움이 있다.

61년 만의 해후, ‘변함없는 정의, 깊어진 우정’

저자는 1991년 첫 방북해 70여년 만에 평양땅을 다시 밟고 61년 만에 김 주석과 해후한 소감을 “주석과 나의 인연은 천둥벌거숭이 소년 시절로부터 60년이라는 긴 세월을 뛰어넘어 팔십 고령에야 다시 이어졌지만 그 옛날의 정의는 변함이 없었고 우정은 더욱더 깊어지게 되었다. 김 주석은 틀림없이 길림 시절의 다정다감했던 소년 김성주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저자가 두 번째 평양에 갔을 때 김 주석은 저자에게 “김정일 지도자가 기본문제를 다 맡아주고 자신은 대외사업을 비롯한 몇 가지 일만을 보기 때문에 여가가 좀 있다”면서 평양에 거주하기를 권했다. 어린 시절 만났던 두 사람의 관계가 만년에 이르러 어떻게 승화되었는지 가늠이 가는 대목이다. 김 주석은 1994년 타계했고 손원태는 2004년 별세해 2005년 1월 북측 평양 애국열사능에 안장됐다.

이 책은 소박하게 말하면 ‘김일성-손원태’ 사이의 60년 넘은 우정사(友情史)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소년 김일성의 궤적과 특히 항일무장투쟁으로의 길, 그리고 북측이 주장하는 김 주석의 개인사를 확인해보는 우리 민족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이 책을 다 봤다면 앞에서도 나왔지만 김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손정도 목사’ 장과 비교해 재음미해보는 것도 흥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모두(冒頭)에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드는 첫 느낌은 ‘왜 이제야 이 책이 나왔는가’ 하는 의구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곧이어 ‘그나마 이 책이 지금이라도 나오니 다행이다’는 안도감이 든다. 지난한 세월과 어려운 출판 환경에서 그래도 이 책이 나오게 된 데는 이 책을 엮은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과 감수한 학술원장 최재영 재미 목사의 헌신 덕분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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