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올해 신년사를 대체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과 보도에서 남측을 향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아 주목됩니다. 전원회의 결정서가 모두 1만8천자가량 된다고 하는데, ‘북남(남북)관계’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것입니다.

예년의 신년사에는 ‘남북관계’가 ‘북한 내부’, ‘북미관계’와 함께 3축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였고, 이 ‘남북관계’ 난은 북측이 남측을 비판하거나 또는 무언가를 제안하는 통로였습니다. 말하자면 대남 메시지를 전하는 창구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지난해 신년사만 보더라도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올해는 아예 ‘북남관계’ 단어조차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신년사가 아니라 전원회의 결정서라 하더라도, 이 결정서에 ‘북한 내부’와 ‘북미관계’ 난이 들어있는 것만큼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북한이 결정서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좀 심하게 말하면 남측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북측이 부러 ‘남북관계’를 빼면서까지 ‘남측’을 배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즉 남측을 배제한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남측을 배제한 이유는 지난해 북측이 남측을 향해 수없이 한 말을 상기해 보면 가늠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시정연설에서 남측이 북미 사이에서 중재자, 촉진자가 아닌 ‘당사자’ 역할을 해달라고 요구했으며, 북측 언론매체에서는 남측이 외세 의존 정책을 해온 탓에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해왔습니다.

북측은 지난해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과 관련해 중재 역할을 자임한 남측에 그 책임이 상당 부분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또한 9.19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을 믿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대한 조건 없는 재개 의사를 밝혔지만, 남측이 미국을 의식해 아무런 수도 쓰지 못한 것을 보고 당사자 역할론에 대한 기대를 접었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김 위원장은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현 상황과 관련 “세기를 이어온 조미(북미)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어 명백한 대결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현 정세를 ‘자력갱생 대 대북 제재’로 규정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진작 남측이 동족으로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파탄내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도와줬어야 하는데 전혀 안했기에, 그렇다면 북측이 독자의 힘으로 즉 자력갱생으로 풀겠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남측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지요.

시쳇말로 정치인은 나쁜 소식으로 언론에 나오는 것이 안 나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며, 인터넷 상에서는 무플보다 악플이 더 낫다고도 합니다. 무관심보다 어떻든 말밥에 오르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요. 같은 경우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북측의 신년사에 남측이 비판받더라도 나와야 하는데 아예 안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북측이 신년사에서 남측을 배제한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북측은 이번 전원회의의 기본정신이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전을 벌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천명했습니다. ‘자력갱생 대 대북 제재’의 국면에서 외세의 대북 제재를 무소의 뿔처럼 자력갱생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북측은 신년사에서 남측을 배제함으로써 역으로 남측에도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싶지 않았을까요? 남측이 ‘종속과 자주’라는 한미관계의 구도에서 북미 대화를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또 외세에도 의존하지 말고 혼자의 힘으로 그 구도를 깨기 위해 ‘정면돌파’를 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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