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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봄날은 바로 오늘임을<간서치의 둔한 서평(142)> 최영배의 『혼자서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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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29  10: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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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주말, 모처럼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가는 차안에서 딸아이와 아내가 이야기를 나눈다. 딸아이는 엄마의 스마트 폰을 능숙하게 다룬다.

“엄마, 오늘 나쁨이야.”

“아, 미세먼지?”

“웅”

“마스크도 안 가져 왔는데, 큰일이네. 에휴, 엄마가 현정이 때는 이런 거 걱정 없었는데….”

“어? 엄마가 애기 때는 미세먼지가 없었어?”

“그럼, 그 때는 미세먼지 같은 것 없었어.”

“그럼 그 때는 뭐가 있었어?”

“어…, 그러니까. 음….”

 

장면#2.

모처럼 가족끼리 함께 본 영화 <알라딘(2019)>의 한 장면. 악역 자파(마르완 켄 분)과 자스민 공주(나오미 스콧 분)와의 대화 중 내 머리를 세게 때리는 한 컷.

(자신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왕이 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다는 자스민 공주의 이야기에도 자파는 자스민이 절대 왕이 될 수 없다고 다그친다)

자스민 : “그동안 저는 왕이 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어요. 책도 많이 읽고….”

자파 : “책이요? (비웃으며) 공주님, 책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이랍니다. 오직 실제 겪은 경험, 몸으로 직접 겪은 수많은 경험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장면#3.

적당히 취한 어느 밤. 전철역에서 내려 담배 한 개비를 물며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한 할머니가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는 있지만, 단 한 발자국 내딛기도 힘겨워 보인다. 주변에는 지나가는 행인도 보이지 않는다. 급히 담배를 끄고 할머니를 부축하며 묻는다.

“할머니, 댁이 어디세요?”

“아이고, 고마워라.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면서 도통 걸을 수가 없네. 집에 다 와서 이게 뭐람. 아이고, 고마워요. 바로 요기 앞이에요.”

온몸에 찌든 땀 냄새가 진동하는 할머니. 할머니가 가리키는 집이란 바로 코앞에 있는 빌라의 2층. 간신히 부축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다.

“할머님, 가족 분들은 같이 안 계셔요? 전화하시면 내려오시지 않을까요?”

“아니야, 다들 돈 벌러 나가서 아직 퇴근 안 했어. 조금만 도와주면 내가 올라갈 수 있어요. 고마워, 아이고, 내가 오늘 이렇게 고마운 분을 다 만나고….”

이미 시간은 12시를 향해 가고 있는데, 가족들이 전부 퇴근 전이라는 할머니. 간신히 계단을 올라 할머니가 건네준 열쇠로 문을 열고 불을 켠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는 도저히 한 가족이 살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촐 했고, 모든 집기 도구에는 신문지가 덮여져 있다. 한쪽 구석에는 약봉지가 수두룩하게 쌓여 있고, 옷가지는 전부 할머니 것뿐이다.

“할머님, 혹시 계속 불편하시면 병원에 연락해 볼까요?”

“아니야, 고마워요. 이제 됐으니까, 어서 가요. 고마워, 고마워. 이제 아이들이 올 거니까 어서 집에 가요. 어서.”

떠밀리듯 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며, 뭔지 알 수 없는 서러움과 무참함이 마음을 짓누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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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이미 사람이 온전히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 자체가 이미 간고분투의 역사가 되어버렸다. 단지 치열하다는 표현으로는 감당이 안 될 만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눈물겹다.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은 공존이다. 이 무정한 세상에서 결코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에 때론 무모해 보이는 도전도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것. 이는 온전히 공전에서 비롯된다. 공존의 소중함과 힘을 아는 이는 이미 평범하면서도 평범한 이가 아닌 셈이다.

