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개싸움’이 회자되고 있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국면에서 시민들이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 등을 전개하며, “개싸움은 우리가 할 테니 정부는 정공법으로 나가라”는 이야기들이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산 제품의 불매운동이 과연 ‘개싸움’으로 불릴 수 있을까 싶지만, 적어도 국민들의 감정은 정부가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오죽하면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을까.

사실 시민들이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는 것은 그 자체로 일본 경제에 타격을 주겠다는 것보다는 적어도 우리가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클 것이다. 지난 54년 간 대일 무역적자는 변함없었고, 그동안 쌓인 적자가 700조 원을 넘는 상황에서 불매운동이 미약해 보일 수 있지만, 국민들의 마음마저 미약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일본이 무리하게 수출규제에 나선 것은 자국의 내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남북관계의 해빙기 속에서 일본의 제자리 찾기가 여전히 멀게만 보이는 것도 하나의 역할을 했으리라. 북미관계가 서서히 풀려나가고 양국 관계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화한다면 일본 역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솔직히 현 상황의 변화를 원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생뚱맞게도 아베는 남북관계를 들먹이며 수출규제를 합리화하려 한다. 우리가 대북제재를 충실히 지키지 않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로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 돌려차기를 한 것이겠지만, 문제는 전혀 먹혀들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만 나고 있다는 점이 우습기도 하다.

지금의 상황을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지극히 당연하게도 한반도 분단 그리고 남북문제는 단순히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중·일·러 4대 강국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는 불가피하게 내부 문제를 풀 때에도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할 때에도 주변국과의 관계 설정이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분명 크나큰 도전이다.

때때로 가끔씩, 때때로 자주 울컥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만들어내고 분단을 해체하는, 그리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위해 나아가는 주체는 당연히 남과 북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정에서 숱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분단국, 약소국의 설움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온전히 선택할 수 없는 기막힘이 기실 한반도 분단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소중한 이들이 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화해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때론 오해와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들이다.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도대체 자신이 조선인인지, 미국인인지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지금, 그들은 한없이 빛나고 있다.

▲ 곽태환, 『한반도 평화, 비핵화 그리고 통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통일뉴스, 2019. 6.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저자 곽태환 교수 역시 그런 분 중 하나이다. 10여 년 전 기자와 학자로 인연을 맺은 이후 언제나 변함없이 통일운동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시는 그를 보며 늘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1938년생이시니, 이미 적지 않은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청년의 열정을 품고 계시는 분이다. 천상 학자이고 천상 한국인, 조선인이다.

책의 큰 주제는 당연하게도 저자가 평생 화두로 삼아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다. 냉정한 국제정치의 틈바구니에서, 분단된 채 70여 년을 살아온 우리에게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은 기어이 이뤄내야 할 민족의 과제이다. 더 이상 민족이란 단어가 환영받지 못하는 지금이지만, 여전히 냉전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이들이 증오와 갈등의 구태를 쏟아내고 있지만, 우리는 기어이 이 땅에 완전한 평화를 가져와야만 한다. 때문에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일생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통일을 연구해온 그의 제언은 새겨들을 만 하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한반도 비핵-평화체제 5단계 로드맵 구상을 줄기차게 제안하고 있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단계적 접근이다. 물론 최종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성립이다.

먼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남·북·미 3국 합의가 필요하다. 그 이후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에 3국이 합의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영변 핵시설의 해체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때 남북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이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조약을 만들어내기 위한 협의에 돌입한다.

세 번째 단계는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와 북한의 WMD(대량살상무기) 폐기 협상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지난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생화학 무기와 대량살상무기의 해체를 요구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논의하는 동시에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하는 상응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 이후 북미 및 북일 외교관계가 수립되면 그것은 남북과 한반도 주변 4대 강대국 간 상호 인정이 완료되고 교차 승인이 이뤄졌음을 뜻한다. 저자는 이때 정전협정의 당사국인 남·북·미·중이 4자 평화포럼을 통해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가칭)한반도 평화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안에 한중, 북미, 한중, 미중 평화합의문을 체결하여 되돌릴 수 없는 평화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은 다자간 국제평화 유지군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 사무국을 통해 한반도 평화조약을 추인하게 되면 국제법적으로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북한이 주위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는 피포위 강박증 상태라고 진단한다. 때문에 그동안 북이 줄기차게 요구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와 북 체제의 안전보장이 이뤄진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반도 평화조약이 체결된다면 북은 핵을 포기할 것이며,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평화는 무엇일까? 어떠한 상황을 평화라 정의할 수 있을까. 소극적 평화, 적극적 평화를 떠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온전히 꿈을 꿀 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싶다. 한반도의 모든 구성원들은 전쟁 이후, 지금까지 온전한 꿈을 꾸어왔을까. 스스로를 좁은 생각의 틀에 가두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온 것은 아닐까. 섬이 아닌 섬에 갇혀 우리는 그렇게 평화를 작게만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까.

최근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온 지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가 던진 한 마디가 지금까지 뇌리에 남는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은 1주일에 300여 명의 생명이 스러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무참하다는 말 밖에는 아무런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이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의 생명을 지금까지 빼앗아가고 있는 것일까.

곽태환 교수의 글은, 그의 일생의 노력은 오직 한반도의 평화만을 바라왔다. 다소 투박할 때도 있고, 문장이 매끄럽지 못할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온갖 미사여구로 혹세무민하는 이들의 사악한 펜보다 그의 투박하지만 거짓 없는 글들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내가 곽태환 교수를 존경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임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민족의식과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비록 약소국이라 하더라도, 또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여전히 단단하다. 수많은 사대주의자와 ‘검은 머리 미국인’이 점령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곽 교수의 소신은 빛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이 있다. 우리가 언제 통일될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분명한 것이 있다. 평화는, 통일은 주어지는 것이 아닌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 이 땅의 살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 주체적 자세를 가지고 느리더라도 멈춤 없이 한발씩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 길에 여전히 우리와 함께 서계신 곽태환 교수에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전한다. 늘 강건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그리고 우리 조국 역시 늘 강건하고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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