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9.19공동선언을 발표한 남북의 지도자는 다음날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라 손을 맞잡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올해 개천절과 한글날은 유독 씁쓸하다. 우리민족의 커다란 경축일이지만 일명 ‘태극기부대’ 집회로 얼룩지고 남북관계도 얼어붙어 함께 기념행사도 치르지 못한 탓이다. 미중 패권경쟁에 새우등 터지고 첨예한 북미 대결에 한일 갈등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짙은 먹구름 탓도 보태졌을 것이다. 

남녘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과 북녘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채화한 성화가 비무장지대(DMZ)를 환하게 밝히고,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 물을 정한수 삼아 남북의 지도자가 나란히 하늘과 땅과 온 세상, 온 겨레에게 상생과 통일 염원을 고하는 천제(天祭)를 지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줄이어 ‘가정의 달’로 불린다. 이와 비슷하게 10월은 개천절, 한글날이 연이어 ‘민족의 달’로 불릴만 하다. 물론, 일반인들이 가정의 달 만큼 민족의 달을 체감하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우리 민족은 시월 상달 하늘에 제사지내며 온 겨레가 축제를 펼쳤던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왔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신라와 고려의 팔관... 몽골의 침입으로 맥이 끊기고 조선의 사대주의로 잊혀졌지만, 일제의 침략을 계기로 대종교와 상해 임시정부는 개천절 경하식을 거행해 왔고, 그 흐름이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살펴보면, 우리 나라 국경일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다. 3.1절, 제헌절, 광복절은 모두 우리 민족이 자주적인 국가를 갖게 된 최근 들어서의 일들이고, 개천절과 한글날은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한(조선)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 유서깊은 기념일이다.

또한 5대 국경일 중 제헌절은 국회의장이 주재하는 경축일이고,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경축일이다. 통상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나 광복절 기념사는 국민들에게 중요한 국정방향을 제시하는 계기로 인식돼 있다.

이에 비해 개천절이나 한글날 기념사는 기억에 남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들어 개천절과 한글날 경축사는 모두 이낙연 국무총리의 몫이었다. 국가 수반인 대통령이 아닌 총리가 주재하는 한 급 낮은 국경일로 전락한 실정이다.

올해만 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은 국경일도 아닌 기념일에 불과한 국군의날(10.1) 기념식에서는 참석해 기념사를 했지만 개천절(10.3)과 한글날(10.9)에는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한글날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과 572돌 한글날을 기념해 여주 세종대왕 영릉(英陵)을 참배했고, 올해는 “3.1독립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에 맞는 뜻깊은 한글날”이라며 ‘주시경 선생의 서체로 문재인 대통령이 전하는 말’을 발표했다. 그나마 한글날에는 상징적인 메시지라도 내보낸 셈이다.

그렇다면 개천절이나 한글날이 3.1절이나 광복절에 비해 그 중요성이 덜 하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우리 겨레의 유구한 역사와 ‘홍익인간’ 정신을 기리는 개천절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평가받는 한글 창제를 기념한 한글날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국경일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북한도 공휴일은 아니지만 개천절 행사를 매년 거행하고 있다. 한글날도 훈민정음 반포일을 기준으로 10월 9일로 제정한 남측과 달리 훈민정음 창제일을 기준으로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기리고 있다. 개천절과 한글날을 남북 공히 중요한 날로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  평양 단군릉에서 2003년 개천절 남북해외 공동행사가 열렸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특히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민간교류가 시작돼 2002년, 2003년, 2005년 평양 단군릉에서 남북해외 개천절 공동행사가 진행됐고,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2014년에도 소규모로나마 단군릉에서 개천절 공동행사가 치러졌다. 평양 단군릉은 북한이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에 접어든 1994년 개건돼 민족자존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또한 일제시기 조선어학회의 피나는 노력으로 민족어 3대 규범집, <한글 맞춤법 통일안>,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이 마련됐고, <조선말 큰사전>이 준비됐기에 남북이 분단된 지금도 남북간 언어의 이질성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1989년 김일성 주석과 문익환 목사가 만나 ‘통일국어사전’ 편찬에 합의해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가 구성돼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라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남과 북이 가장 근원적인 뿌리에 해당하는 개천절과 한글날을 함께 기념하고 전 민족의 축제, 즉 국전(國典)으로 삼는 일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남남갈등과 남북분단을 넘어 10월 3일 개천절부터 10월 9일 한글날까지 남과 북은 물론 해외동포들까지 아우르는 ‘온겨레 통일대축전’ 한마당을 펼치는 행복한 상상을 이제는 현실화 하기위해 노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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