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정 / 615합창단 매니저

 

▲ 일출 산행에 참석한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2019년의 마지막 날.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낸 게 참으로 오랜만이다. 생각해보면 난 혼자인 것을 견디지 못했다. 아니 온전히 혼자인 적도 없었다. 늘 사랑하는 사람이건, 가족이건, 소중한 인연들이건...... 누군가가 내 곁에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돌아봐야 하는 한 해의 마지막도 그렇다.

그런데 혼자서 세 번의 열두 달을 정리하고 나서 보니 누군가와 한 해의 끝을 보내는 것이 참 좋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원되었을 땐 귀찮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힘겹게 살아낸 365일의 끝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의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내가 아는 많은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다.

2019년 12월 31일 종로 보신각 일대는 타종행사 두 시간 훨씬 전부터 도로가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타종행사를 주관하는 서울시의 행정대표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 테고. 그와 함께하는 요즘 핫하다 못해 가까이 가기도 전에 튕겨 나갈 법한 배를 가진 펭수와 TV와 신문도 보지 않는 무서운 아줌마들도 이름만은 아는 류현진과의 타종을 함께 하고픈 인파들일까?

12시까지 두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버텨내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보신각과 태극기 부대 집회장소 사이의 공간은 자정이 가까워져 올수록 발 디딜 틈 없이 빠른 속도로 메워졌다. 보신각에서 새해를 맞는 것이 처음이라든지 등의 여러 가지 추억들을 꺼내며 각자의 감성에 젖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들어가고 우리는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짜릿한 2020년을 맞이했다. 

눈이 내린다.

집에 와서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나 산행준비를 했다. 대단한 girl~ 서효정!

615산악회 지리산 산행을 함께 했던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전용정 대장님을 615산악회 운영위에서 한 번 더 뵙고 갑자기 단톡방에 초대되어 인연이 된 두려운 백두대간팀의 일출 산행이다. 다들 전문가란 소리를 수없이 들어온 터라 백두대간팀의 산행은 따라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름부터 얼마나 거창한가. 백두대간이라니......

예전 민애청 시절 해맞이 산행을 해보고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겨우 두 시간 코스의 산행이라니 이 정도라면 나도 해낼 수 있겠지. 예상치 못한 보신각 일정도 나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두 시간의 산행으로 일출을 볼 수 있다는데. 함께 하고픈 마음이 동했다.

▲ 사모바위 앞 서효정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산을 좋아하는, 백두대간팀의 당당한 일원인 합창단 이종문 오빠를 연신내에서 만나 삼천사로 향했다. 차로 오는 길에 지나친 입구에서부터 열심히 혼자 걷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가늠해보는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도착한 삼천사 주차장에는 벌써 한 무더기의 등산객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백두대간팀의 당당한 일원인 줄 알았는데 자기 일행도 못 알아보는 종문 오빠는 한참 여러 사람과 악수하다가, 작년엔 여기서 오르는 팀이 자기네 팀밖에 없었다며 자랑하는 ROTC팀이 자기 일행이 아닌 걸 깨닫고 뻘쭘하게 옆에 섰다. 모른 척해주었다.

애초 8명이었던 참석자는 6명으로 줄었다. 새벽녘의 어둠과 머리 꼭대기에 앉아 상대에게 눈부심만을 선사하는 랜턴 때문에 서로 얼굴도 익히지 못한 채 산행 시작. 길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헤드랜턴 필요 없을 거라던 종문 오빠의 말을 무시하고 준비해온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음... 다르다. 선생님들이 늘 함께하는 615산악회와 근본적으로 속도가 다르다. 그냥 막 치고 올라간다. 내 거친 숨소리에 말려들지 않는다. 이대로 걷다간 나중에 내가 뒤처질 거라는 불안한 생각이 엄습했다.

의상봉과 응봉 사이의 삼천사 계곡을 치고 올라가며 가끔 길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어김없이 선두가 종문 오빠였을 때다. 믿음직한 전용정 대장님은 참 신기했다. 다 똑같아 보이는 돌멩이들과 나뭇가지들과 낙엽들 사이에서 길을 찾는다. 난 주위를 돌아볼 틈 없이, 분간하고 싶은 도전의식도 없이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한 일출 산행인가.

나름대로 출산하기 직전인 나의 호흡을 고려해서 속도를 조절하다 말다 반복하더니 너무 빨리 올라왔단다. 이대로 가면 너무 빨리 도착해서 비봉에서 추위에 떨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속도를 줄인다. 쉬지도 않더니 이제 가끔 쉬기도 한다. 

▲ 상고대가 핀 소나무 앞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새해 첫눈이 내린다. 조금 내리다 말겠지 했는데 계속 내린다. 미끄럽지만 기분이 좋다. 새해 첫날에 첫눈을 맞으며 산행을 하다니 좋다. 하지만 100프로 좋을 수는 없는 법. 눈 때문에 새해 첫해를 보긴 글렀다.

멋진 사모바위가 나타났다. 그대로 지나쳐 비봉까지 간다. 2019년 여름, 선배들과 함께 비봉에 올랐었다. 바위 끝에 올라서 무서움을 무릅쓰고 지휘자의 생일축하 그림을 들었었다. 그 바위 밑까지 올랐다. 눈 때문에 너무 미끄러워 그것도 위험했지만 뿌듯했다.

▲ 매봉능선에서 암릉을 내려가며.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다시 사모바위 쪽으로 돌아와 있는 줄도 몰랐던 기어야만 지날 수 있는 김신조가 은신했다고 하는 바위굴을 돌아 나왔다. 아까 사모바위에서 비봉까지는 그렇게 긴 것 같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기냐…

미끄러운 바위와 험난한 바위를 밧줄을 타고 넘었다. 하루 지나면 팔뚝 아파서 죽겠지만 밧줄 타는 건 늘 즐겁다.

▲ 미끄러져도 즐거운 이민우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매봉을 지나 진관사 방향으로 하산하는데 소나무에 상고대가 피어있다. 아름답다.

참으로 고마운 2020년을 맞는 새해산행이다. 이런 행복을 맞보게 해준 통일뉴스 백두대간팀의 전용정 대장님께 감사드린다.

두 시간 예정의 산행이었지만 하산 때도 속도 차이를 절감하며 내려온 나의 잘못인지, 나도 모르게 코스를 바꿨는지 모를 주최 측의 농간 때문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세 시간 정도의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

▲ 기자촌 능선을 배경으로 바위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하산 후 이 지역을 잘 아는 박명한 대원의 추천으로 북한산성 맛집에서 새해 첫날의 감사한 떡국과 코다리찜과 재료를 아끼지 않은 부추전을 먹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막걸리 캬~. 하지만 나는 산행 후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막걸리의 환상적인 맛을 상상으로 대신했다. 새해의 다짐 실천!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북한산성 식당에서 새해 첫날에만 파는 떡국을 먹고 막걸리로 건배.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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