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대현, 『미·중 충돌시대 한반도의 길』표지.

재야의 탁월한 분석가였던 고(故) 김남식 선생은 “며칠만 쉬어도 정세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제도권을 대표하는 전략가였던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다. 

한반도 남쪽 땅에는 이 고단하고 어려운 과업을 치열하게 수행해온 사람들이 있다. ‘운동가’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실천이니, ‘정세 읽기’는 운동가의 필수 자질이라 여겨진다. 만약 뛰어나게 잘한다면? 더 많은 ‘작업’이 돌아온다. 운동권의 ‘문건’이 양산되는 비결이다. 여론조사기관 종사자나 정당인에게는 돈, 명성, 권력 등을 안겨주는 그 능력이 ‘어떤 운동가’에게는 피하고 싶은 굴레가 될 수도 있다.

그 굴레를 마다하지 않은 운동가 중 한 사람이 장대현(54)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이다. 그를 처음 만난 때는 노무현 정권이 저물던 2007년이다. 한국 민중진영의 총결집체를 표방했던 한국진보연대의 대변인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대변인(홍보팀장)을 맡았다. 이어 한국진보연대 정책위원장, 6.15남측위 공동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기자회견, 집회, 시위 장소에 뿌려진 많은 문건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12월부터 틈틈이 시평과 시를 <통일뉴스>에 보내던 그는 2013년 5월 칼럼진에 합류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시국회의’(2013) 운영위원,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2014) 운영위원으로 활약하다가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난 2015년부터 더욱 체계적인 정세분석 글을 보내왔다. 이를 보강하고 재구성하여 『미·중 충돌시대 한반도의 길』(통일뉴스, 716쪽)이라는 단행본을 펴냈다.

저자가 보기에 한반도가 놓여 있는 동아시아라는 공간은 구겨진 도화지와 같다. “한반도가 나서서 동아시아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도화지를 펴려면 먼저 구겨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이 포괄하는 시간대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9월부터 2018년까지다. 총 11부이며, 각 부는 세계경제, 미·중 관계, 북미 관계, 한미 및 한미일 관계, 남북 관계라는 5개 장으로 구성했다. 북미-남북 관계를 기본축으로 한반도 정세를 조망하던 전통적인 통일운동권의 분석틀과 달리, 경제와 미·중 관계 요소를 비중있게 고려했다. 통일 행사보다는 민중 투쟁 현장을 주로 누볐던 저자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책은 10년 간 동아시아 관련 신문기사들을 매해마다 5개 분야별로 시간 순으로 재배열할 때 포착되는 ‘흐름’을 담고 있다. 일본 민주당 계열 외교평론가 마고사키 우케루가 말한 바와 같이, ‘국제관계-외교에서 가장 본질적인 정보는 역사’임을 실감하게 한다. 

다만, 자료들을 왜 다섯 장으로 분류했는지, 그들 간 내적인 관계는 어떠한지에 대한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한반도(남북)-동아시아(해양세력 대 대륙세력) 간 길항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니, 한반도 세력이 동아시아의 구겨짐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정세 읽기에 따르기 마련인 시행착오를 비판적으로 성찰한 과정도 담지 않았다. “한 실천가의 진지한 이론화 천착”이 미래를 예측하는 이론 모델 정립에는 이르지 못한 셈이다. 후속작업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오는 19일 저녁 6시30분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서일빌딩 내 6.15남측위 사무실에서 『미·중 충돌시대 한반도의 길』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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