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민청련 이야기』의 서평을 써 달라는 의뢰를 민청련 선배들로부터 받고, 별생각 없이 그러마고 했다. 그런데 막상 서평을 쓰자 하니 현대사학자로서 객관적으로 민청련을 평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민청련이 존속했던 10년에서 2년 반이 조금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만큼은 민청련 활동이 내 삶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청년학교를 만들고 한창 활동을 하다가 재충전과 자료 수집을 위해 잠깐 미국에 갔다가 주저앉아 공부를 하게 된 것이 10년, 그동안에도 나의 정체성은 민청련 활동가였다. 민청련이 한청협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외로운 해외 생활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다.

1999년 3월 초 마침내 귀국하여 민청련 선배에게 연락하니, 일요일날 모두 모이니 나오라는 소리에 천도교 수운회관으로 나가 보았다. 어떤 모임인지도 모르고 나가 보았더니, 단상에는 한청협 해소식이라고 써 있었다. 그때의 허망함이란!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겠지만,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은 질풍노도의 시대였던 1980년대에 가장 앞장서 치열하게 싸운 단체였다.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를 읽으며 여러 번 “맞아 맞아 그랬었지”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1980년대에 많이 부르던 민중가요 <애국의 길>의 “전설처럼 우리를 이야기하리라”라는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맞다. 민청련의 두꺼비 정신. 산란기의 두꺼비는 뱀을 만나면 도망가지 않고 싸움을 건다. 두꺼비가 어찌 뱀을 이기겠는가? 두꺼비는 뱀에게 잡아먹히지만, 두꺼비는 그냥 먹히는 것이 아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독을 뿜고 뱀의 몸 안에 알을 깐다. 뱀은 그 독에 중독되어 죽어 가고, 뱀의 몸 안에서 부화한 수십, 수백 마리의 새끼 두꺼비가 뱀의 몸을 파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광주에서의 참담한 패배 이후, 겁먹고 흩어졌던 청년들은 이렇게 전두환 군사독재에 다시 맞서기 시작했다. 지금도 대중 강연 가면 자랑스럽게 민청련 두꺼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수백 번을 이야기했지만 때로 이야기하다가 내가 울컥하기도 한다. 그것은 전설이었다. 전설, 그러나 빛바랜 전설...

여러 명이 오랫동안 준비한 책이지만, 책이 하필이면 참 민감한 시기에 나오게 되었다. 민청련 활동을 했던 회원들이야 우리가 치열하게 싸웠던 그 시절에 자부심을 느끼고 흘러간 우리의 청춘을 그리워할 테지만,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는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편집진과 집필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가 본격적으로 민청련 활동을 시작한 것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인 1987년 1월이지만, 1988년 중반부터는 교육위원장을 맡아 신입회원들에게 ‘민청련사’를 강의한 바 있다. 민청련 활동을 뒤늦게 시작했지만, 어이어이 하다 보니 민청련사 강의를 맡게 된 것이다.

이범영, 유기홍 두 선배로부터 집중적으로 과외 수업을 받고, 내 나름대로 열심히 정리하여 민청련사를 강의했다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내가 모르는 일들도 참 많았다. 아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석구석에서 참으로 열심히 싸웠었구나. 어디 민청련뿐이었으랴.

▲ 권형택,김성환,임경석 저,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 푸른역사, 2019.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는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민청련의 탄생’으로, 엄혹했던 시절 누가 먼저 감옥에 갈 것인가를 정해야 했던 공개 반합법단체를 구성하던 이야기이다.
2장 ‘초창기의 조직과 투쟁’은 쉽지 않았던 사무실 확보에서부터 공개 정치투쟁의 깃발을 든 이야기이고, 3장 ‘민주화운동의 선봉’은 청년운동 단체로서 1980년대 중반 치열하게 싸웠던 과정을 그리고 있다.
4장 ‘민청련 탄압사건’은 그야말로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는 이야기로, 전두환 정권에 의해 김근태 의장과 민청련과 청년 학생들이 당한 엄청난 시련을 서술했다.
5장 ‘시련을 이겨내고 6월항쟁으로’는 밖으로는 정권의 탄압, 안으로는 전체 변혁운동의 전망과 그 속에서 청년운동과 민청련의 위상에 대해 회원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가, 그리고 박종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어떻게 6월항쟁까지 치달려 갔는가를 그리고 있다.
6장 ‘대통령선거 국면의 민청련’은 우리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시기를 그리고 있다. 이 패배의 책임에서 민청련도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7장 ‘청년 대중운동의 기수’는 제한된 민주화 이후 새로운 합법 공간에서 어떻게 청년 대중운동을 펼쳐 갔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필진들은 <민주화의 길>이나 <민중신문>이나 각종 성명서 같은 공식 기록이 전해 주지 않는 역사의 이면을 생생히 복원해 주었다. 사실 당시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시기였다. 공식적인 문헌 이외에 기록을 남기면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필진들은 주요 활동가들을 찾아다니며 장시간에 걸쳐 많은 양의 구술을 받아 이를 정리했다. 30년 전의 일이고, 주요 활동가들이 대개 60대이지만, 기억에 의존하다 보니 빠진 것도 많고 착오도 있을 것이고, 논쟁의 한쪽 당사자 입장에서 보기에 정리된 결과에 조금은 불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진들의 엄청난 노고에 대해서는 깊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다시 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집필진은 “민청련사를 크게 시대 구분한다면, 1983년 창립총회에서부터 1988년 제10차 총회까지의 기간을 1기, 1988년 9월 제11차 총회에서부터 해소를 결의한 1992년 11월 제15차 총회까지의 기간을 2기라 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데, 이 책은 1기만을 다루고 2기는 에필로그에서 간단히 다루고 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2권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2기의 역사도 이 책에서 같이 다루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민청련 가족 이야기가 상당히 나오기는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필진이 모두 남성으로 구성된 탓인지, 이 책에 민청련의 주요 활동가인 동시에 ‘형수’ 또는 누구누구의 아내로 나오는 분들의 치열한 삶과 고민이 제대로 녹아 있지 못한 느낌이다.

