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전국이, 아니 전 세계가 비상이다. 코로나19가 2020년 상반기를 점령했다. 덩달아 국내는 신천지로 인해 대구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전국적으로 신천지 색출(!)작업이 한창이다. 그들이 기존 종교계에서 봤을 때 영락없는 이단이라고는 하나, 단지 신천지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격렬한 증오와 박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혐오는 순식간에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지난해부터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던 남북교류협력사업도 난관에 부딪쳤다. 북측 역시 코로나19로 비상이 걸렸으니, 모든 것이 중단된 것이다. 2월 예정되었던 중국에서의 만남도, 그와 관련한 협력사업도 일단 정지 상태다.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니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지난해부터 준비해왔던 노력들이 생각나 아쉬울 따름이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부족했던 것은 보완하고, 달라진 상황에 맞는 사업 형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북측이 처한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교류협력사업은 당연히 상대방이 있는 사업이다. 우리의 목적대로만, 우리의 의도대로만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상대방이 원하는, 상대방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업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그들의 뜻대로만 진행하는 것도 부적절하지만, 우리 고집만을 피울 수도 없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한 중국은 어느 정도 소강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물론 현재 정보 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악의 상황은 지난 것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우리 국민들을 따로 격리하고 경계하고 있다니, 애매한 감정이 든다. 암튼 중국이나 우리나 어서 빨리 안정 국면에 접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보름 전인 1월 초 중국 연길에 다녀왔다. 당시는 우한에서 폐렴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였다. 당연히 연길은 평온했다. 다만 매서운 추위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을 뿐.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조선족 관계자에게 ‘연길은 문제없냐’고 물었을 때도, ‘아무 문제없다’고 그가 답했을 때에도, 보름 후의 사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아슬아슬하게 다녀온 셈인가.

그때 그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다. 일종의 경제특구라 해야 할까. 다양한 업체들이 한 건물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고, 그러한 건물이 여럿 모여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4층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네이버’ 사무실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불쑥 ‘6층에 올라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무엇이 있느냐 물었더니, 일단 올라가 보자며 나를 이끌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우선 눈에 뜨인 것은 복도 양옆에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그림들이었다. 그리고 한 눈에 그것이 북측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가움과 신기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왜 여기에 북측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걸까.

“여기 6층 사무실에서 북측이 미술작품을 판매합니다. 주문 제작 형식인데, 원하는 그림의 내용을 설명해주면 북측이 적정가를 제시하고, 거래가 성사되면 북측 미술가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판매합니다. 가끔 중국인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저에게 제시해 거래를 성사시켜 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다면, 그런 거래는 필요 없지요. 저도 같은 민족으로서 기분이 영 나빠요.”

국제사회의 전방위적인 제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의 상황에서 이러한 미술품 판매가 과연 어느 정도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우선 먼저 든 생각은 ‘이것 역시 제재에 걸리는 위법 사항일까’하는 걱정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나의 이 글 역시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아닌가.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어, 반가움은 곧 걱정으로 바뀌어갔다. 착잡한 생각으로 그곳을 떠났다.

▲ 신창섭,, 『북중 변경 르포, 1300』, 책밭, 2016. 4.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난 두 보수 정권 시기, 남북관계는 누구나 기억하다시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북측 역시 현명한 대처를 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우리 정부의 강경한 태도가 제일 큰 문제였다. 그리고 5·24조치에 이어, 개성공단 폐쇄라는 최악의 사태마저 초래했다. 역사가 두고두고 기억할 참사였다.

때문에 남북 간 직접 교류협력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고,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해 온 주체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다’고 해서 마냥 ‘할 수 없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중국 동북3성이었다. 연길을 비롯해 단둥, 심양 등은 멈춰진 남북교류를 이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단둥에 주목하고 있다.

랴오닝성 단둥은 중국 전체로 볼 때는 변방에 불과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북중 국경의 관점에서 보면 압록강 하류에서부터 백두산을 거쳐 두만강으로 가는 출발점”이다. 신의주와 압록강을 두고 마주보고 있는 “북한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것이다. 그 중요성은 중국 정부도 이미 오래 전부터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단둥은 해마다 발전을 거듭해왔다.

“나의 발걸음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탐사하는 대장정에 나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북한과 중국 간 국경은 강으로 형성되어 있다. 1,300여 km의 강으로 형성된 국경은 이례적이다. 백두산을 정점으로 서해로 흘러드는 강이 압록강이고 동해로 나가는 강이 두만강이다. 압록강이 두만강보다 더 길다. 또한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중국 땅은 랴오닝성과 지린성이다.”

저자는 북중 접경지역을 탐사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남북교류협력의 미래, 통일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당시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를 여러 차례 비판한다. 탁상공론으로 뜬 구름 잡는 이야기들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동북 3성 지역, 특히 단둥의 가치를 인식하고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엄중한 국제정세로 인해 다소 위축된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단둥은 한족, 조선족, 북측, 남측이 어울려 삶을 영위하고 있는 역동적인 지역이다. 북측 식당에서 남측 사람을 보는 것이나, 남측의 식당에서 북측 사람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여기에선 이미 신기한 풍경이 아니다. 이는 연길도 마찬가지이다. 경계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찾을 수 없다. 그저 치열하게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남북교류협력사업이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그동안 참 많이 연길을 찾았다. 단둥과 심양, 대련도 나에겐 더 이상 먼 곳이 아니다. 오히려 연길에 가면 이상한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중국어라고는 그저 ‘감사합니다’ 밖에 할 줄 모르는 녀석이지만, 두렵다기보다 친숙함이 먼저 든다. 오늘도 치열하게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역동성, 간절함 그리고 얼핏 얼핏 나타나는 동포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차츰 사회적 불안으로 부상할 때, 어느 언론에서는 대림동을 탐방하고 그들의 비위생적 모습을 르포라는 형식으로 고발(!)한 바 있다. 어처구니없는 혐오의 발현이었다. 정작 대림동에서는 확진자가 1명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단지 조선족 동포들이 밀집해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바이러스처럼 취급했다. 그 언론사가 사과를 했다는 소식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사회의 역사를 따라가면 힘없고 가난했던 근대사가 자연스레 함께 한다. 자발적으로 국경을 넘어 척박한 중국 땅에 정착한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그야말로 살기 위해 국경을 넘었던 이들의 후손들이 이제 중국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며, 이제는 남북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도 든든히 해내고 있다.

아울러 우리 사회는 이미 예전부터 중국 조선족 동포를 빼고서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사회의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늘 2등 국민이라는 모멸감과 차별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이제 무엇을 나누며 무엇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책은 저자의 북중 접경지역 답사기이자, 그가 생각하는 통일의 미래를 우리와 함께 고민하고자 하는 제안서이기도 하다. 아울러 실향민이었던 부친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더 엄혹했던 시기(책은 2016년 발간되었다), 정부의 ‘통일 대박론’을 비판하며, 진정한 통일의 대박을 위해 이제 동북 3성에 주목하자고 했던 그의 용기와 혜안이 잘 담겨 있는 책이다. 물론 그의 통일론을 모두 동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다양한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마음은 백 번 이해하고 동의한다.

어서 빨리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연길국제공항에 내렸을 때, 반가운 그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북측의 벗들과도 하루 빨리 반갑게 만나기를 바란다.

“부장 선생, 우선 식사부터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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