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죽은 듯이 잠자고 있던 금강산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 피격사망사건으로 인해 관광이 중단된 이래, 오랜 기간 거인의 잠에 들었던 금강산을 깨운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입니다. 그런데 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일 뿐, 아직 생사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지난달 23일 북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지구 시찰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의 금강산 내 남측 시설 철거 지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발언 그대로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아 수리와 보수도 제대로 못하고 또 해풍을 맞아 너절해진 남측 시설을 철거하고 북측이 현대식으로 새로 지어 독자적으로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동안 불문율로 여겨왔던 남북 경제협력 자체에 대해 북측이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김 위원장이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한 점과 또 시설 철거를 지시하면서도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고 말해 남측 관광객을 상대로 사업을 계속할 생각이 있음을 드러낸 점 등에서 볼 때, 금강산 관광 정상화와 관련 남측 당국의 적극적 태도를 재촉구하는 메시지로도 읽힙니다.

어쨌든 김 위원장의 금강산 내 남측 시설 철거 지시 이후 북측 금강산국제관광국은 지난달 25일 통일부와 현대그룹 앞으로 금강산지구 시설 철거를 통보하고 문서교환 방식으로 실무를 진행하자고 통지했습니다.

이에 남측 정부는 28일, 북측에서 요구한 금강산 관광지구의 남측 시설물 철거 문제와 함께 금강산 관광 문제 협의를 위한 ‘당국간 실무회담’ 개최를 제안했습니다. 문서교환 방식이 아닌 실무회담을 하고, 또 시설물 철거 문제만이 아닌 ‘금강산 관광’ 문제 협의로까지 확장하자는 일종의 ‘확대 역제의’를 한 것입니다.

이에 북측은 하루만인 29일, 남측의 금강산 관광 문제 해결을 위한 당국 간 실무회담 개최 제의에 대해 “실무적인 문제들은 문서교환 방식으로 합의하면 된다”며 남측의 실무회담 요구에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문서교환 방식 입장을 재통보 해왔습니다.

9.19 평양공동선언에는 “남과 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어떤 사업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하자는 것이고 또 이들 사업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사실상 남측이 조건 마련에 적극 나서라는 뜻이 강합니다. 그런데 남측이 그동안 대북제재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남측에 경종을 울린 것입니다.

관계개선을 바라는 남측 정부로서는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당연히 남측은 북측과 대면을 해야겠지요. 시쳇말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만나야겠지요, 문서교환 방식으로 금강산 내 남측 시설을 철거한다는 것은 악몽이겠지요. 지난달 15일 평양에서 치른 카타르 월드컵 예선전 남북축구 ‘무관중’ 시합이 연상되니까요.

남북이 ‘문서교환 방식-실무회담-문서교환 방식’으로 주고받다가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데, 공을 쥔 남측이 실무회담을 촉구하는 2차 대북통지문을 곧 보낼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 남북 간 핑퐁 공방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는 이들은 10여 년 간 거인의 잠에 들었던 금강산이 조만간에 깨어나 활기차게 관광객을 맞이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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