우리의 ‘형수’들은 대부분 각 대학에서 가장 치열한 여성 활동가들이었다. 그들은 군사독재와의 당면한 정치투쟁과 새로이 싹트기 시작한 여성운동에서 여성단체와 민청련 중 어느 곳을 중심 무대로 삼을 것인가를 고민했던 분들이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으면 민청련은 버틸 수 없었다.

집필진은 머리말에서 “민청련의 역사는 독재자가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힘과 폭력으로 나라를 통치하고 군림했던 시기의 기록이다. 이에 저항하여 민주, 민권, 통일을 외쳤던 뜨거운 가슴을 지닌 청년들의 투쟁과 고난의 기록이다. 힘없는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의 권리를 위해, 그리고 민주주의의 대의를 위해, 권력자들과 조직적으로 맞서 싸웠던 이들에 대한 기록”이라면서,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민중 속에서 조직운동을 실천했던 그들의 영웅적인 투쟁을 후세에 전하고 싶었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의 집필 동기는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이제 초로의 노인이 된 민청련 활동가들은 자식들에게 6월항쟁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얘기하다가 그들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일을 자주 겪는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과연 이 바람은 충족되었을까? 충족될 수 있는 바람일까? 우리가 청년이었던 시절에는 윗세대의 역사와 고민에 대해 얼마큼 귀를 기울였던가?

이 책이 나와 민청련의 회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추억거리가 생겼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읽힐까에 대해서는 솔직히 걱정이 없을 수 없다. 지금의 젊은이들 중에 혹시 1980년대의 청년운동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펼쳐드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이름들, 민청련의 회원이었던 사람들에게는 다 친한 형들이고 동생이고 누나고 언니고 오빠였지만,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이름이 나온다. 김근태, 김병곤‧박문숙 부부, 이범영, 김희상‧김충희 부부, 한경남, 홍성엽, 박혜숙, 정문화, 안희대, 김기설, 윤용하... 민청련이 청년단체였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몇 해 전 <영초언니>라는 책으로 돌아와 “그 빛나던 청춘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천영초 등등... 이 이름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점은 독립운동사를 서술할 때도 마찬가지다. 묵묵히 헌신하며 활동했던 분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이름을 써 주고 싶지만, 독자들은 수없이 많이 나오는 이름에 질릴 것이다. 우리는 몇날며칠을 밤새워 가며 논쟁했던 문제도 지금 보면 왜 그렇게 싸웠는지 모를 일도 많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청년들이 기성세대를 바라보는 입장이다. 민청련의 주요 활동가들은 지금 ‘지탄’의 대상이 된 386세대보다 더 윗세대이다. 우리는 참으로 치열하게 싸웠었지만, 세상은 우리가 원했던 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금 청년세대의 불만에 대해 민청련의 열성 회원들은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세대임이 분명하다.

지금의 청년들이 우리를 이해해 주면 참 고맙겠지만, 우리를 이해하고 기억해 주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이들도 한때 우리가 가슴 깊이 간직했던 우리들의 두꺼비와 같은 그 무엇을 갖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있다. 누구에게나 흘러간 청춘은 있다. 지금의 젊은이들의 청춘도 휙 하고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아야 한다. 스무 살 청춘의 나는 무슨 꿈을 꾸었던가를. 나는 스무 살 때의 나로부터, 스무 살 때의 내 꿈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가를.

스무 살의 이영훈, 스무 살의 김문수는 전태일의 분신 소식에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 젊은이였다. 스무 살 무렵의 이명박은 “배고파 못살겠다 악덕 재벌 잡아먹자”를 외치던 정의감 넘치는 청년이었다.

스무 살 때의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 누구 왕년에 정의 외쳐 보지 않은 사람 있어라는 자위행위여서도 안 되고, 지금 젊은이들을 향해 니들은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는 꼰대짓의 바탕이 되어서도 안 된다.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는 선산을 지켜 온 굽은 소나무들의 이야기다. 그 굽은 소나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며 앞으로도 사는 동안 변치 말자고 다짐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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