   
▲ 최영배, 『혼자서 공존 - 일상과 그림에서 찾은 내 삶을 바꾸는 힘』, 사람과사회, 2016. 6.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저자는 자세한 약력을 밝히지 않는다. 평범한 직장인이라고만 스스로를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결코 단순히 평범한 이는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지만, 또 어느 측면에서는 앞서 말한 진정 평범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가능할 듯싶다. 그는 영민한 관찰력과 세심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타자와 공감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매일 매일 공부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확인한다. 애써 자신을 바꾸려 하지는 않지만, 나태함을 용서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삶에 대한, 타자에 대한 애정이 가능하다. 4년간의 기록이라는 이 책은 말 그대로 ‘일상과 그림에서 찾은 내 삶을 바꾸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사실 독자들에 앞서 스스로와 끊임없이 소통한 기록을 담은 셈이다. 누구보다 본인을 잘 아는 ‘스스로’와의 대화는 기실 그 누구와의 대화보다 어렵고 외롭다. 때론 침묵이 이어질 때도 있고, 때론 누구보다 매서운 비판이 따른다. 어느 때는 그 무엇보다 달콤한 찬사가 이어지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더 큰 후과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앞서 장면#1~#3은 최근 내가 겪은 일화 혹은 단상이다. 사소한 이야기지만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고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새삼 공존을 고민하게 만든 것들이다. 하루하루 미세먼지를 걱정하고 외출을 생각하게 되어버린 지금, 사실 우리는 이러한 삶이 펼쳐질 것으로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딸아이는 미세먼지를 당연히 여기고, 미세먼지가 없던 과거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능력이 부족하고, 공존의 솜씨 역시 서투른 탓에 관계의 허기를, 미지의 영역에 대한 허기를 책에 의존하며 살아왔다. 단 하나의 진실한 친구라도 가지고 있는지, 새삼 비관하게 되는 지금, 나는 무의식적으로 책에 모든 것을 떠넘긴 것은 아니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영화 속 ‘자파’는 악역이라 하더라도, 그의 말은 틀림이 아니었다. 우리가 직접 체험한 지식은 내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활자로, 영상으로 익힌 그 무엇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결국 사라진다. 이 차이를 알면서도 쉽사리 타인에게, 새로운 영역에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내 아집과 두려움이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저자가 더더욱 부럽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그 다음은, 사랑이다.

고독사가 늘어가고 있는 오늘, 어미는 그럼에도 자식을 버릴 수 없다. 이미 몸과 마음이 떠난 자식이지만, 자신의 땀으로 인해 찌들어버린 육신처럼, 자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신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때문이다. 그 누구라도 내 자식을 욕할 순 없다. 내 자식을 비난할 수 없다. 차라리 헛된 거짓이라도 필요하다. 내가 서러울지언정, 무참할지언정, 저 멀리에 있는 내 자식은 온전해야만 한다.

저자가 의도했는지, 혹은 아니었는지 몰라도 책 곳곳에는 눈물이 스며들어있다. 이야기마다 함께 담긴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눈물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것만 같은데도 별안간 울컥함이 다가온다. 글과 그림의 호흡이 너무도 탁월했기 때문 아닐까. 늙은 어머니에 대한 애절함,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자식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사회와 타자에 대한 따뜻함까지. 그의 글에는 온기와 눈물이 함께 담겨져 있다. 그리곤 깨닫는다. 책의 제목이 말하는 ‘혼자서 공존’이라는 의미를.

책은 순간순간 페이지를 넘겨가며 속도를 내야하는 것이 있는 반면, 이야기 하나하나 매일매일 아껴가며 읽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이 책은 단연 후자가 될 것이다. 4년여의 기록을 하루 이틀 성의 없이 넘길 순 없다. 때문에 꽤 오랫동안 붙잡고 아껴가며 읽었다. 이야기마다 담긴 명화를 감상하는 재미 역시 결코 적지 않았다. 저자의 안목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독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 누구도 자신을 끝까지 보듬어 줄 수 없다. 홀로 태어난 것처럼 홀로 죽어야 하는 존재가 우리다. 때문에 우리는 자존감과 이기심이 범벅이 된 채, 하루하루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공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없었음 지금의 내가 없듯, 끊임없이 서로를 보듬고 안아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극심한 파편화와 이기주의를 주입하는 지금의 괴물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 속에서도 우리는 공존해야만 비로소 생존이 가능하다는 진리를 느끼며 살아간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우리는 때때로 망각하며 살아간다. 제 잘난 맛에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아가다가도, 문득 멈칫 거리며 눈물을 씻는다. 누군가 간절히 그리워 두리번거리다, 이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뻔뻔하게 구는 게 우리다.

때문에 책은 더욱 소중하다.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어버리라고, 웃고 싶을 때 웃고, 사랑해야 할 때 이 세상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라고 말한다. 동시에 지금의 나를 매일 돌아보고 마음닦이를 멈추지 말라고 다독인다. 발전은 그 누군가의 어설픈 잣대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오로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것임을, 책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름다운 책을 선물 받을 때처럼 기분 좋은 순간도 드물다. 그런 기쁨을 전해준 펴낸이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별안간 화를 벌컥 내고 별안간 울어버리고 싶은 요즘, 그의 선물은 큰 위로가 되었음을 밝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자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그가 더더욱 평범한 이로서 이 세상의 따뜻함을 하나하나 갈무리해주길 바란다.

일독을 권하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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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9-07-30 09:33:46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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