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흥 기자(ihkim@tongilnews.com)


북측의 "선의의 제안이 오히려 남쪽의 통일세력간의 분열이라는 악수"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화되는가?

4일 북측의 조선노동당 창건 55돌 기념식에 남측의 정당 사회단체의 참가를 불허한다는 정부의 공식입장이 알려진 가운데, 초청된 정당 사회단체들은 정치성이 강한 당 창건 행사에 `참가 강행`과 `참석보류` 두 갈래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나의 갈래는 `참석보류`의 흐름이다. 4일 12시 시내 세실 레스토랑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회의(민화협)이 주관으로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경실련), 언론개혁 시민연대, 여성단체연합,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대종교, 성균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민주노총, 한국노총, 민주노동당 (무순) 14개 단체 대책회의의 대응 방향이다.

이들은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행사에 참가하기엔 남쪽 분위기가 아직은 미성숙하다"며 대체로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민화협 김창수 정책실장은 "아직 북측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고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접촉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제하면서도 "북측의 제안이 단순히 당 창건 기념식에 참가를 요청한 것이라면 북쪽 사람들에게 그날(10월 10일 당 창건기념일)이 갖는 의미가 남쪽의 설날 같은 명절이긴 하지만 남쪽의 정서상 부적절한 제안"이며 "북측의 제안의도가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화해 분위기를 살려 남북 정부 사회단체 합동회의가 쌍무적, 다각적 대화를 갖자는 것이었다면 매우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는 "남북화해와 통일 흐름이 자칫 이념논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6일 다시 대표자회의를 소집해 후속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한 관계자는 "정부 불허 방침이 전해진 조건에서 초청대상 단체간의 통일된 공동대응이 중요하다는데 모두 인식을 같이 하지만 당일 행사 기념식 참가 여부를 둘러싸고는 행동일치는 장담할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보았다.

김정책실장은 촉박한 시기, 적절치 않은 행사형식 등 이유로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하면서 "추후에 남북 정부 사회단체 공동회의 등 적절한 형식을 취해 초청대상 단체들이 합동 방북하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지혜로운 해결일 것"이라는 정치적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당 창건 행사 참가 강행` 입장을 대변하는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주관으로 이날 오후 4시 서울 향린교회에서는 범민련 남측본부,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민가협, 참여연대, 민화협, 한국노총 등 시민단체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일치되지는 않았으나 `적극적 참가`로 입장을 정리했다.

전국연합은 4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의 상봉은 역사적인 남북정상의 상봉과 6.15남북공동선언을 계승하여 통일의 새 지평을 여는 쾌거가 될 것"이라고 이번 북의 초청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분단으로 파생된 민족적 고통을 치유하고, 민족 대단결과 자주통일의 새 지평을 열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의 상봉`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정부의 불허 방침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또한 범민련 남측본부와 민주노동당은 각각 4명, 6명의 방북대표단을 이미 구성한 것으로 밝혀져 이들의 당 창건 기념행사 참가 강행은 현실화될 공산이 있다.
이들 단체는 5일 방북신청을 통일부에 제출할 할 예정이며 방북에 필요한 구체적 준비를 위해 5일 오전에 회의를 다시 갖기로 했다.

이렇듯 북측의 조선노동당 당 창건 55돌 기념 초청에 대해 초청받은 각 단체들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어떤 방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6.15공동선언의 정신과 이후 지금까지 조성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향한 순조로운 흐름을 감안해 슬기로운 단안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이들 단체는 방북을 감행`하고 `정부는 법적으로 불허` 하는 상황은 과거 냉전시대의 극단적 대립을 되풀이하는 꼴이 될 우려가 있다. 이 경우 남쪽의 보수세력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하고, 북쪽의 명분도 살려줄 수 없어 오히려 정부의 입지를 좁히게 되는 역작용도 쉽게 예상된다.

남쪽 국민의 정서 상 아직 이르다고 할 수 있지만 김대중대통령이 북쪽 인민군의 사열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방북 허용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개방적 자세가 요청된다.

남쪽의 초청 단체들도 문제를 대국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실정법을 거스르고서라도 방북을 강행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만큼 어렵게 조성된 남북의 화해 통일의 기류에 난맥을 만들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6.15공동선언 주체인 남과 북의 정부와 통일지향세력 각각이 어떻게 하는 것이 순항하는 한반도의 통일기운을 더욱 고조시킬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슬기가 아쉽다.
누구도 찬물을 끼얹는 행동은 피해야 할 것이다.

관련소식

5-6개단체 북에 대표파견 의사

범민련 남측 `대표단 4명 派北`

민주노동당 방북 신청키로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