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김여정 북측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남 담화에 이어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되자 남측 사회가 한순간 들썩거렸습니다. 한마디로 담화는 거칠게 남측을 비난했는데, 친서는 부드럽게 남측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상반된 내용이 하루 차이로 나온 것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어느 쪽이 북측의 진정한 메시지일까요?

김여정 제1부부장은 3일 밤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는 제목의 담화를 발표, 전날 있은 인민군 전선 장거리포병부대의 ‘화력전투훈련’이 자위적 차원임을 강조하면서 이에 강한 우려를 표명한 청와대에 거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담화는 청와대의 유감 표시에 대해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비난하고 또한 “동족보다 동맹을 더 중히 하며 붙어살았으니 닮아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라고 조롱까지 하면서도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표명이 아닌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자제하면서 여지를 남긴 참이었습니다.

그 여지를 타고 4일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고, 친서에는 코로나19 사태 및 한반도 정세 등 두 가지가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남측 국민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으며, 또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해 진솔한 소회와 입장도 밝혔다고 합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다음날인 5일 답신 형식의 친서를 북측에 발송했습니다.

몇 차례의 남북 대화에서 바삐 움직이며 환한 미소로 남측을 대했던 김여정 부부장이 돌연 대남 비난의 선봉에 나섰다는 점에서 경색국면의 남북관계가 더욱 얼어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하루 지나 지난해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노딜’ 이후 남측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김 위원장으로부터 따뜻한 친서가 왔으니 헷갈릴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하루 사이에 일어난 북측의 상반된 대남 메시지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 북측이 “냉탕과 온탕을 오락가락 했다”, “화전 양면전술을 구사했다”느니, “병주고 약주는 격”, “어르고 뺨치는 식”이라고까지 풀이했습니다. 담화와 친서의 겉만 보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측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에 의거한 정면돌파전을 천명한 것은 기본적으로 대미관계의 장기전을 뜻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버티고 있을 미국을 향해 기약 없이 기다릴 북한이 아닙니다. 북한이 대미관계에서 장기전을 선언한 순간 이미 대남관계에서 물꼬를 트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북한은 대남 및 대미라는 두 개의 문을 동시에 장기적으로 닫아 놓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침 남측이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북측은 이를 기화로 위로와 함께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아마도 정상간 친서를 보내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며칠 전인 2일 북측의 전투훈련에 대해 남측이 중단 촉구를 하자 3일 대남 비난 담화를 발표했던 것입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담화를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그래서 일관된 북한의 셈법은 ‘안보는 안보고 대화는 대화’라는 것입니다. 안보를 해치면서까지 대화하지도 않겠지만 대화중에도 안보 문제가 나서면 즉각 대처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북한은 체제 문제나 ‘최고존엄’에 대한 비난에는 상대가 누구든, 시차에 관계없이 즉각적인 반응과 보복을 해왔습니다.

최근에도 북한은 7일, 유엔안보리의 5일 긴급회의 직후 유럽 5개국이 앞에서도 언급한 지난 2일 북한의 ‘화력전투훈련’을 비난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한데 대해 “방사포병의 통상적인 훈련마저도 규탄의 대상”이라면 “우리 국가는 어떻게 지키라는 것인가”라고 항의하면서 군사적 자위권을 근거로 ‘황당무계한 주장’이라고 반발했던 것입니다. 안보 문제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으며 그냥 지나치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측의 담화와 친서를 두고 헷갈릴 게 없습니다. 둘 다 북측의 진정한 메시지입니다. 남북은 수시로 침묵할 수도 있고 또 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 중요한 건 당연히 친서입니다. 대화와 화해의 메시지입니다. 남북 정상 간의 친서 교환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변화의 조짐이 일어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부터 출구가 보이는 순간 남북이 대화 재개와 관계회복이라는 새로운 입구로 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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